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한
몇 해 전부터 우리 성도들의 일터인 밭과 논을 보면서 흙의 정직함에 매료되었습니다. 뿌린 만 큼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해주는 그 흙 말입니다. 올해는 우연찮게 다섯 마지기 (1000평)밭에서 농 사를 직접 짓게 되었습니다. 그 땅을 얻은 후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새벽예배가 끝나면 늘 그 밭의 한가운데 서서 그 밭의 풍성한 열매를 꿈꾸어 봅니다.
드디어 봄이 되면서 일 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상상했던 그 열매가 맺기까지는 그 밭은 농사짓는 내게 엄청난 땀과 정성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뽑고 또 뽑아도 모질게 또 올라오는 것이 잡풀이었습니다. 한달 정도 지날 무렵 내 몸은 지쳐 버렸고 나태함의 본성이 나타납 니다. 내일하지 모레하지 미뤄지기 일쑤입니다. 저 일구는 밭의 옆에는 우리 권사님의 밭이 있습니 다.
그런데 그 밭은 참으로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 권사님은 그 밭에 너무나 정성을 쏟으십니다. 계속 날씨가 가물어서 뿌려진 씨앗이 제대로 싹을 못 틔웁니다. 수분이 없기 때문이지요. 권사님은 낮에는 공공근로사업에 다니시므로 낮에는 시간이 없으십니다.
퇴근후 어느 날 저녁 물을 주신다하시며 그 밭으로 물을 대십니다. 아마 9시가 넘어선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밤에 물을 주신다 하시길래 "권사님 뭐가 보여야 물을 주잖습니까?" 물었습니다. 그 런데 권사님은 지금 물을 안주면 겨우 돋아나려고 하는 싹이 제대로 못나오고 말라버린다며 호수 를 들고 밭으로 들어가십니다. 나는 아무리 봐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권사님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더듬더듬 물을 주십니다. 농사꾼 경력 60년의 평생 농사꾼입니다. 그분은 실 로 참 농사꾼입니다. 저는 그분에 비하면 가짜 농사꾼입니다. 저는 그 일을 통해서 은혜를 받았습 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저에게는 참 농사꾼이십니다. 저는 그렇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내 영혼을 위해 모든 정성, 헌신 심지어 그분은 나를 위해 피를 쏟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내게 참 농사꾼이 십니다. 저는 아직도 영글지 못한 씨앗입니다.
오늘 새벽예배 후에 그 권사님이 저와 함께 밭으로 들어가서 같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풀을 뽑으시며 내게 농사꾼 강의를 시작하십니다.
"권사님 대단합니다. 그 밤에 뭐가 보입니까? 그렇게 정성껏 물을 주십니까? 권사님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목사님 뭐가 대단합니까? 제가 농사꾼 주제에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겠습니까? 잘난 농사꾼도 요 하늘이 도와야지요 하늘이 돕지 않으면 모든 수고가 헛되지요."
하느님이 돕지 않으시면 1년 농사는 헛수고랍니다. 하늘이 도와야 한답니다. 농사꾼의 수고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헛되답니다.
저는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한국의 교회가 생각났습니다. 교회는 목사의 지극한 소명 의식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 한 사람 한사람의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교회를 돕는 하느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 땅에 교회가 서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 하심입니다. 예수의 능력입니다. 요즈음 교회세습이 문제가 되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자기의 공로로 세워진 교회니 내 자식에게 물려주겠다 는 논리인 것 같습니다. 당신이 죽도록 일해서 세워진 교회인줄 아십니까? 그 모든 비결은 하나님 이 역사 하심의 결과지요. 그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 하심입니다.
1987년 신학교 3학년 시절 광주의 민주 혼을 군화발로 짓밟고 정권을 탈취한 무리들, 수 많은 고문과 억압이 지배하던 시절 많은 민중들이 온몸으로 저항할 때 스스로의 입을 막고 섬김을 외 면한 채 자기의 성만을 쌓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왜 그리 미웠던지... 어느 밤으로 기억 됩니다. 저것도 교회냐고 되물으며 수도 없이 많은 돌멩이를 어느 큰 교회의 건물 앞에 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뛴 적이 있습니다.
그 일은 늘 내 마음에 응어리였습니다. 목회의 길을 걷고 있는 내게 그때 그 일은 그 충격이었 습니다. 언젠가 공동체성서연구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과거의 일을 마음에 떠올리게 되었습니 다.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은 그리 쉽질 않습니다. 실은 내게 그 일은 아픈 상처요 응어리였기에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명상하던 중에 울컥 눈물이 나왔습니다. 신학교시절 받은 상처의 응어리가 되살아난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마음의 응어리로 상처받았던 교회는 사람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온갖 위선과 독선과 죄로 쌓아져온 교회의 바벨탑이었습니다. 성령이 세운 교 회,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부정하고 자신의 힘과 열정으로만 쌓았다고 자랑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렇게 상처받고 10년 넘게 그 응어리를 가지고 목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말 씀으로 그 응어리를 풀어주신 것입니다. 그 말씀은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입니다. "예수밖에는, 다 른 어떤 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이름은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하늘아래 이 이름 밖에는 달리 없습니다." 마음이 약하여 흔들릴 때, 그 상처의 응어리에 빠져 있을 때 예수 의 이름은 내게 위로요, 가장 큰 힘입니다.
* 이요한 목사(의신 감리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