햇순 - 성서 난해구 해설 (2000.6)

게으르다고 다 나쁜 것 아니며
부지런하다고 반드시 좋은 것 아니다.
전도서 4:5-6

민영진 목사
(대한성서공회부총무)

5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 6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 ({개역한글판} 전 4:5-6)

우매한 자가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는 열심히 일하여 먹 거리를 구해 먹지 아니하고, 꼼짝 아니하고 제 몸의 살이나 뜯어먹고 앉아있다는 말이다. 구 약의 잠언에 보면 게으름뱅이가 어떠한지를 잘 묘사한 구절이 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 6:9-11).

게으름뱅이를 나무라는 말이다. 잠언의 저자는 게으름을 철저히 비난한다. 그러나 전도 서의 저자 코헬렛은 게으르다고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며 부지런하다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착안한다. 그래서 코헬렛은, 사람이 게을러서 비록 조금밖에 벌지 못해도 심신이 평온하다면, 부지런하여 많이 버느라고 수고하며 고생하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5절은 게으른 자를 비웃는 속담인데, 코헬렛이 이 말을 인용한 것은 게으름을 비난하기 위 해서가 아니라 헛된 부지런함을 경계하기 위해서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석이나 번역판들 가운데서는 5절을 인용구로 이해하여, 5-6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속담에 이르기를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는다'고 말하지만, 내 생 각에는 차라리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낫다."

{표준새번역}은 우리말 표현 기법을 살려, 인용문에 인용구 표시를 하면서, 그것이 객관 적 인용임을 나타내는 표현을 써서, 번역을 다음과 같이 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하였다.

"5 어리석은 사람은 팔짱을 끼고 앉아서, 제 몸만 축낸다"고 하지만, 6 적게 가 지고 편안한 것이, 많이 가지려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낫다."

코헬렛의 관찰과 주장은 게으름을 부리는 것이 무조건 비난받을 것만이 아니고, 근면하 다고 하여 다 칭찬 받을 일도 아님을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이, 그늘에 앉아서 물담배만 빨고 있는 아랍인 남자들을 보고 게으르다고 비난하는 것은 그렇게 틀린 진술이 아니다. 그러나 산을 허물고 땅의 가슴에 쇠기둥을 박고 사막을 개간하는 유대인들 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 역시 반드시 틀린 진술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가 한 주간에 닷새만 일하는 주 5일 근무제를 논의하고 있 다. 노동 시간 44시간을 40시간으로 줄이고,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만 일하고, 토요일과 일 요일은 쉬자는 것이다. 사용자 쪽에서는 국가 경제 회생과 국제경쟁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 여 이 제도 실시의 시기상조를 말한다. 노동자 쪽에서는 삶의 질을 향상하고 노동력을 증강 하기 위하여 당장 실시할 것을 주장한다. 양쪽에 공통적인 관심사는 "노동력"이다. 쉬지 않 고 일하는 노동력의 효과를 말하는 것은 사용자 쪽이고, 쉬면서 노동력을 배양한다는 것은 노동자 쪽이다. 사용자 쪽에서는 쉬면 생산이 줄어든다고 하고, 노동자 쪽에서는 쉬면 오히 려 힘이 축적되어 더 효과적인 노동을 하게 됨으로 생산이 줄어들기는커녕 오리려 늘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코헬렛의 견해는 노사 어느 쪽과도 다르다. 생산을 줄여서라도 국민이 평온하게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일이고, 생산을 늘리고 수출을 증대시켜도 국민이 수고하고 고생만 하는 바람을 잡는 것 같은 일만 되풀이하는 결과를 빚는다면 결코 삶의 질이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착안한다.
구약의 창세기 안에는 이것과는 좀 다른 견해도 있다. 구약의 "안식"의 개념에서는 휴 식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휴식 그 자체가 "거룩하고" "복 받은" 시간이다. 창조 과정에서 성스러움을 맨 먼저 부여받은 것은 장소나 인물이 아니고 시간이다. 시간 중 에서도 노동 시간이 아니라 휴식 시가이다. 창세기는 휴식의 이런 국면을 다음과 같이 진술 하고 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 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 2:3)

노동 시간은 속(俗)된 시간이지만, 휴식의 시간은 성(聖)스러운 시간이다. 그러나 우리 의 노사 어느 쪽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심지어 대형 교회 목회자들 가 운데는 생각을 달리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노동계에서 주 5일 근무제를 실시 하여 토요일과 일요일을 휴일로 정할 경우, 주일 예배 참석 인원이 줄 것을 걱정하고, 거기 에 따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예배의 중심이 주일 오전 11시에서 토요일 오전 예배로 바 뀔 가능성이 고려되고 있다. 교회마저도 안식의 중요성보다는 예배 인원의 증가에 더 관심 을 쏟고 있다. 교인 확보와 주 일회 큰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노동자가 누려야 하는 의 휴식의 중요성도 같은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