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 성서 난해구 해설 (2000.2)

13. 새 포도주가 뭐가 어떻기에?
눅 5:38-39

민영진 목사
(대한성서공회부총무)

술을 잘 마시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포도주(葡萄酒)에 대하여 잘 모른다. 포도주는 기독 교인들이 성만찬 예식 때에만 한 모금 마시는 것이 고작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술에 관한 한, 우리보다는 더 많은 상식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38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새 포도주 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묵은 포도주를 마신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한다." ({표준새 번역} 눅 5:38-39)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새 포도주는 반드시 새 가죽부대에 보관해야 했던 것 같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새 포도주의 보관 방법을 알고 계셨다. 또 맛으로 치자면 새 포도주보다 는 묵은 포도주 맛이 더 좋다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포도주의 맛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직접 포도주를 만드시는 이적(異蹟)도 베푸셨다. 예수께서 만드신 포도 주를 시음(試飮)해 본 사람들은 그 포도주가 극상품(極上品) 포도주였다. 혼인잔치 집에서 그 포도주를 시음을 해 본 이들은 신랑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놓 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 겨 두었구려!" 하였다. (요 2:10).

그 날이 오면, 산마다 새 포도주가 넘쳐흐를 것이다. 언덕마다 젖이 흐를 것이다. 유다 개울마다 물이 가득 차고 주의 성전에서 샘물이 흘러 나와, 싯딤 골짜기에 물을 대어 줄 것이다. (욜 3:18)

그 때가 되면, 농부는 곡식을 거두고서, 곧바로 땅을 갈아야 하고, 씨를 뿌리고서, 곧바로 포도를 밟아야 할 것이다. 산마다 단 포도주가 흘러 나와서 모든 언덕에 흘러 넘칠 것이 다. (암 9:13)

이렇듯 포도주는 구원받았을 때의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께서 포 도주(葡萄酒 wine)를 예로 드셨다는 것이 흥미 있다. 새 포도주와 묵은 포도주의 특성을 잘 알고 계시는 것도 흥미 있다.
포도주의 제조 과정과 포도주의 맛은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포도를 수확한 다음에 껍질을 벗겨 발효 통에 옮겨 발효시킨다. 전통적으로는 사람이 발효 통에 들어가 발 로 포도를 으깨었다. 발효가 종료될 때까지는, 온도나 이스트의 차이에 따라, 3일 내지 3주 일이 걸린다고 한다. 술이 다 되면 통의 마개를 빼어 자연히 흘러나오도록 하는데, 이 때 흘 러나온 포도주가 바로 상등주(上等酒)가 된다고 한다. 다음에, 통 속에 남은 찌꺼기를 압착 (壓搾)하여 짜내는 포도주가 있는데, 이것을 '뱅 드 프레스(vin de press)'라고 한다. "압착하 여 짜낸 포도주"라는 말이다. 이것은 하등주(下等酒)에 해당한다.
상등주든 하등주든, 갓 거른 "새 포도주"는 탁하고 맛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 고 한다. 포도주의 품질은 포도를 수확한 그 해의 기상 조건에도 크게 좌우된다고 한다. 기 상이 좋은 해의 포도주는 해를 거듭함에 따라 미주(美酒)로 숙성되나, 기상이 나빴던 해의 술은 그 맛이 그렇게 크게 향상되지는 않으며, 오래 저장할 수도 없다고 한다. 양주(良酒)라 고 해서 무조건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최상의 기후조건에서 수확하여 만 든 최상의 미주를 완전한 상태로 보존한다 하더라도 70년 이상을 묵히게 되면 질이 급속히 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로서 참으로 이상한 것은, 예수께서 기껏 "새 포도주"를 주제로 삼아 말씀 하시면서, 그리고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까지 말씀해 놓으시고서,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새 포도주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묵은 포도주를 마신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한다." (눅 5:39) 하고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인가?
이것은 유대인들이 새 포도주인 "복음"을 받아드리려 하지 않음을 빈정대어 하신 말씀 이다. 따라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예수께서는 지금 포도주 보관 방법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새 포도주나 묵은 포도주의 맛에 관하여 말씀하시려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라고 하는 것, 오히려 예수께서는 지금 새 가치와 옛 질서가 결합될 때 그것이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비극적인 결과, 곧 둘 다 자멸(自滅)해버리고 마는 파괴적 작용 을 말씀하신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새 포도주보다는 묵은 포도주를 선호(選好)한다는 말은(눅 5:39), 일반적 인 상식을 말씀하신 것이고, 같은 이치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옛 종교를 더 좋아하고 새로 운 가치로서의 복음을 받아드릴 뜻이 없음을 예수께서 지적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지금 당신에게서 비롯되는 복음이 포도주로 말할 것 같으면, "새 포도주"에 해당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또는 "새 포도주"인 "복음"이 "묵은 포도주"인 "유대교"보다 그 맛에 있어서 열등(劣等)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아니다. 지금 예수님은 두 가지의 결합이 적절한 경우와 부적절 한 경우를, 비유를 써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결합이 적절한 경우에는 둘 다 살지만, 부적 절한 경우에는 둘 다가 다 못쓰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새 옷에서 한 조각을 떼어 내서, 낡은 옷에다가 붙이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하면, 그 새 옷은 새 옷대로 조각이 찢겨나갔 으므로 이미 못 쓰게 된 것이고, 또 새 옷에서 떼어 내어 낡은 옷에 붙인 조각은 낡은 옷에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눅 5:37-38). 단순히 어울리지만 않을 뿐만 아니라 생베 조각 을 낡은 옷에다가 대고 기우면 새로 댄 조각이 낡은 옷을 당겨서, 그 낡은 옷이 더욱더 크 게 찢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마 9:16).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새 포도주가 그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가죽 부대를 못 쓰게 된다는 것도 같은 논리 이다. 결론은 새로운 내용은 새로운 용기(容器)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율법의 그 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이다.
새것에는 왕성한 기운(氣運)이 충일하다. 낡은 것이 새 것을 포용할 수 없는 이유가 바 로 여기에 있다. 새것과 낡은 것이 내용과 그릇으로 합치면 둘 다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