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 성서 난해구 해설 (2000. 11)

빛의 자녀가 어둠의 자녀에게서 배워야 할 것
눅 16:1-9

민영진 목사
(대한성서공회부총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본문이 있다.
본문의 문장이나 구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진술된 내용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연루되어 있다.

불의한 청지기가 있었다. 그는 어떤 부자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주인은 이 청지기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고 하는 말을 듣고 그를 해고하려고 한다. 그러자 그 청지기는 이 직업을 잃은 다음을 염려한다.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다"
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 청지기는 자기가 그 청지기의 자리에서 떨려 날 때에, 자기를 괄시하지 못할 사람들을 미리 마련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빚 문서를 내놓으라고 하면서 기름 100말 빚진 자에게는 쉰 말이라고 쓰게 하고, 밀 백 섬을 빚진 자에게는 빚 문서에 여든 섬이라고 적게 한다.
그런데, 청지기의 그러한 행동을 본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오히려 칭찬한다. 그것은 그 청지기가 아주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의 어리석은 제자들을 꾸짖으시면서 말씀하신 비유이다.
이 세상의 아들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 곧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상황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바로 그렇게 단호하게 대처함에 있어서 빛의 자녀라고 하는 것들이 어둠의 자식들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어둠의 자식은 자기가 평생 종사하던 청지기라고 하는 직업을 잃고 실직자로서 어려움을 당할 것에 미리 대비하여, 현명하게 대처한다.
이제 빛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현실에 직면하여 회개하고 단호하게 행동하여 그 미래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상황 인식이 둔하고 대처하는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빛의 아들보다 더 슬기롭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하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공무원이거나 회사원이거나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있을 경우 주인의 재물을 맡아서 관리하는 것과 직접 간접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런데, 친구를 사귀는 일이면, 주인의 재산을 축내도 좋다는 말인가? 공금을 횡령해서라도 친구를 사귀라는 말인가? 이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인가?
예수께서는 지금 비유를 말씀하고 계신다.
청지기의 약은 생각과 사기 행각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몫이 약속된 사람들 곧 "가난한 사람들" (눅 6:20 "너희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가운데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다.
그 가난한 사람들에게 절박하게 요구되는 것은 그들의 소유를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것이다. 이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빛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보증해 줄 사람들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을 "불의한 재물"이라고는 말하면, 우리는 좀 불편하다.
그렇다면, 본문에서처럼 "없어질 것" 곧 "없어질 재물"이라고 불러보자. 바로 이 "없어질 것"이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가기도 하고,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기도 한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 불의하게 도적질하여 축재(蓄財)를 하면 망하지만, 불의한 재물, 없어질 재물을, 그 재물이 없어서, 혹은 그 재물 때문에 얽매어 있는 이웃에게 재분배한다면, 그가 재물에 궁핍을 당할 때를 만나면, 일찍이 그가 돌보았던 그 이웃이 그를 영접하고, 끝내는 "영원한 처소"로 그를 안내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없어질 것"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하는 관건(關鍵)이다.
우리의 숭고한 구원이 이, 한낱 "없어질 것"에 이렇게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니! 우리가 잊고 있는 이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때, 그 이웃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할 이들이라니! 그들이 하나님께 우리를 구원해주시라고 빌면 우리가 구원을 받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정죄하면 우리가 정죄를 받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