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2002. 8)

할아버지 댁의 겨울(2)



창밖에 눈이 내리고 눈 속을 기차는 쉬지 않고 달린다. 다리를 건너, 굴을 지나, 산모퉁이를 끼고 돌며 기차는 달린다. 이야기를 나누며 김밥도 먹고 음료수까지 사서 마셨다.
“엄마, 귀!”
경완이가 말했다. 졸음이 오는 모양이다. 경완이는 잠 잘 때 엄마 젖꼭지를 만지며 자랐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귀로 바꿨다.
“이런 데선 안돼 .”
엄마가 말씀하셨다.
“이런 데선 귀도 간지러워 ?”
경완이가 졸음 찬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젖꼭지를 귀로 바꿀 때 엄마가 간지럽다고 말했던 것을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 건 아니고 사람들이 많잖아 ?”
엄마가 말씀하셨다.
“알았어. 그럼 그냥 자지 뭐.”
경완이가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언제 철이 날까 .”
경일이가 어른같이 말했다.
“너는 철이 났니 ?”
아빠가 말씀하셨다.
“그럼요, 키가 얼만데요 ?”
경일이가 말했다.
“그건 우유 덕분이지.”
엄마가 말씀하셨다.
“우유를 먹으며 자랐으니 정말 송아지구먼, 하하하.”
아빠가 웃으셨다.
“음매 !”
잠든 줄 알았던 경완이가 소울음을 울었다.
“아이구, 이녀석아 꼬물대지 마! 간지럽다니까.”
엄마가 두루마기에 싸안은 경완이를 다둑거리며 말씀하셨다.
“일어나, 이녀석아. 이제 다왔어!”
아빠가 말씀하셨다.
“벌써요 ?”
엄마가 창밖을 내다보셨다.
산과 들에 눈이 쌓여 있었다. 나무들도 가지마다 눈을 이고 있었다. 눈길을 걸었다. 경일이와 경완이가 눈길을 달려갔다. 산언덕을 올랐다. 고개 위에 나무가 서 있었다. 가지마다 헝겊이 걸려 있었다. 눈 덮인 돌무더기가 무덤 같았다.
“뭐야 ?”
경완이가 물었다.
“성황당.”
아빠가 대답하셨다.
“성황당이 뭐야 ?”
경완이가 다시 물었다.
“또 시작이군. 걸어가며 얘기해줄게. 성황당이란 … .”
아빠가 웃으시며 말을 이으셨다.
“…성황당이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복을 비는 곳인데 이젠 이런 게 점점 없어져 간단다. 성황당이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느냐 하면, 옛날에 국가가 지금처럼 커다란 게 아니고 씨족끼리 모여 살았거든? 할아버지의 손주 그 손주의 손주들이 모여 사는 것을 씨족국가라 하고 씨족과 씨족이 모여 사는 것을 부족국가라고 하거든? 그러면 이웃 마을에 다른 씨족국가가 있겠지? 또는 다른 부족국가가 있잖겠니? 그런데 이웃 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는 수도 있거든. 그러면 때때로 싸움도 하게 되지. 그러나 옛날엔 칼이나 총 같은 무기가 아직 없었거든. 무기라는 게 고작 돌멩이 같은거야. 그래서 마을과 마을 사이 고개를 머는 곳에 돌멩이를 많이 모아놓을 필요가 있는거지. 그러나 그냥 돌멩이를 모아 놓으려면 귀찮고 힘도 들겠지? 그래서 꾀를 낸거야. 성황당이라는 것을 만들어놓구, 명절 때 떡해다 놓구 빌기두 하구 고개를 넘나들 때마다 돌멩이를 하나씩 던지며 복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구.”
“그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엄마가 말씀하셨다.
“엄마, 그건 미신이야, 미신.”
경일이가 아는 체를 했다.
“글세 한마디로 거짓말이다, 미신이다, 말할 수만은 없지. 왜냐하면 생활 풍습이나 문화 같은 게 거꾸로 밟아 올라가면 수수께끼 같은 전설이나 신화, 설화 같은 이야기와 만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