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일
"목사님, 저는 사도신경중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를 외울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영원히 사는 것은 이제 알 것 같은데 몸이 다시 사는 것은 잘 모
르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부활하기 위해서는 사후에 시신을 화장으로 모시면 그 형
체가 없어져 부활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본질적으로 화장을 금한다고들 하는데 그 말이
맞는지요?"
이렇게 목사님과의 첫 대화는 우매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벌써 햇수로 삼 년 전, 갑자기 알 수 없는 적혈구 파괴증으로 입원하여 수십회의 혈장 교환과 수혈 등 치료로 한달 보름간을 병상에 있다가 나온 후였다. 당시에 의사의 엄포였는지는 모르지 만 소생할 가망이 30%요, 소생을 하고도 일부장기의 기능이 완전해질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 는 진단에 식구들의 놀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 오히려 차분해지며 '나를 부르시는 때가 지금일까' 하고 막연했던 죽음과 맞닥뜨렸던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절실하게 사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특히 중환자실에서 열흘간은 의식조차 불분명 한 많은 환자들 속에 혼자 또렷한 의식으로 환자들이 달고 있는 각종 상황 진단용 기계 음만이 들리는 철저한 고립상태의 시간들이었다. 오직 열려있는 내 귀와 의식만이 온갖 생각 속을 헤맬 때 얻은 놀라운 인식 속에서 처음으로 무궁한 영의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입원당시 우리 집에는 여러 해 동안 뇌졸중으로 누워 꼼짝 못하고 계신 어머니가 계셨다. 병상 에서의 나의 가장 큰 염려도 앓고 계신 어머니였다. 하루 앞을 모르게 위중하셨던 어머니의 병환 은 나의 퇴원 후에도 일년을 더 견디셨고 다양한 종교를 가진 많은 형제사이에 장례문제가 논의 되던 중이었기에 내겐 아주 중요한 물음이었던 것이다.
퇴원 후 나 자신 그 강렬한 경험을 어떻게 정리할지 몰라하고 있었고 그때까지 내가 다니던 교
회에서 들었던 하나님 모습과의 연결도 내겐 시원히 되지 않고 혼란 중에 있었다. 그러던 중 병상
에 누워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에 가장 가깝게 살고 있다고 생각되던 친구의 권유로 이대 여
성 신학 연구소에서 열린 '보라성서' 시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시간들은 예배의 형태
나 성경 말씀을 나눔에 있어 기존 교회 방식과는 전혀 색다른 것이었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
던 성경의 새로운 해석, 무수한 질문들과 도전, 결국은 성서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고정관념의 깨
어짐 그 자체였다. 그곳에서 공동체성서연구와 영성수련 시간에 상기의 질문으로 시작해서 하나
님의 권능을 인간의 작은 소견으로 축소시키고 있는 착각을 일깨워 주셨을 때의 그 감동! 그동안
내게 해결되지 않았던 주입식 신앙관에서의 해방과 자유와 희열이었다.
이렇게 해서 어머님의 장례는 기독교식으로 화장으로 평안히 모셔드릴 수 있었다.
그후 만난 월요공동체, 매 주일의 첫날, 우리는 성경말씀을 대하며 이천 년 전의 인물들과 시공
을 넘나드는 조우를 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이천 년 전의 그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지
금의 인간의 모습들과 다를 것이 없는 무수한 인물들을 만난다. 내 삶의 자리에서의 아픔을 마음
껏 토로하기도 하고 함께 아파해 주고 말없이 격려해 주시는 목사님 이하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
도를 느끼며 위안을 받기도 한다. 또 각자의 이제까지의 삶의 자리가 다른 회원들과의 허심탄회
한 대화에서 나보다 더 역경을 견뎌온 사람들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들으며 나의 어려움은
어느덧 사치가 되어버림을 경험한다.
50에 다시 시작한 내 인생의 새로운 장에 소중한 만남인 월
요공동체. 그곳에 하나님 말씀을 바로 이해하려는 갈망들이 있다. 작은 일상 속에 순수와 진실을
보아내는 눈이 있다. 남의 일에 귀 기울이는 열린 가슴들이 있다 타인의 고통에도 아파하는 뜨거
운 눈물이 있다. 말없이 격려하는 따뜻한 눈빛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에 서로 가까
이 도달하도록 간절히 바라는 기도가 있다. 그래서 서로 떠나 있는 시간에도 항상 향해 있는 우
리의 사랑이 있다. 늘 스스로의 부족을 실감하며 예수님의 삶을 따라 말씀을 실천하려는 몸부림
이 있다. 또한 첫 아기의 걸음마를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
리 한 사람 한 사람 곁에 늘 함께 하심을 자각하는 맑은 영혼들이 있다.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만
들어 내는 푸짐한 식탁이 있다. 굳이 선행이고자 하지 않는 몸에 밴 나눔이 있다. 그래서 행복해
하는 이 들의 평화로운 미소가 자아내는 진정한 하나님의 작은 나라가 있다. 그리고 이 작은 하
나님의 나라를 소리 없이 이 땅에 퍼트리고픈 간절한 꿈들이 있다.
* 양영일님 (월요성서공동체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