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2000. 7)

아버지의 향기



어머니가 장에 다녀와서 할머님께 말씀드리며 울음을 터뜨렸던 시계였다.
"에미야, 잊어뿌려랴. 큰 액땜혔다구 생각혀. 우리 인규, 잘못혀서 물속에 애를 잃었으면 어쩔 뻔 했냐. 내는 애대신 시계를 빠뜨렸다구 생각헌다. 정초 토정비결에 뭐랬더라. 액땜 이니라. 액땜이구 말구, 쌀 닷말 값에 우리 손주 새끼 샀느니라. 헐타, 헐구말구. 잊어 뿌려라. 아가."
할머니는 어머니 손 등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인규야."
"응?"
"내 한 가지 물어 볼까?"
"경호가 돌을 주워 저수지 물을 향해 던지며 말했다.
"뭘?"
"그냥, 솔직히 대답할 수 있지?"
경호가 다시 물수제비를 뜨며 다짐했다.
"뭔데?"
"너, 진짜루 내 시계 정거장 변소에다 빠쳤냐구……."
"왜? 왜 그걸 묻지?"
"그냥, 너무 쉽게 물어줘서."
"……."
나는 갑자기 눈앞이 흐려왔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지러웠다.
"인규야!"
"……."
"그냥, 그냥 한 번 해 본 말이야."
경호는 번쩍이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나는 울고 싶었다.
"그말 할려구 오라구 했어?"
"아니……."
"그럼 왜?"
"그냥……."
"할 말 없으면 나 집에 갈꺼야."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모교에 안 가볼래?"
"모교?"
"응, 갈현 초등학교. 그 옆에 중국집도 생겼대야. 너 자장면 먹고 싶지 않니?"
"자장면?"
"그래, 자장면……. 너 돈 있지? 지난번 아이스케키 살 때 보니까 많던데……."
경호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좋아!"
나는 저수지 둑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어떻게하면 경호를 믿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내가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동포역의 변소를 모두 퍼내고, 잃어버린 시 계를 찾아내지 않는한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경호형, 진짜루 난 그날 시계를 변소에 빠뜨렸단 말야."
나는 자장면을 정신없이 먹고 있는 경호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알았어! 아, 참 맛있다!"
경호는 자장면을 먹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거 더 먹어."
나는 자장면 그릇을 경호 앞으로 밀어 놓았다. 방학을 맞은 모교, 갈현 초등학교는 메미소리만 요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