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의 계절에


이제 바야흐로 추수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벼를 벤
다음에 얼마간 있다가 탈곡을 했는데, 지금은 벼를 베는 과정
을 거치지 않고 직접 탈곡을 하기 때문에, 추수의 계절이 되었
어도 옛날처럼 그리 바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는 일이 그 어떤 직종보다 힘든 것만은 사실입니
다. 기계화가 되어서 이전보다는 많이 쉬어지기는 했어도 여전
히 농사짓는 일은 무척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가을에
추수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그 힘든 농사를 계속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도 잠깐 아버지의 농사일을 거들어 드린 적이 있습니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드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농사일을
하게 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였습니다.
경운기도 없고 모터펌프도 없던 그 시절에는 농사를 짓는다
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서 가물 때에는
시내(작은 개울물)를 막아서 그 고인 물을 퍼 올려야만 모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가물 때에는 물을 퍼
올리는 일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새벽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아버지와 함께 물을 퍼 올려야만 했던 것입니
다.
물을 퍼 올릴 때마다, 각다귀라는 놈이 내 몸의 이곳저곳을
사정없이 물어대는 바람에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런가 하면,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가 그만 하자고 하실 때까지, 저는 힘들어도 그만 하자는 말씀
을 드리지 못하고 계속 물을 퍼 올려야만 했습니다.
벼에 병이 생기거나 해충이 생겼을 때에 농약을 주는 일도
이만저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약통을 등에다
지고 약을 뿌려야 했기 때문에 그 고통이 대단했습니다. 보통
인내심이 아니면 견디어내기가 힘든 중노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서 누렇게 익은 벼들을 바라보게 되면,
그동안의 모든 고통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
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은 ‘농부들이 이 맛에 그 힘든 농사
를 계속하게 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벼 타작을 해서 마당 한 가운데에 동산처럼 가득히 쌓인 나락
더미를 보고 있자면 가슴 뿌득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그동안 애써서 농사지은 보람을 한껏 맛볼 수 있
는 그런 순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타작 일을 함께 하신 동
네 아저씨가 말(斗)을 가지고 벼를 퍼 담는 동안, 저는 벼가 몇
섬이나 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마당가에다가 한 섬 두 섬 막
대기로 바른 정(正)자를 표시했습니다.
만일 예년보다 훨씬 더 많은 소출을 하게 되었을 때에는, 우
리 식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날 같이 일했던 모든 일꾼들도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 덕분에 그날 닭 한두 마리는 희생이 되
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만큼은 부모님께서 모든 근심걱
정이 다 사라진 듯이 함박웃음을 웃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을에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농부들이 많은 땀
을 흘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무엇
보다 농사를 짓게 될 농토를 잘 가꿔 놓아야 합니다. 논밭에
굵은 돌들이 있으면 다 제거해야 하고,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농토를 기름진 땅으로 만들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잘 자라서 많은 열매
맺기를 원한다면, 본인 자신이 땀 흘리는 수고와 노력을 계속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비록 날씨가 지겹도록 무더워도 신앙생
활은 쉬지 말아야 하고, 엄청 추운 겨울날씨가 계속되더라도
더욱 성숙한 믿음을 갖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 밭에 굵은 돌과 같은 옹고집들
이 남아 있으면 신속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그 믿음의 토양이
가물어서 메마를 경우에는 성령의 단비로 촉촉이 적셔야 할 것
이고, 그 믿음의 나무에 병이 들었거나 해충이 있을 때에는 주
님께 간구하여 치유 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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