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0. 9)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25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물처럼 유동적으로 흐르기는 하지만 젖지는 않는다.
이렇게 떠있는 틀의 정신은 진하게 사랑에 빠진다. 알지 못한 채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여왕이 이졸데의 삼촌인 마크를 위하여 만들어 놓은 사랑의 묘약을 마신다. 그리고 나서 그 들의 이야기의 후반부는 위협과 혹독한 비판이 가득찬 세상에서 불륜의 연인이 되는 위험한 시도에 관심이 쏠린다. 그들의 사랑이 어찌나 강한지 어떤 의무감이나 예의 범절 때문에 그 만 둘 형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랑도 결코 안전하지도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 그 사랑은 결국 두 연인의 비극적 죽음으로 다 이루지 못한 채 끝난다. 항존 하는 그림자처럼, 순풍이 운명으로부터 두 젊은이가 짜내는 스릴과 성공은 사사건건 뒤따른다.
만약 우리가 이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떤 모랄도 거기서 찾는 유혹을 피하 여, 그래서 불륜의 사랑은 마땅한 벌을 받거나 낭만적인 사랑은 미숙하여 재앙에 빠질 운명 이 될 수 밖에 없노라고 결론을 내리지만 않는다면, 연애할 때에 어떻게 영혼을 돌볼 수 있 는지에 대하여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영혼(psyche)에 대하여 위생학적 접근을 하기로 말하자면, 우리는 성공적으로 살고 사랑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위생학적 기대에서 벗어나는 것은 장애로 특징짓는다. 슬픔이 자 리할 공간이 별로 없다. 오늘 트리스탄은 디프레소(Depresso)로 불리워야 한다. 왜냐하면 영 혼의 슬픈 갈망을 임상학적으로 우울증이라고 하니까 우리는 화학적 치료법을 찾게된다. 그러나 이 증세의 이야기는 영혼이 연애의 고통(love trouble) 속으로 끼어 들어가려는 불가 피한 성향과 긍정적으로 접촉하려는 우리의 필요를 심오하게 충족시켜 준다. 이 이야기는 사랑의 비애(pathos)를 존중하고, 동종요법적인(homeopathic) 치료처럼, 경험으로 알 수 있 는 슬픔의 익숙한 부담을 없애버린다. 이 때의 카타르시스는 사랑의 정서적 범위를 거슬러 서 도덕화하는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영혼을 완전히 촉촉하게 적셔주는 바로 그 슬 픔이 강렬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기 때문에 성취된다. 이 이야기는 동시에 우리의 젊은이 (puer)영성과 비극적 사랑을 치료하는 그 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우리가 보도록 도움을 준다.
영혼의 돌봄은 거기에 담겨 있는 정서나 환상이 아무리 반대하고 싶은 것일지라도 그것 을 존경하는 것을 의미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들의 강렬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과 그들의 속임수 앞에서 반감을 느낄 수 없는 새 중간에 꼼짝 못하고 붙들려 있다. 프랑스의 비범한 작가로서 영혼의 애로와 관련하여 어둔 길에 대하여 오래동 안 이야기해온 조르쥬 바태유(Georges Bataille)가 말하기를 모든 연애는 죄를 범하는 것을 수반한다고 하였다. 영혼의 금기(taboo)의 근처에서 발견되기 마련이다. 스토리와 영화와 전 기와 뉴스 기사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불륜의 경험과 연애의 비극적 속임수 때문에 매혹된 다.
영혼의 돌봄에 있어서 여려가지 어려움 가운데 한가지는 비애(pathos)와 비극의 필요성 을 인식하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사랑을 오로지 높은 도덕적 정상 또는 위생학적 정상으로 부터 본다면 우리는 그 영혼이 계곡에 정착하는 모습을 지나쳐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우 리 자신이 겪은 사랑의 비극에 대하여 성찰할 때, 그 비참한 경험들을 뜛고 나갈 길을 천천 히 찾을 때 우리는 영혼의 신비한 길 속에 들어가는 통과의례를 거친다. 사랑은 들어감의 수단이며 우리의 길잡이가 된다. 사랑은 우리가 계속해서 미로를 가게 한다. 만약 사랑이 그 자체를 드러내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한번도 예언하거나 바랐던 적이 없는 모양과 방향을 존중한다면,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영혼의 더 낮은 수준을 발견하는 시점을 향하여 길을 나서게 될 터인데, 바로 거기서 의미와 가치가 느리게 역설적으로 자신을 드러 낸다. 거기서 우리는 트리스탄과 같이 되어, 운명을 향하여 믿음을 가지고 항해하며, 우리 자신의 자원을 끈으로 잡아 올리면서 간다. 트리스탄은 종교적 인물로서, 사랑을 향한 영성 의 길을 가는 수도사이다. 그는 지속적으로 완벽한 신뢰의 태도를 내보인다. 그는 늘 세례 를 받으며, 늘 명명되며, 그의 기원과 유지(sustenance)를 담는 물음에 접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그토록 가까이 있으면서, 그는 사랑의 불가능 속에서 그의 활기찬 본성을 완성시 킬 길을 찾는다. 그의 운명이 드러나면서 위트와 불가능은 계속해서 만나는데, 이는 우리가 운데 누구라도 사랑하게 된다면 나타나는 형태의 모형이다.
만약 우리가 트리스탄을 우리의 사랑의 슬픔을 나타내는 인물로 보고, 문자 그대로 우 리의 사랑의 절대적 실패의 대표로 보지 않는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사랑의 어둔 심층과 동시에 그 밝은 높은 존중하는 이미지를 갖게된다. 사랑의 슬픔이 우리를 찾아올 때, 그것 은 혼자 젓는 작은 배를 트리스탄이 두둥실 떠 와서 신뢰하면서도 인생의 비극적 측면으로 바짝 다가와 그의 밝은 영을 대속한다. 감정을 풀기 위하여 약을 먹거나 치료의 묘안을 찾 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을 푸는 것은 중요한 영혼의 방문객을 추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영혼은 명백히 말해서 사랑의 슬픔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 자신의 특유한 지혜를 안겨주는 의식의 형태이다.
실패, 상실, 그리고 분리
우리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를 신화로 읽을 때, 우리가 이끌리듯이 성찰하게 되 는 것은 실패나 복잡성이 사랑의 일부이지, 전혀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 끌리어 분리와 상실도 역시 보다 덜 문자 그대로 보게 된다. 그러나 생각이 문자 그대로의 행동과 똑같지 않다. 분리에 대한 개념은 사랑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암시할 수 있을지 모르 지만 사랑의 행위가 의미하는 것도 오직 한 가지 뿐이다. 즉, 현재 형태로 나타나는 관계의 파괴 뿐이다.
우리가 영혼을 돌볼 때, 우리는 영혼의 여러 가지 공상을 모두 행동으로 환원시키지 않 고 거기에다 타당성과 무게를 실어준다. 물론 우리는 때때로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십중팔 구는 그렇게 자주 하거나 그렇게 재빨리 행동에 옮기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습관적으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행동은 더 많은 상상력을 지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달리 보면 완벽하게 건전한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갑자기 이별(분리)에 대한 생각이 침입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관계의 종언을 의미하는 가 아니면 뭔가 더 심층적인 것을 의미하는가?
예민하고 생각이 깊고 선의적인 여성 마리안느가 한번은 어떤 생각을 마음에 담고 나에 게 찾아왔다. "나는 남편과 떨어져 살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얼굴 표정이 고통스럽게 그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녀가 말하였다. "저는 그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떠나야 할 필요를 피할 수 없을 만큼 느끼고 있어요. 우리는 많이 싸워요. 우리의 성생활은 아주 밑바닥까지 떨어졌어요. 우리에게는 세 자녀가 있는데, 그는 대단한 아버지 예요. 그러나 제가 별거해야 할 필요가 내 아이들에 대한 관심보다 더 강렬합니다."
나는 그가 "분리"(이별, 별거)라는 말을 되풀이 해서 쓰는 것을 눈여겨 봤다. 우리는 그의 생각과 기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떠난다는 생각 때 문에 황폐하게 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필요를 얼마나 강렬하게 느꼈던지, 아무리 설 득한다 해도 그 생각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영혼이 제시하는 이미지, 곧 "이별"(분리)에 정확히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하였다.
융은 중세 연금술에 관한 연구에서 분리를 영혼의 활동으로 이야기한다. 분리 즉 separatio가 연금술사들이 생각하기에는 물질을 금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작업 이었다. 융은 어두운 심상을 심리적으로 이해하였다. 즉 그에게는 분리나 분화가 필요한 영 혼 속에서 물질의 부분들로 더 세분화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물질들이 너무 단단히 포장 되어 있어서 개별적으로는 그것이 뭔지 알려질 수가 없었다. 파라셀서스는 분리(separatio) 를 창조에 있어서, 즉 세계의 창조나 모든 인간의 창작행위에 있어서 마찬가지로 일차적인 활동으로 이해하였다. 내가 마리안느의 분리(이별)에 대한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을 돌보면 서 내 머리 한편에는 이러한 옛날 상념들이 차있었다.
마리안느의 경우처럼, 결혼에 있어서 분리(별거)에 대한 필요를 생각할 때 명백한 원인은 두 개체의 분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연애를 하고, 함께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살 때, 그들의 심오한 환상이 맞물리고, 그렇게 되면, 서로가 상대방을 통하여 자신의 신화 를 쏟아낸다. 그런 상황속에서는 사람이 자신의 개성을 느끼기가 어렵다. 우리가 말했듯 이, 마리안느에게는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려고 시도하였던 강력한 동일시 현상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것이 명백하였다. 예를 들자면, 그의 부모들이 그에게는 위압적 이어서 그 자신의 삶을 살도록 놔두지를 않았다. 그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 역시 그 의 삶을 꽤나 간섭하였다.
그가 이야기를 하는데 결혼 초기에는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부모와 분리되어서 그들의 영향권에서 자유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 거듭, 재정 지원을 통하여 부모들은 그의 가정 생활의 중심부를 파고 들었다. 그 자신도 자기 남편에게 자신의 개성을 못살리 도록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지 않았는가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히려 자기 부모가 자신에게 하듯이 남편을 향하여 행동하였다. 결국에 가서는, 인생의 많은 부분에서 특히,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여러 종류의 분리가 그에게 필요하다는 점이 명 백하게 나타났다. 그 자신의 영혼으로 말하자면 그가 여러해 동안 느끼고 살았던 감금상태 에서 그의 정신이 해방되기를 갈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날 마리안느가 찾아와서 말하였다. 그가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기를 이제야말로 분리를 실현해야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지닌 분리에 대한 욕망 에 있어서 여러 가지 레벨의 의미가 있는 것에 관하여 얼마동안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그 가 나에게 말하기를 그런 생각들을 하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런 것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 는 것보다는 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직관적으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결정은 나 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의식의 심화가 때로는 삶 속에서 강한 움직임을 요구한다. 자기 뜻 대로 산다는 것이야말로 그의 영혼에 찾고 있었던 것이 뭔가를 더 정확히 알게 되는 한 방 법일 수도 있다.
그는 이사를 나가서 직업을 얻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여러 명의 남자들과 테이트 도 하였다. 대체로 자신의 새로운 자유를 즐겼다. 그의 남편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리고 몇 년만에 처음으로 어떤 질투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때까지는 아주 까막득히 의식하지 못하였던 것이지만 그가 별거(분리)하려고 했던 동기 가운데 하나는 자기 남편을 벌주거나 아니면 적어도 자신의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남 편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유아기의 패턴을 벗어나서 인생을 맛보았다. 물론 그의 부모는 딸의 별거를 강력히 반대하였고, 결과적으로 그에게는 이것 또한 부수적인 이들이었다. 부모들의 가치관이나 승 인을 거슬러서 행동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 그는 일찍 결혼해서, 이제야 말로 난생 처음 상대적으로 싱글로 독립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발견하였고, 또 그것이 좋았다.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보았고 또 느꼈다.
분리(이별) 이후 석 달이 지난 뒤에, 그는 자신의 가정과 남편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하였 다. 몇 년 후에 그는 그 가정에서 잘 살았고, 다시는 관계를 떠날 생각에 시달리는 일이 없어졌다. 다른 테마들은 적잖게 도전도 되었으나 결혼 생활과는 별 상관이 안될 정도로 삶 속에 끼어 들었다. 적어도 한 영역에 있어서 그는 이제 "분리된"사람이다.
마리안느의 이야기가 한가지 예를 보여 주듯이 영혼의 메시지를 돌보다 보면 예기치 않 은 곳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분리(별거)에 대한 생각이 사랑과 결혼에 반대되는 것으 로 보였으나, 그것은 그 일부이고, 이면이고, 사랑을 깨지 않고도 상상력으로 용납할 수 있 는 것이다. 심지어 이혼도 일종의 사랑의 성취요, 그 충만함을 살아내는 것으로 보여질 수 도 있다. 사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데, 거기에는 애착심이나 충성심에 전적으로 대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어두운 특성들도 궁극적으 로는, 혹시 불가사의하거나 속단할 것 없는, 그러나 알맞은 집으로 사랑을 모셔다 줄지도 모 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