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0. 1)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17

-일상생활의 깊이와 거룩함을 배양하는 길잡이-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제 3장
자기애의 신화: 나르시서스와 나르시시즘

주류 심리학은 강력한 자아에 대하여 상당한 믿음을 갖는다. 자아 발달과 긍정적 자아 개념은 성숙한 인생의 중요한 성분으로 고려된다. 그러나 사물이나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대하여 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 습관인 나르시시즘은 장애로 고려된다. 이와 반대로 융의 심리학은 무의식을 강조하면서, 그리고 원형심리학은 정신의 비아(非我)인성에 대하여 높은 관심 을 두면서 자아는 글자 그대로 도처에서 대체로 망쳐놓은 일을 잘 하는 죄인이라는 인상을 준다. 심지어 꿈 해석에 있어서도 자아는 항상 실수하는 모습으로 보려고 한다. 이기심과 자기애에 대 하여 해묵은 경고를 한 종교의 입장을 더하고 보면, 그 속에서 자만심은 죽음에 이르는 죄로 여 겨졌으며, 자아에 대하여 마치 도덕적 음모라도 있는 것처럼 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에 대한 여러 가지 공격이 나타내는 일방적 입장이나 도의가 암시하는 것은 이토록 거부되고 있는 자아와 자기애 주변에는 영혼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그렇게 나쁘 다고 하는 어떤 것은 그 자체 안에 가치를 틀림없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나르시시즘 과 자기애를 정당하게 거부하는 것이 영혼의 사랑이 지닌 본질에 대한 미스테리를 덮어씌운다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가 나르시시즘을 부정적으로 낙인을 찍는 것이 영혼이 사랑 받도록 해야 한 다는 요청에 대한 방어가 될까?
문제는 단순히 이론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치료하는 일에서 종종 놀라는 때가 있다. 언젠가 하 면, 다른 면에서 보면 성숙하고 분별력이 있는 어른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면 모든 것을 허 물어뜨리면서 한마디로 "나는 이기적 일 수가 없어요"라고 하는 때이다. 그 사람과 더불어 이렇게 묵직한 도덕적 당위성을 더 깊숙히 파헤쳐 들어 갈 때, 그것이 종교적 양육과 밀접한 관계가 있 다는 사실을 보통 발견하게 된다. 그녀가 최종적으로 하는 말은 "나는 절대로 이기적일 수 없도 록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이 사람이 자신의 사심 없음을 주장하는 반면에, 실상은 자기 자신에게 상당히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심 없음 의 덕목을 추구하면서, 자아에 대하여 주목하는 것은 지하로 숨을 수 있고 결국은 자기가 좋아하 는 이론이나 가치에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부식(腐蝕)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내가 이제는 어떤 사 람이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면, 자아 문제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겠다고 자신을 준비한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있는 나르시시즘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은 그 특정 굴(oyster) 속에 모래알이 들어 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우리의 반응은 거기에 뭔가 중요한 점이 있다는 신 호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나르시시즘은 그림자 같은 특질(Shadow guality)이다. 그림자 같은 뭔 가를 만날 때, 우리는 흔히 반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까닭은 우리가 자신의 내면에서 반대할만한 뭔가를 맞닥뜨리기 때문이요, 그것은 우리 자신이 씨름하는 것이고, 영혼에 대하여 뭔가 가치 있 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르시시즘에 대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것은 자기몰입(Self-preoccupation)속에 내포된 뭔가는 바로 우리에게 몹시 필요한 것으로서 그것은 부정적 내포(connotations)로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우리의 초조해진 도덕성 때문에 궁지 에 몰리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영혼이 현존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신호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그 흙덩어리 속에 금괴가 들어 있다고 가정하여 나르시시즘의 징후를 보존할 수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표면의 진흙을 꿰뚫고 심층의 필요에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 이쯤 해서 우리가 인식하기 시작할 즈음에, 그 해답은 상상력의 지혜가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의 경우에는, 그 길은 명백히 깔려 있다. 나르시시즘이라는 장애의 이름을 따 온 나르시서스의 신화를 연구할 수 있는 길이다.


나르시서스

로마의 작가 오비드(Ovid)가 그의 작품 변형(metarnor-phoses)에서 이야기했듯이, 나르시서스 의 옛 이야기는 그저 단순히 한 소년이 자기 자신과의 사랑에 깊이 빠진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미묘하고도 미세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예를 들자면, 오비드가 말하기를 나르시 서스는 강과 요정의 아들이었다. 나르시서스 에게는 명백히 말해서 액체나 물과 같은 요소가 있 다. 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우리 자신의 나르시시즘에도 그런 요소가 있다. 우리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자기 도취적일 때, 우리는 고체 같은 근거(땅)에 서 있지 않거나, 맑게 생각(공기) 하거나, 열정(불)에 사로 잡혀 있다. 만약 우리가 신화를 뒤쫓기로 하면, 어느 면에서 우리는 꿈꾸듯 하고, 액체 같으며, 명백한 형태를 취하지 않으며, 확고한 정체 속에서 안전하기보다는 냇물처럼 흐르는 환상 속에 더 깊이 잠긴다.
이 이야기의 첫머리에 나오는 또 다른 자세한 이야기에는 저 유명한 예언자 티레시아스의 예언 이 나온다. 그는 나르시서스에 관하여 예언을 하며 "만약 그가 자신을 결코 알지 못할 수만 있다 면, 그는 아주 노숙하도록 오래 살게 될 것이다." 라고 예언한다. 이는 이상한 예언이다. 여기서 가리키는 것은 이 이야기가 자신을 아는 것과 동시에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관한 것일 뿐 만 아 니라 자기 자신을 아는 자각(Self-knowledge)은 죽음으로, 이끌어 간다는 사실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신화의 이런 측면이 주는 인상은 결국 우리는 단순한 증후군 속에 빠져 있다기 보다는 오 히려 미스테리의 영역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 이야기를 듣는다. 나르시서스의 나이는 열 여섯 이며 얼마나 미남인지 많은 젊은이들 이 그에게 끌린다. 그러나 오비드가 말하기를 그는 "강한 자만심"(hard pride)으로 가득차 있어서 아무도 진정으로 그에게까지 뚫고 들어갈 자가 없다. 그를 사랑하게된 요정에코(Echo)는 묘한 특 징을 그 나름대로 지니고 있다. 즉 누군가에게서 방금 들은 말이나 낱말들 만을 말할 수 있을 뿐 이다. 어느 날은 나르시서스가 친구들이 눈에 보이지 않자 소리쳐 부른다. "아무도 없어요, 여기?" "여기"에코가 대답한다.
"우리 여기서 만나요" 나르시서스가 말한다.
"여기서 만나요" 에코가 응답한다. 그러나 그에게 에코가 다가가자 나르시서스는 뒤로 물러선 다.
"나는 죽을 거요, 그대에게 내 힘을 주면, " 그가 말한다.
"내 힘을 그대에게 주면" 그녀가 자기식대로 말한다. 에코는 거부당하고 좌절할까봐서 비탄에 잠겨 자신의 신체를 잃어버리고 그만 단지 목소리만 남게된다.
이 초기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나르시서스가 자각을 얻기 전의 모습을 본다. 그는 아직도 미스 테리가 되기 이전까지의 나르시시즘이 지닌 이미지를 제공해 준다. 여기서 우리는 징후를 본다. 즉 몰두(Self-absorption)와 마음과의 연결을 어떤 형태로도 허용하지 않는 억제(containment)이 다. 순전한 감정이 아니고 강박관념 적인 자기애는 남과 친밀할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는다. 나르 시시즘의 반울림 적인 측면 - 세상의 모든 사물은 다만 자신의 반영이라는 느낌-은 어떤 힘도 내주려 하지 않는다. 바깥세계에 있는 그 누구에게나 그 무엇에게도 응답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 을 단단히 방어적으로 주장함으로써 지탱하는 여린 힘에 대한 의식을 위험하게 만들 것이다. 모 든 징후적 행동과 똑같이 나르시시즘 스스로 주장하는 것들 속에서 바로 자신이 부족한 것을 드 러내고 만다. 자기 도취적인 사람은 되풀이해서 묻는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어요?" 그 속에 있 는 메시지는 "내가 뭘 하든지, 억지로라도 하려고 아무리 노력하든지, 내가 만족스럽게 하고 있다 고 스스로 느낄 만한 지점에 도달할 수가 없어요."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르시시즘 적 인 자기도취자가 자기애를 과시하는 것은 그 자체 속에서 자기 스스로를 적적히 사랑할 길을 찾 지 못함을 드러내는 신호가 된다.
융의 심리학적 언어로 말하자면, 우리는 나르시서스의 정신 속에 있는 유년(puer)이난 소년 같 은 측면을 거리가 먼, 냉정한,(말없는) 자기 억제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에코는 아니마(anima)로 서, 소년적 아름다움에 집착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는 영혼이다. 그러나 나르시서스의 현존 앞에 서 영혼은 반울림의 소리로 시들어 버린다. 나르시시즘은 영혼이 없다. 나르시시즘 속에서 우리는 영혼의 실체와 그 비중과 중요성을 없애고, 결국의 우리 자신의 생각의 반울림으로 영혼을 환원 시킨다. 영혼 같은 것은 없다. 우리가 하는 말이다. 다만 뇌가 전기 변화와 화학적 변화를 거칠 뿐이다. 아니면, 다만 행동이 있을 뿐이다. 아니면 다만 기억과 조절기능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사회적 나르시시즘에 있어서도, 우리는 또한 영혼을 부적절한 것으로 흘려버린다. 우리가 도시나 국가 예산을 준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혼의 필요는 손도 대지 않고 놔둔다. 나르시시즘은 그 무엇에 대해서도 요정이나 영혼처럼 그 자신의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나르시서스가 경멸한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가 저주를 한 다. "사랑에 빠지기는 해도, 사랑하는 것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이는 동시에 우리가 자기도취에 서 나오는 차가운 오만을 주변에서 느낄 때 우리의 숨결에 섞어서 내뱉을 수 있는 저주가 된다. 실연 당한 애인이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했다 그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을 때 그것이 어떤 것인 지를 알게 될 날이 있기를 바래요" 우리는 영혼 없음의 냉기를 느끼며 저주를 하게 되는데, 그것 은 마치 티레시아스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예언처럼, 실상은 위장된 축복이다. 저주가 작용하면, (저주 당한) 그 사람은 변화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