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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목회 일기 (2)
저는 목사가 아니고 교회 관리인입니다
나의 공식 직함은 영춘제일교회 부담임 목사입니다. 원래 영춘교
회 담임목사였으나, 3월 말 영춘제일교회와 통합을 하면서 부담임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나 홀로 인정하고 있는
직함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교회 관리인입니다. 흔히들 교회
사찰이라고 하는 직함입니다.
사실 나는 정말 교회 관리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목회가 하도 힘
들어서 어느 교회의 관리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었
습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목사라는 신분을 감추
고 관리인이 되려면, 감리교회가 아닌 다른 교단에 속한 교회의
관리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관리인이 된다 해도, 과
연 언제까지 목사라는 신분을 감출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결국
은 교회 관리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교회 관리인이 되었습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이 되면, 제가 교회청소를 하기 때문입니다. 농촌의 작은 교회라서
관리인이 따로 없고 속별로 돌아가면서 하고 있습니다만, 목사인
제가 운동 삼아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청소를 하면서 느낌 점이
있기에, 이같이 글로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말을 잘 들어야 목회하기가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교인들이 목사의 말에 순종을 잘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실 순종을 잘하는 교인들보다는 제대로 말을 듣지 않
는 교인들이 더 많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어떤 부
탁을 했을 때에 그 교인이 그대로 순종하면 서로 은혜가 되지만,
교인이 목사의 말을 듣고서도 들은 척 만 척 할 경우에는 피차가
괴로운 일입니다. 불순종하는 교인도 마음이 꺼림칙할 것이고, 그
교인에게 부탁의 말을 했던 목사는 자존심이 상하게 되는 법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교
회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관리인은 다른 사람에게 무얼 시킬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목사나 다른 교인들로부터 부림
을 받아 일하도록 고용된 사람입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제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기분 나빠할 수가 없는 것입
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저는 과거에
관리인이 되기를 원했던 적이 있고, 이제는 나 홀로 인정하는 교회
관리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청소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
나는 교회 관리인이다’라고 거듭 되뇌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목사는 섬김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왔
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섬기러 왔노라고 하셨는데,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으심으로써 그 섬김의 도를 몸소 보여주셨는데,
그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섬김 받기를 원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 자신도 모르게 섬김을 받는
것이 몸에 배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저는 교인들이
섬겨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섬김을 받는 것으로 족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
서 목사로서의 권위를 단단히 누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인들이 목사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며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 사실 교인들이 마음속으로 목사를 존경하면서 따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많은 목사님들이, 목사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식으로 협박과 공갈이 섞인 설교를 함으로
써, 교인들이 순종 잘하기만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설교 가지고
잘 먹히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방법을 동원하여 목사의 권위를
높이고자 머리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고급승
용차를 구입해서 타고 다녀야, 사람들이 훌륭한 목사요 성공한 목
사로 알아주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농촌에서 목회하면
어쩐지 능력이 없는 목사로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어
떻게 해서든지 도시로 진출하고자 무진장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교인수를 물어보면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습니
다. 왜냐하면 교인수가 얼마 안 되기 때문입니다. 새로 생기는 교
인보다는 도시로 이사를 하거나 돌아가시는 분이 더 많기 때문에,
도무지 교인숫자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교인수
를 물어볼 때에는 참으로 입장이 곤란했던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 사람들이 교인 수를 가지고 목회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한다는 것
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천 명 모인다고 해야 목사로서 그
권위가 설 텐데, 현실은 비참하고 꿈은 멀기 때문에, 그동안 사실
저는 아주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지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가짜박사를 받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 동기
중에서도 박사가 아닌 사람이 드뭅니다. 목사가 아닌 박사가 더
나은 호칭인 줄로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진짜박사를 받을 능력이 없으니 가짜박사라도 받아볼까 하는 생
각까지는 안 해봤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감리사나 감독이 되
어야, 사람들로부터 대우를 받게 되고 존경을 받게 되리라는 생각
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새파랗게 젊은 목회자들까지도
정회원 꼭지만 떨어지면 감리사를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서는 가 봅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자칭 교회관리인 되었기에, 그런 부질없는 생
각을 다 버리게 되었습니다. 농촌의 작은 교회, 그런 교회에서 관
리집사가 되었으니, 제자들의 발을 씻겨드린 주님보다 더 높아지
겠다는 망상을 갖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작성자 ; 정 수 환 목사(dor@dor.or.kr)
홈페이지 주소(물맷돌) ; http://www.dor.or.kr
연락 전화 ; 영춘제일교회( 043-423-3038, 011-738-3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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