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공부는 변화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제 4의 길이라 합니다. 첫째가 감성을 다듬는 길, 둘째가 지성을 다듬는 일, 셋째가 몸을 다듬는 길이라 하자면, 넷째는 감성과 지성과 몸 즉 본능 등 여러 가지를 아울러 고르게 다듬으며 조화로운 발전을 꾀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니어그램 공부는 일부에서 오해하는 바와 같이 자신의 성격 유형을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작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일반적으로 에니어그램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발견하고 나서 흔히 묻습니다. 내 성격 유형을 발견했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성격 유형을 정확하게 찾았다면, 그것은 변화의 길로 들어서는 관문입니다. 왜냐하면, 성격 유형의 에니어그램을 알면, 거기에 따른 자신의 격정과 아울러 기피하는 것, 함정, 변화(회개)할 것과 덕목 등 변화와 성숙으로 가는 데 필요한 자기 지식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에니어그램을 모르고 살면, 일생을 두고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와 그 원인을 정확히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기고 나면 “어째 또 이런 일이?” 하고 스스로 묻지만, 해답을 얻지 못한 채 지나가다가, 또 다시 같은 물음을 묻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사람들이 알면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해프닝’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삶의 기계성’이라 합니다. 사람이 ‘인간 기계’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니어그램을 통하여 자기 발견을 하면, 자신이 어떤 격정에 의하여 강박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가를 알게 됩니다. 이를테면 습관적인 반응이나 그 표현으로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때는 주로 콤플렉스나 특유한 공포나 방어기제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들이 격정에 사로잡혀서 강박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격정을 전통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열거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죄’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각자가 성격 유형에 따라 독특한 격정을 파악하고 나서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익히면 나머지 여덟 가지 격정을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려고 부질없이 애를 쓰지 않아도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이것이 에니어그램의 지혜입니다.
마찬가지로 아홉 가지 덕목을 모두 갖출 수 있으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것도 자신의 성격 유형에 맞는 덕목 한 가지를 갖추게 되면 나머지 여덟 가지를 갖추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성격의 에니어그램과 아울러 격정과 덕목을 각기 아홉 가지씩 파악하게 될 때 보편성으로 말하자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아홉 가지를 다소간에 얼마씩은 다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수성으로 보자면 격정도 덕목도 각자의 성격 유형에 따라 독특한 것이 있기에 그 특유한 성격의 에니어그램과 그에 따른 격정과 덕목을 파악하고 그것을 다루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실은 사람들이 그 격정의 특수성에 따라 실수도 하고 사고도 당하고 고민도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평생을 두고 고민하는 것이 있고, 고치려고 죽을힘을 써도 못 고치는 결점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동형 반복’의 실수와 사고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에니어그램을 배우면 이런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따라서 격정을 다루기 위하여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자면 자연히 자기 관찰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높여가게 됩니다. 그런 만큼 자기 변화에 있어서는 자기 지식의 증진과 자기 관찰의 발전이 긴요합니다. 이런 중요성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서 노력의 열정이 좌우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뜻에서도 자기 지식(Self- knowledge)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에니어그램을 단순히 지식으로만 알고 지내면 자기 관찰을 포함하여 자기 변화에 필요한 모든 노력들이 얼마 안 가서 줄어들고 마침내 정지 상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에니어그램과 성격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 머리에 남게 되고, 변화에 대한 노력은 별로 안 하게 되면 에니어그램을 배우지 않은 사람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좀 더 심각하게 말하자면, 그런 공부는 아니함만 못합니다. 왜냐하면, 에니어그램은 본디 자기 발견과 변화의 길을 찾는 것이기에, 에니어그램 지식과 이를 따른 자기 지식이 변화와 성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스스로 허위성에 빠지게 됩니다. 그 결과는 자기 변화와 성숙에 대한 노력은 소홀히 한 채 남의 성격이나 판단하고 나서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에니어그램 지식을 잘 감당하지 못하는 위험이 그만큼 큽니다.
사람은 각기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이 카리스마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카리스마를 선용하면 대단히 좋으나, 이와 반대로 오용 또는 남용하면 매우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passion도 선용하면 창조적 열정이 되고, 남용하면 파괴적 격정이 됩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합니다. “To be in a passion, you good may do. But no good if a passion is in you.” 이를 풀이하자면, 우리가 passion을 사로잡으면 유익할 수 있으나, 반대로 우리가 passion에 사로잡히면 무익하다는 말입니다. 에니어그램을 개괄할 때 각 성격 유형에 따른 격정은 흔히 말하는 단점으로 보이는데, 이를 뒤집어 놓고 보면 덕목으로 곧 장점으로 나타납니다. 앞서 말한 것과 연결시키면, 격정과 덕목의 목록을 만들어 놓고 보면 우리가 passion을 사로잡으면 덕목(장점)이 나타나고, 우리가 passion에 사로잡히면 격정(단점)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 관찰은 바로 이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 측면의 두드러진 예를 에니어그램의 3번, 6번, 9번 유형에서 한 번 봅니다. 격정과 덕목의 대조적인 모습이 3번은 기만과 신실이고, 6번은 공포와 용기이고, 9번은 태만과 근면으로 나타납니다. 그야말로 극적인 대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머지를 살피면 1번은 분노와 평정, 4번은 시기와 침착, 2번은 자랑과 겸손, 8번은 오만과 소박, 5번은 인색과 초연, 7번은 탐닉과 맑은 정신으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이 단점과 장점, 격정과 덕목의 역동성을 파악하고 passion의 양면성을 밝게 통찰하면 자기 관찰과 자기 기억의 순환이 원활해집니다. 이와 연결시켜서 자기 자신을 맑은 의식의 눈으로 관찰할 때, 감성과 지성과 본능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잘 이루어졌을 때는 격정이 끓어오르지도 않거니와, 설령 끓어오른다 할지라도, 그것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꽉 잡고, 그것이 지닌 최선의 힘을 믿어 줍니다.
베스트 에너지는 이런 때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자기 관찰과 변화의 길을 꾸준히 가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힘을 얻게 됩니다. 영성의 차원에서 보면 에니어그램의 지혜와 변화의 길을 두고 표현해서 화두를 삼습니다. 즉, ‘강박 충동에서 관상으로’(From compulsion to contempla- tion) 옮겨 가는 노력을 중단 없이 지속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