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2002. 10)

삼촌의 별나라 (1)



“야, 절하기두 땀 난다.”
경완이가 말했다.
“그런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니? 고랑말, 섬말, 또 뭔 말이랬지? ” 경일이가 말했다.
“형은 여전히 말 생각이구나. 난 어지러워. 절하느라구 뺑뺑 돌았더니.”
“알았어요. 그만하면 충분히 알았어요.”
경완이가 말했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방마다 술상을 날랐다. 떡과 국도 있었다. 이 방 저 방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초저녁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술과 떡을 잡숫고,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다 돌아간 후, 경일이와 경완이는 아래채 삼촌 방에 가 보았다.
“어서 오너라.우리 왕자님들.”
삼촌이 말했다.
“삼촌 장가 안 가?”
경완이가 말했다.
“삼촌은 시골서 살거야? 신문기자 안 해?”
경일이가 말했다.
“어린 왕자님들, 또 시작이군.”
삼촌이 웃었다. 방 안엔 책이 많다. 서울서 신문기자 하다가 시골에 온 삼촌은 책을 많이 읽는 모양이다.
“삼촌은 뭐해?”
경일이가 물었다.
“뭘 하긴. 소도 먹이구 책두 읽구 별나라에 편지두 쓰지.”
삼촌이 말했다.

“별나라에 편지?”
경일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경일아, 왜 그렇게 놀라니?”
삼촌이 말했다.
“뭘로 쓰는데? 붓글씨야?”
경일이가 말했다.

“뭐?”
삼촌이 오히려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삼촌이 그랬잖아? 별나라에 편지를 쓴다고.”
“그래서?”
“그런데 나도 별나라에서 편지가 오거든? 붓글씨 편지를 몇 번 받았단 말야.”
“그런데.”
“그런데라니, 삼촌. 삼촌이 혹시 내게 편지를 보낸 거 아냐?”
“천만에. 난 동화 얘기였는걸? 내가 쓰는 동화 얘기였다니까.”
“그러니까 말야, 동화 속에서나 별나라에서 편지가 오지. 그런데 내가 그 편지를 받았단 말야.”
“그렇다면 이게 어찌된거야. 내가 동화 속에서 쓴 별나라 편지가 우리 왕자님한테 갔나?”
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그걸 누구한테 물어? 어떻게 된 건지 어리둥절한 건 내 쪽인데 말야.”
경일이가 말했다.
“도대체 네가 별나라에서 받았다는 편지엔 어떤 얘기가 씌어 있든?”
삼촌이 물었다.
“그보다 삼촌이 쓰고 있는 편지에는 어떤 얘기가 있어? 그걸 먼저 듣고 싶은걸?”
경일이가 말했다.
“내 동화야 직접 읽어 봐야지. 잡지를 모아두었으니까 내일이라두 보여줄게. 그 보다 네 편지 얘길 먼저 들었으면 좋겠는걸?”
삼촌이 말했다.
“내가 받은 편지도 직접 읽어 봐야지 뭐. 그렇지만 그걸 갖고 다니나? 집에 두고 왔지….”
경일이가 말했다.
“어서들 건너오너라. 제사 지낼 시간이 다 됐구나.”
그 때 문 밖에서 할아버지가 부르셨다. 삼촌이 일어섰다. 경일이도 일어섰다.
“정신나게 찬물에다 세수하고 ….”
삼촌이 말했다. 안방에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병풍이 둘러쳐져 있고, 촛불
이 촛대에 꽂혀 팔랑거렸다. 할아버지가 제사상 앞에 무릎을 꿇으셨다. 술잔에 술을 부어 올리고 할아버지가 먼저 큰절을 두 번 하셨다.
“절하자.”
삼촌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경완이도 곁에 서 있었다. 아빠가 절을 했다. 집안 아저씨들은 대청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서 절을 했다. 경일이와 경완이도 절을 했다.

강 정 규 님은 동화작가로 크리스챤 신문사 부사장을 지냈고, 지금은 "시와 동화" 발행인이며 햇순 편집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