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 성서 바로 읽기 (96. 6)

4. 한 번역이 이해되지 않으면 다른 번역을 본다.

1. "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일로..." 누가복음서 13장 1절 제사지내는 이들을 학살한 것 우리말로 읽는 성서는 모두 번역된 성서이다. 번역의 성격에 따라, 독자에게 원문의 뜻 은 잘 전달하면서도 원문의 문법 구조는 잘 전달하지 못하는 번역이 있는가 하면, 독자에 게 의미전달은 잘 하지 못하면서도 원문의 문법적 구조와 특성을 잘 전달하는 번역도 있다. 독자로서는, 어느 한 번역을 놓고서 그것이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판단하기보다는, 각 번역의 특징을 이해하면서 서로 보완하여 사용하는 것이 번역판을 활용하는 지혜일 것이다. 성서 본문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고자 한다면, 성서 독자들은 여러 종류의 번역을 활용할 필요 가 있다. 한 번역이 이해되지 않으면 다른 번역을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 몇 가지 예를 보 자. (개역) 누가복음서 13장 첫 절에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피를 제 물에 섞는 것"이 무슨 뜻인지 물어 오는 독자들이 더러 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 는, 물어오는 이들 나름대로 각자가 이 본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되물어 보면서 그 들의 오해를 확인하곤 한다. 그들이 이 본문의 뜻을 몰랐기 때문에 물어 온 것이겠지만, 독 자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일반적으로는 독자들이 이 본문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 게 된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 본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희생제물에다가 사람의 피를 혼 합해 넣는 것으로 이해한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에게서 피를 채혈(採血)하여, 그들이 바 치는 희생제물에다 그 피를 섞어 넣은 것이라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 들이 드리는 제사의 희생 제물에 사람의 피를 섞음으로써, 제물과 제사행위 자체를 모독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상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옳은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같은 본문을 달리 번역한 다른 번역판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가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과 뒤섞이게 하였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 드렸다."(표준새번역) 2.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히브리서 11장 13절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다는 뜻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장이다. 믿음 의 조상들인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와 같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그 들의 삶의 특징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특히 아브라함의 경우는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11:9) 라는 말에서 보듯이 "약속을 받고" 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개역} 히브리서 11장 13절에는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 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라는 진술이 있다. 독자들은 여기에서 두 가지 점에 의문을 갖게 된다. 하나는 믿음의 조상들이 "믿음으로 죽었다"는 것의 뜻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고, 과연 그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약속"도 받은 바가 없었느냐 하는 것이 다. [표준새번역}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것을 멀리 바라보고 즐거워하였으며, 땅 위에서는 손과 나그네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또, 구약성서의 잠언에는 신약의 복음에 필적할 만한 원수사랑에 대한 실천적 교훈이 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개역 잠언 25:21-22) 이 구절을 읽는 기독교 독자들은 21절을 읽으면서 이 내용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교훈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한 예를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2절에 와서는 당황한다. 곤경에 처한 원수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 마치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라고 했으니, 결국은 그런한 원수 사랑은 원수를 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힌다. 핀 숯을 사람 머리 위에 놓아 그 사람으로 화상을 입게 하거나, 핀 숯의 화력 정도에 따라 사람의 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도 있는데, 그러한 일을 하므로써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에게 상을 주신다고 하니, 독자들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이 때 다른 번역을 참고해 보는 것은 독자의 의심을 풀어주기에 넉넉하다.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물을 주어라. 이렇게 하는 것은 그의 낯을 뜨겁게 하는 것이며, 주께서 너희에게 상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 (표준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