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기능과 능력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따라서 지성적이요, 그만큼 지적 능력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히 듣는 말처럼 사람들이 ‘생각 없이’ 말하고, ‘생각 없이’ 행동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인간 동물(human machine)’처럼 움직이게 됩니다.
사람들 가운데서도 5번 유형은 생각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더라도, 자기가 해야 할 것에 대하여 충분히 알아야만 하기 때문에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또 생각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를테면, 글을 읽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 언니나 오빠 또는 부모나 다른 어른들에게 자꾸 질문을 합니다. ‘질문쟁이’입니다. 문자를 해독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책을 많이 읽습니다.
5번 유형은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머지 지식의 함정에 잘 빠집니다. 남 보기에는 충분히 알고 있다고 비쳐지는 경우라도 그들 스스로는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너무 깊이 생각하다 보면, 이런 습성 때문에 어릴 적부터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속담에서처럼 “돌다리도 두드리고 (잘 안) 지나갑니다.”
자연히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하는 속성이 강해지다보면 분석적인 특성이 강화됩니다. 어릴 때부터 많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알아야 하고 고민하다보니,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빠져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뭔가 텅 빈 느낌 같은 것을 피할 수 있는 만큼 피하려 합니다. 공허감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지식이거나 물질이거나 잘 내어놓지 못합니다. 텅 비게 되는 것이 싫어서입니다.
5번 유형의 격정은 그래서 인색으로 나타납니다. 남을 가르치는 교사나 교수들 가운데서도 지식을 전달하는데 인색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강의 준비도 소홀하거나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것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알고 보면 자신을 위해서는 책도 많이 보고 공부도 많이 합니다. 다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공허를 기피하려는 속성 때문에 남에게 내주는 것을 잘 못할 뿐입니다.
이런 속성 때문에 이들은 지식 뿐 아니라 시간이나 물질을 남에게 내주는 것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성향이 강해지면 인색이 탐욕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뭔가 내놓기 싫어하는 쪽과 또 뭔가 가득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 쪽으로 기울다보면 좀 더 채우려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색과 탐욕은 양쪽 날개처럼 또는 두 수레바퀴처럼 나란히 서게 됩니다. 이쯤 되면 생각은 많아도 몸을 움직이거나 행동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에니어그램을 살피면서 누구나 알게 되는 진실이 있습니다. 만 3세로부터 6세 사이에 성격 유형이 결정되는 시기에 어떤 환경에서 자라며 어떤 인간관계 속에서 살았는가 그리고 부모와의 사이에서 어떻게 애정을 경험하고 표현했던가 하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이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5번 유형은 특히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특징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대개 어린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또 부모에게 의존합니다. 그런데 5번 유형의 속성이 강화되면서 이들은 양친 부모와 양가적 관계에서 자라납니다. 이를테면, 부모 두 분 가운데 어느 한 쪽에 대해서가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는 엇갈림을 경험하며 자랍니다.
그래서 5번 유형은 양친 부모를 살피고, 가정의 분위기나 환경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언제나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관찰의 필요성은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환경을 이해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강렬하게 요청되는 속에는 환경에 압도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본적 공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낯선 환경에 처하면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런 속성은 대인 관계 속에서도 신중함으로 잘 나타납니다. 때로는 이 정도를 넘어서서,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 내용을 분석하며 생각하는 모습이 역력히 나타나기도 합니다. 남을 어렵게 만들거나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도, 바로 그 분석적인 태도 때문에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들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심지어 아는 것은 많으면서도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비난도 듣게 됩니다.
5번 유형은 이처럼 아는 것 많고 생각이 많은 것 때문에 감지력이나 지각이 예민하고, 분석적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남의 말에 대하여 냉소적입니다. 그리고 괴팍스러운 인상을 남기기가 쉽고, 지나치면 외곬으로 빠져들며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5번 유형도 격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다루는 법을 익히면, 자신의 격정 속에 있는 최상의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5번 유형은 격정이 인색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남에게 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낭비는 모릅니다. 속으로 간직하려는 속성 때문에 나서는 일이나 단체에 소속하는 일 같은 것을 잘 못합니다. 그러나 참된 지식을 소중히 여기면서 섭리를 따라 살겠다는 결단을 하고 나서면,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초연해집니다.
5번 유형이 초연한 마음으로 살면서 건강해지면 자신이 지닌 풍부한 지식과 깊은 생각으로 남에게 이바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주변의 사람들이나 세상을 깊이 이해하며 특유의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고 도울 수 있습니다. 탁월한 지각과 통찰력을 가지고 행동하며 리더쉽을 발휘하게 될 때,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격 발달 단계를 살피자면 누구나 변화과정을 끊임없이 오르내립니다. 5번 유형은 특히 생각과 관찰과 지식이 남달리 강한 만큼, 건강과 통합을 지향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지 않으면, 특유의 속성 때문에 행동은 안하고 지식에만 빠져들 가능성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건강과 퇴화의 방향으로 떠밀려 내려가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고립되고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산만해지거나 경박해지거나 히스테리칼해지기도 합니다.
5번 유형은 그러므로 어떤 행동을 하려고 나서기 전에라도 평소에 몸을 움직이는 노력부터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유의 지식과 통찰력으로 에니어그램의 진실을 격언처럼 표현한 말로서 “에니어그램은 영원한 운동성(Enne- agram is perpetual motion)”을 화두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곧 지식의 표현으로서의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행동하는 지성’, 이는 바로 건강한 5번 유형의 행동 양식과 생활 방식을 두고 할 수 있는 좋은 말입니다. 특히 “모든 것을 이해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된다”라는 격언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게 됩니다. 지식 때문에 동떨어져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동정심과 관용을 베푸는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