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 성서 난해구 해설 (2000.1)

12.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
시 51:4

민영진 목사
(대한성서공회부총무)

시편 51편에서 4절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라고 하는 부분은 난해구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말했다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본문은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라고 하여, 죄 고백자는 자기의 죄가 오직 "주께만" 범죄한 죄라고 말하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 이에서 지은 죄는 무시하는 듯한 말로 들리기 때문에, 과연 그러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더욱이, 시편 51편의 제목은 "다윗의 시, ....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 이 저에게 온 때에" 라고 하여, 이 시를 사무엘하 11-12장의 사건, 곧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한 사건과 관련시킨다.
그런데 부하의 아내와 동침하고, 끝내는 그 여인의 남편마저 전사하게 하는 죄를 범한 다윗이 자기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범죄를 하였을 뿐 우리아이게나 밧세바에게나 도대체 사 람에게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는 말로 들리는 이 기도를 어떻게 진정한 참회의 시로 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 를 도말하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대저 나 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 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 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시 51:1-6)

위에서 보듯이 "내가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하는 이 뻔 뻔한 말만 아니면, 이 시는 감동적인 참회 기도이다. 시인은 자기가 이미 반역죄를 지었음을 고백한다(1절). 자신의 죄가 자신을 문신처럼 휘감고 있어서 자신이 죄로 얼룩져 있음을 고 백하고 있다(2절).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고, 자신이 지은 죄가 자신을 떠나지 않고 괴롭 히고 있는 것도 고백하고 있다(3절). 하나님 보시는 앞에서 죄를 지었으니 자신을 향한 하나 님의 유죄선고가 천 번 만 번 당연한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4절). 자신이 죄인인 것은 구태 여 어떤 범죄 행위를 저질러서 비로소 확인된 것이라기보다는 생래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났 음을 고백하고 있다(5절).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 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 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시 51:7-13)

시인은 용서받기를 원하고 있다. 우슬초로 정결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일종의 정결 예 식을 원하고 있다(7절). 거기 공중 앞에서 죄를 자복(自服)하고 바로 그 예식에서 "그대의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제사장의 기쁜 사죄의 선언을 듣고 싶어하고 있다(8절). 하나님께서 시인의 죄를 도말(塗抹)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9절). 사람 안의 "정(淨)한 마음과 정직한 영혼(靈魂)"은 사람 스스로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셔야만 가질 수 있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10절).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늘 같이 있어주 기를 간구하고 있다(11절)

문제는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4절 상반절)이다.

1) 하나님께는 죄를 범했을지언정 사람에게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하나님께 "만" 죄를 범했다는 말은, 하나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자기를 죄인이라고 정죄(定罪)를 할 수 없다는 말로밖에는 더 들리지 않는다. 2) 사람에게는 죄가 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만" 은 죄가 된다는 말인가? 죄의 정의가 하나님 앞에서는 더 엄격하다는 말인가? 사람들 앞에 서는 떳떳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만"은 떳떳할 수 없는 죄인이란 말인가? 3) 사람에게 범한 죄를 포함하여 모든 죄는 다 하나님께 범한 죄라는 말인가?

그러나 이 참회시를 전체적으로 볼 때 시인의 생각이 위의 3 가지 경우와 같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 죄 고백을 개인의 죄 고백으로 볼 때는, "오직 하나님께만 죄를 범했다" 는 말은, 마치 사람에게 지은 죄는 제외된다는, 죄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로, 누구에게 한 범죄이든 가릴 것 없이,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식되는 것 임을 말한다. 그런 뜻에서, 죄란 궁극적으로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것이고, 사람이 자기의 죄를 인식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바이서). 따라서, "나는 하나님께만 오직 하나님께만 죄를 범했습니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자 기가 죄인임을 깨닫는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아마도 이 문제의 구절은 다음과 같이 번 역되면 히브리어 본문이 의도하는 바를 조금은 더 잘 전달할 것이다.

"주님 앞에서만은 오직 주님 앞에서만은 내가 지은 죄를 감출 수 없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