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바로 읽기

["햇순" - 성서 바로 읽기(97.10)]

20. 바이블 코드

[바이블 코드]라는 책이 나와서 미국에서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그것이 독서계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이 책은 [워싱턴 포스트]지와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전직 기자인 마이클 드로스닌이 히브리어 구약성서 안에는 미래의 여러 가지 사건을 예언하는 암호가 숨어 있다는 것을 발표한 것이다. 이 책이 관심을 끄는 것은 주제도 주제려니와 저자가 유명한 지성인일 뿐만 아니라, 구약성서 안에 숨은 암호가 들어 있다고 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그에게 제공한 이가 다름 아닌 히브리대학교 수학과의 엘리야후 립스 교수라는 점이다.

암호를 푼다는 것은 히브리어 구약성서의 첫 다섯 권인 오경을 예로 들면 히브리어 글자 수가 모두 30만 4천 8백 다섯 개인데 이런 글자들이 낱말을 이룰 때 낱말과 낱말 사이가 떨어져 있는데 그 간격을 무시하고 쫙 붙여서 배열하고 오경 전체를 64개 줄로 나누고 각 줄에는 4천 7백 72개의 낱 개 글자를 배열한 다음에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대각선으로 알파벳을 조합시켜 어떤 이름이나 의미 있는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성서의 암호를 풀어 보면 거기에는 이스라엘 수상 이츠하크 라빈,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 미국 대통령 존 케네디의 암살이 이미 예언되어 있다는 것이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도 예언되어 있고, 세계 2차 대전의 발발과 나치의 6백만 유대인 학살도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1993년에 목성에 혜성이 부딪힌 것도 예언되어 있고 셰익스피어라는 대문호가 나타나 불후의 작품을 쓸 것과 공산주의가 붕괴될 것,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다는 것 등이 이미 다 예언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이 이미 예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도 예언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서기 2010년에 LA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 적혀 있다는 것이다.

성서 해석의 역사를 보면 문자 뒤의 숨어 있는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늘 있었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성서의 문자적인 의미를 충실하게 파악함으로써 성서의 참 메시지에 접근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성서는 무수히 많은 문학적 장르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장르에 따라 메시지를 파악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 있다. 암호화 하려는 의도를 지닌 본문에서는 암호를 해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에는 본문에 대한 학문적 접근보다는 영감을 지닌 해석자의 영적 해석이 우세하였으므로 학문적 대화의 대상이 되지를 못하는 한계와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전서의 경우 대부분은 본문 자체가 암호화를 의도하지 않은 경우라고 파악되므로 성서 본문의 문법적 의미 탐구를 본문 이해의 일차적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 성서해석의 주류이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마이클 드로스닌의 [바이블 코드]는 아예 히브리어 구약성서 본문 전체에 미래에 대한 예언이 다 코드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점에 있어서 종전의 신비적인 성서해석과 다르다. 종전의 신비적인 해석이 영감을 받은 이의 영감에 의존하여 해석된 것에 반하여 바이블 코드의 경우에는 '코드'를 컴퓨터 과학을 응용하여 해독하는 과학적(?)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종전의 신비주의적 해석 방법과도 다르다.

언어와 글자는 의사전달의 중요한 매체였다. 이제 컴퓨터 과학의 발달로 전자매체가 인류의 지적 유산을 다룸에 있어서, 그것이 수행하는 자료 수집과 수집된 자료의 기억과 기억된 내용의 다양한 분류가 엄청난 양으로 확대되고 세분화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가 점점 더 확대되는 기능을 가지고서 기존의 정보와 지적 유산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예측되는 바였을 뿐 아니라 기대되는 바였다.

컴퓨터 과학의 등장과 함께 성서해석의 전통적 양상들이 이제 새로운 모습을 띄게 되었다. PC 바이블이나, CD 바이블 자료가 역사적 비평적 성서 해석에 큰 도움을 제공할 수 있듯이, 전자 매체의 활용은 종전의 신비적 성서 해석에도 영향을 강하게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미리 짐작하고 있어야 할 일이다. 바이블 코드는 바로 이 후자에 속하는 것이다. 아직은 수학자들과 신문 기자가 바이블이 어떤 숨어 있는 코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종전의 신비적 성서해석가들이 이 방법을 쓰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앞으로 성서학계에서는 싫던 좋던 간에 이 문제를 하나의 과제로 다루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