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1. 9)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37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제 7 장 우울이 가져다 주는 선물

우리는 우울증 속에 있는 고통스러운 공허감 때문에,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은 유혹에 종종 빠진다. 그러나 우울한 분위기나 생각에 빠지면 깊은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다. 우울증은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로 묘사되는 때도 더러 있고, 붙잡고 늘어질 것이 전혀 없는 듯이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시야를 넓혀서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즉, 공허감 이나 인생에 있어서 익숙한 이해심이나 구조의 상실, 그리고 부정적으로 보이기는 할지라도 열정 의 증발 같은 것은 인생에 신선한 상상력을 만들어 주는데 활용될 수 있는 요소들이 된다.

우리가 상담자로서나 친구로서 우울증을 관찰하는 입장에 서고, 다른 사람들 속에서 우울증 을 다룰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 주는 기회가 주어질 때, 우리는 인생이란 언제나 기뻐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어야 할 뿐더러, 우리는 우울증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는 우울증의 여러 가지 특성으로부터 배우고 또 그것이 이끄는 대로 따라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우울한 영혼이 자신의 운명을 지극히 진지하고 묵직하게 다룰 때 우리는 우울증이 있는 순간 에 더욱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들뜬 기대감을 낮추어야 하고 경계하는 태두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친밀한 감정을 느끼면서 수용과 억제로써 우울증의 자리매김을 해 주어야 한다. 물론 때때로 우울증은 다른 여느 정서와 마찬가지로 일상의 한계를 넘어서 우리를 완전히 약하게 만드는 특성 이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경우에도, 우리는 우울증의 핵심에서 농신을 찾고 또 그와 친해질 수 있다.

우울증과 연결된 큰 불안 한가지는 우울증이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과 인생이 다시는 절대로 기쁨도 활력도 되살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농신이 멀리 떨어져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또 영원히 함정에 빠진다는 느낌이다. 내가 농신의 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농신이 나의 영혼에 나쁜 영향을 끼쳐서 나를 꼼짝달싹 못하게 하도록 만들고, 갑 갑함을 느끼게 만드는 한가지 방법이라 생각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말하자면,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강한 주제가 있다. 우리가 우울증 속에 있는 음울한 요소들과 싸우기를 멈추고, 그 대신에 우울증으로부터 배우고, 우울증이 지닌 어두운 특 성을 어느 정도 성격의 측면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이런 불안이 줄어드는 것이다.

죽음의 낌새

농신은 추수꾼이며, 수확의 신이며, 농신의 축제인 쌔터낼리아의 후원자이다. 우울증 때문 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인생이 끝났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장래의 희망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여러 해 동안 지니고 살아온 가치관이나 이해심 같은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의미가 없어지게 되니까 환멸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그동안 소중히 지켜온 진실이 추수 때 의 쭉정이처럼 농신의 검은 흙 속에 가라앉는다.

영혼의 돌봄에는 이와 같은 죽음을 수용하는 것이 요청된다.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생 각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내세우고자 하는 유혹이 있으나, 실제로 필요한 것은 그런 생각들을 버리 고 죽음의 운동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인생이 끝났다든가, 계속해서 사는 것이 소용없다고 하 는 의미가 증상으로 느껴진다면, 이런 느낌에 대한 긍정적인 접근이야말로 우울증이 불러일으킨 종말에 대한 생각이나 정서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지고 들어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심오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우사의 니콜라스는 그가 배를 타고 여행할 때, '우리가 가장 심오한 일들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한가를 인정해야 된다'는 사실이 환상 을 본 것처럼 그에게 떠올랐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도무지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 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무지 곧, 우리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무지에 대해 배우는 것이 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출발점이 되어서 더욱 더 근거있고 끝이 활짝 열린 지식으로서 절대 로 고정 관념 속에 갇혀 버릴 수 없는 지식을 찾게 해 준다. 그가 좋아하는 기하학으로부터 얻은 이 은유를 사용하면서 그는 말하기를 바로 우리의 실존의 기초에 관한 온전한 지식이 원으로 묘사 될 수 있다면 우리가 할 수 잇는 최선은 다각형에 도달하는 것인바, 확실한 지식에 모자라는 것이다.

우울증 속에서 종종 찾아 볼 수 없는 의미의 공허와 해체는 우리의 인생을 우리가 이해하거 나 설명하는 방법에 대하여 우리가 얼마나 집착하는가를 보여준다. 종종 우리의 개인적인 철학 이나 가치관이 너무 깔끔하게 포장되어서 미스테리의 공간 조차 별로 남기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 다. 그 때에 우울증이 찾아 들어서 구멍을 내는 것이다. 고대 천문학자들은 토성(농신)이 가장 멀리 떨어진 항성으로서 멀찌감치 차갑고 텅빈 공간 속에 있는 것이라고 상상하였다. 우울증이 우리의 이론이나 가설에 구멍을 낸다. 그러나 이 같은 고통스러운 과정은 치유에 필요한 가치있 는 근거로서 존중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우울증의 진실을 일깨워주는 이가 오스카 와일드인데, 그는 스다일의 온전함을 전적으로 삶의 중심적인 관심사로 강조하는 사람으로서 비움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가 한 남자를 사랑한 죄로 벌을 받던 감방으로부터 그의 탁월한 편지 "깊은 곳에서"를 쓰 면서 이렇게 언급한다. "최종적인 미스테리는 자신이다. 균형 속에서 해의 비중을 재고, 달의 발자 국을 측정하고, 별을 헤아리며 일곱 하늘의 천체도를 그리고 났을 때에도 남는 것은 자신이다. 자 신의 영혼의 제도를 계산할 사람이 누군가?" 쿠사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수학적 이미지를 주 목할 때) 우리 자신의 영혼의 궤도를 계산 할 수 없다는 이 진리를 배워야말 할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의 한계를 배우는 이런 기묘한 교육은 다만 의식적은 노력이라고만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 를 사로잡는 분위기로서 우울증이 덮쳐와서는. 최소한 순간적으로라도 우리의 행복을 앗아가고, 우리의 지식과 가설과 바로 실존의 목적에 대한 근원적인 평가조차도 싹 쓸어버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고대의 텍스트에는 농신이 "독성"이 있다고 딱지를 붙인 때가 종종 있었다. 우울한 무드 속에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권장함에 있어서 나는 그것이 가져다 주는 지독한 고통을 간과하고 싶 지는 않다. 그렇다고 영혼에게 독특한 선물을 안겨주는 우울증의 형태가 작은 것만도 아니다. 예 민한 우울증이 깊고도 깊숙히 판을 벌리면 이것은 또한 그때까지 붙들고 살아왔던 주의 주장을 말 끔히 씻어 버릴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농신의 아이들"은 목수들을 포함시키는데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을 봐도 새 집 의 기초와 뼈대를 합치고 있다. 우리의 우울증 속에서도 내적 건설이 진행되면서, 옛것은 지워 버 리고 새 것을 덧입힌다. 우리가 꾸는 수많은 꿈이 사실상 건살 현장과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흔히 묘사하는데, 그것은 영혼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지적한 바와 같이 우울증이 한참일 때 외적인 삶은 공허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내면의 작업은 전속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우울증과의 화해협정

융 심리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농신은 아니무스적인 남성으로 고려한다. 아니무스는 영혼 속 으로 사상이나 추상적 개념을 뿌리 내리게 하는 생명의 깊은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마에 있어서 강하다, 즉, 상상력이 가득하고, 생명에 근접해 있고, 주변 사람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연결이 잘 되어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는 일이나, 자신들의 생활 개념을 자신들의 사상이나 가치관에 연관시키는 일을 하는 정서적 개입으로부터 뚝 떨어져 나가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영혼에 대한 또 다른 고대의 은유를 쓰자면, 그들의 경험은 "촉촉히 젖은" 상태이다. 왜냐하 면, 그들은 삶 속에 정서적으로 아주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들은 차갑고 메마른 토성 (농신)의 먼 지역까지 유람하는데서 덕을 볼 수도 있다.

이런 메마름은 삶에 근접하는 개입이 지닌 특성으로서의 촉촉한 정서로부터 의식을 분리시 킬 수 있다. 우리는 노인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초연하게 자신들의 과거를 성찰할 때 그들에 게 이런 것이 발달해 있는 것을 본다. 농신의 관점은 사실상 때로는 오히려 무정하고 심지어 잔인 할 때도 더러 있다. 사뮤엘 베케트의 우울한 희곡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에서 우리는 우울하게 성찰하는 것을 유머 감각과 함께 날카롭게 묘사하는 것을 발견한다. 녹음기를 이용하여, 크라프는 일생 동안 녹음 테이프를 틀면서,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상당히 우울하게 경청 한다. 테이프 하나를 다 듣고, 앉아서 다른 테이프를 돌린다. "저 바보같은 못난 새끼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삼십 년 전으로 돌아간단 말이야. 내가 저렇게 나쁜 놈이었다고는 믿기가 어렵네. 다행이 이건 어차피 다 끝난 이야기야."

이 몇 줄 만 봐도 과거와 현재의 거리가 드러난다. 동시에 훨씬 상큼한 관점과 함께 가치관 의 파괴를 본다. 대부분의 베케트의 희곡에서 보면, 등장인물들이 우울증이거나 절망적인 상태를 표현하고, 단편적일지언정 옛날의 의미를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음을 표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공허함과 더불어 수수께끼처럼 얽혀있는 삶의 한 부분이 되는 고상한 바보스러움의 이미지를 동시에 제공해 준다.

이런 등장 인물들이 드러내는 절대적인 슬픔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미스테리를 포착할 수 있다. 의미와 가치가 별안간 사라지는 것을 발견한다는지, 물러날 필요나 모호한 절 망감으로 압도 당한다는지 하는 것이, 비록 그렇게 느껴질 수 도 있지만 실제로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감정들은 일정한 자리매김이 있고, 영혼에 대하여 일종의 마법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