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주제를 "길과 인생"으로 정한 것은 참으로 좋다. 그런데 "어떻게 갈 것인가?"를 물었다면, 목적은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테지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물은 데 이어 "우리의 목적지는 어디인가?"를 덧붙인 것을 보면, 필경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는 전제가 서 있다고 봐야 옳을 듯 싶다. 그렇더라도 그런 물음을 묻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막상 묻고 나서는 데는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얼마 전에 '리엔지니어링'을 화두로 삼고 경영 혁신을 부르짖은 사람들도 말하였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할지 그 변화의 필요를 아는 지혜로서 선견지명(Prescience)이 필요하고, 다음에는 그 필요를 따라 변화를 추진하고 이루어 내는 '과단성'(Boldness)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고, 목적지를 알기 위한 노력에는 그 만큼 지혜가 과단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영성 신학의 차원에서 보자면, 분별력과 결단력의 배합이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영성가 헨리 나우엔이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말을 타고 들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들에서 일하던 노인이 천천히 허리를 펴고 일어나면서 물었다. "어이! 젊은이, 어딜 그렇게 부지런히 가나?" 그 젊은이 대답이 놀라웠다. "할아버지, 저한테 묻지 마시고 이 말한테 물어 보세요" 이 말이 주는 충격은 바로 오늘의 제목을 받아 들었을 때 느끼는 도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목적을 잃었고, 방향을 잃은 세대라는 무서운 메시지가 그 속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2. 상실의 세대
새천년을 맞이하고 21세기를 살면서도 우리는 20세기의 중병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앓고 있는 셈이다. 급기야 "9-11"테러 사건으로 그 병은 여지없이 곪아 터졌다. 20세기가 그토록 과학기술과 물질 운명이 급속도로 고도성장을 거듭했건만, 상실의 시대로 불리던 까닭이 명백해진 것이다.
토마스 무어는 일찍이 "20세기의 중병"은 "영혼의 상실"이라 하였다. 이는 삶의 목적과 의미의 상실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중독증세에 쉽사리 빠지거나 걸핏하면 폭력에 호소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설득에서 강압으로, 다시 강압에서 폭력으로 빠르게 옮겨간다. 마이클 러너 같은 사상가는 말한다. 현대인들은 이기주의와 물신주의와 무한경쟁에 깊이 빠져서 모두가 삐딱하게 냉소주의나 무관심에 빠져들어 의미를 상실하였다.
오늘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하여 열심히 살기는 원하지만 인간다운 행복한 삶은 잃어버린 채 앞만 보고 달린다. 행복을 상실하였다. 물질적인 풍요와 충족에 중독이 되다시피 깊이 빠져들면서 영혼도 상실하고, 인생의 목적도 의미도 상실하고 보니까 결국은 인간성의 상실 곧 인간의 상실로 치닫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는커녕, 믿음도 영성도 메마르고 피폐해지는 결과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상실의 세대를 극복해야 한다.
3. 치유와 회복의 세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정직하게 묻는 것 자체가 큰 실마리가 된다. 세계적인 해석학의 대가인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는 "문답의 논리"를 살려야 진리를 알게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가를 물을 때, 앎을 얻게 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된다. 따라서 우리를 모르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내가 나를 모르는 까닭에 우리는 열심히 일하면서도 왜 일하는 줄을 모른다. 나를 모르는 까닭은 인성 또는 성격을 스스로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을 안다고 하여도, 그것이 '참 나'가 아니라 '거짓 인성' '거짓 성격'인 줄을 모른다. 달리 표현하자면 '나'라는 겉사람은 진짜 '나'가 아니라 가짜 '나'인줄 모르고 산다.
따라서 속사람으로 '참 나'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본성인데도 불구하고, '참 나'가 수동적이나 비활동적이거나 잠자고 있는 줄을 모르고 지낸다. 그러니까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겉사람'으로서 나의 성격/인성이 가짜 '나'인 줄도 모르면서, 그 겉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니까 상실의 세대가 될 수밖에 없다.
겉사람은 만 6세를 전후하여 상처를 받고, 상처받은 영혼이 살아남기 위하여 자기 나름대로 생존 전략을 세운 것이 성격이 되었다. 습득과 습성에 형성된 성격은 제각기 특유한 상처를 내면 깊숙이 지니고 살아간다. 따라서 성격 유형에 따른 특이한 공포와 불안과 욕망과 콤플렉스를 지니고 산다. 결국은 이런 상처와 그 상처로 말미암아 표출되는 잘못들 때문에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의 상처를 발견하고, 그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상처를 치유하면, 전에는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이제는 남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 곧 "상처받은 치유자"가 된다. 치유와 회복의 세대가 탄생한다.
4. 통합과 성숙의 세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에니어그램 영성"은 상실과 상처 속에 깊이 빠져 있는 세대들 치유와 회복, 나아가서는 통합과 성숙의 세대로 전향시키고 변화시키는 힘을 드러내고 있다. 자기를 발견하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나'를 발견하면, 나의 상처를 알게 되고, 이와 관련하여 나의 격정과 강박충동을 알게 된다. 이른바 '혈기 충만'하여, '욱' 하면 드러나는 결정적인 단점과 "나는 그런 사람이다 어쩔래?"하면서 드러내는 상처받은 나, '가짜 나'를 바로 보게 된다.
이렇게 자기를 가두고 있는 성격, 사로잡는 격정, 사랑하기 원하면서도 거침없이 드러내는 미움과 공포 같은 것을 분명하게 알게된다. 그러면 모두가 잘못하려 해서가 아니라 어릴 적에 입은 상처 때문에 그러는 것을 밝히 깨닫게 되면서 고난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길을 가게 된다. 통합과 성숙이 이루어지기 전에, 치유와 회복이 경험되기 전에, 그저 상처받은 사람들로서 처지와 형편이 같고 "입장의 동일함"을 단점과 격정 속에서나마 확인할 때 동반자 의식은 강화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영성의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이 출현한다.
자기를 발견하는 길은 곧 본성, 즉 본래적 자아를 찾는 길이요, 이는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길이다. 자기 발견의 길을 찾고, 자기 발견의 지혜를 터득하면, 그때에, 우리는 각자 내면 속에 있는, 그리고 '우리'라는 관계와 공동체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 속에 있는, 그리고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며 길을 가게 된다.
5. 나가는 말
"너 자신을 알라. 아무 것도 무리하지 말라. 매사를 스스로 검증하라." 에니어그램 영성이 안겨 주는 이런 지혜를 끌어안고 산다면,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의 격정과 강박충동에서 벗어난다. 참된 엑소더스가 이루어진다. 자기 발견의 길을 걷게 되면 개인도 사회도, 교회도 세계도 온 인류가 통합과 성숙의 길을 가게 된다. 과학기술 문명도 인간성 회복을 위하여 봉사하게 된다. 자유와 건강과 행복을 통전적으로 균형과 조화 속에서 누리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가 가르치신 길이요, 몸소 사신 길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진리가 이끄는 대로 갈 뿐이다. 어디로 이끌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따라갈 길은 오직 이 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