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바라보며 (2002. 7)

월드컵 공화국
환호 속에 가리워진 이면

양미강


요새 한국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매일 매일 온갖 여론매체들은 월드컵 관련기사를 1면부터 채우고 있다. TV 뉴스는 어느새 스포츠 뉴스가 되어 버렸고, 각종 일간지들도 스포츠 신문으로 탈바꿈하였다. 시사성과 긴급성이 생명인 매체들이 월드컵 경기를 재탕 삼탕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축구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특히 한국과 폴란드전이 있었던 6월 4일 부산은 빨간색 붉은 악마 응원복을 입은 수만 명이 자리를 채웠다. 경기장을 찾지 못한 시민들은 광화문이나 대학로에 십 수 만 명씩 모여 대한민국 응원단 ‘붉은 악마’의 빨간 티셔츠를 입거나 그와 비슷한 빨간 티셔츠를 입어 열광적인 응원전을 펼쳤다. 요새 시중에는 빨강색 티셔츠가 모자라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열광적인 응원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까지 젊은이들은 거리를 헤매며 목청 높여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을 외쳤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단합된 목소리로 외치는 응원가에서 애국심이 배어난다. 지금 한국에 일어나는 이 열풍은 분명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으로 대표되는 애국심이다.

그러나 열광적인 월드컵 열풍을 그냥 보아 넘기기 어렵다. 너무 유난스럽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더 심한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올해 6월 한국에 불어온 월드컵의 열풍은 우리 내에 잠재되어 있는 모습을 드러나게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애국심이라고 여겨지는 월드컵의 열광 속에 숨겨진 배타적 민족주의 문제이다. 이것은 비단 한국 축구의 16강 진출을 기원하는 바램을 넘어서고 있다.

한국과 폴란드 전에 보여준 한국 국민들의 그야말로 열화와 같은 응원은 또 다른 상대편인 폴란드 선수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을까? 폴란드 골키퍼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모를 것이다. 5만 명의 빨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은 뿜어내는 함성은 우리를 위축시킨다”. 폴란드 국가가 연주될 때에 한국응원단은 야유를 보냈고, 폴란드가 한국을 공격할 때도 한국응원단은 모두 ‘우~~~’ 하는 야유를 보냈다. 한국 국민이 한국을 응원하는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그렇다고 상대방 국가를 연주할 때 야유를 보내는 것을 어찌 보아야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배타성의 표현이다. ‘우리 국가’ ‘우리 축구’속에 담겨진 배타적 민족주의의 모습인 것이다.

이번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나는 일년 전을 떠올렸다. 작년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가 등장했을 때 일본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는 그야말로 대립구도였다. 피해와 가해 구도로 설정된 한일관계에서 일본은 곧 ‘적’으로 규정될 뿐이었다. 내부의 성찰이 들어갈 틈이 없다.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교류까지 전면 중단하는 등 초강경 조치를 취했고, 민간단체 일부에서는 단지(斷指)사건 등을 일으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작년 일본 교과서 왜곡문제가 한창 불거진 4월,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어깨 건장한 젊은 남자 20여명이 일본의 역사왜곡에 항의하는 표시로 손가락을 자르는 사건이 있었다(후문에 그들이 조직폭력배 출신이라는 말이 들렸다). 올 3월 중국 남경에서 국제회의가 있었을 때 중국 참가자 중의 한사람이 나에게 매우 진지하게 물었다. “너희는 정말 그렇게 애국심이 대단하냐고?” 나는 그의 질문에 대해 그냥 웃고 말았다.

이번 월드컵이 한일 공동으로 개최되는 만큼, 한국과 일본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일관계에 대해 주로 일하고 있는 나는 이번 월드컵이 한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가 중요 관심사이다. 이미 한일 간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일본군 ‘위안부’문제, 교과서문제, 신사참배 문제 등 한일 간에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이 월드컵이라는 환호 속에 은근슬쩍 비켜가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아니! 오히려 우리 내부에서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을 외치면서 해결해야할 과제를 슬쩍 넘겨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번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 양 미 강 (한백교회 목사,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상임운영위원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총무로 활동하고 있으며, 교회개혁열린포럼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남편은 한민족선교정책연구소에서 일하는 이철용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