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1. 10)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38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크라프라는 이름은 우울증이 인생을 평가 절하한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그가 보여 주는 것은 냉혹한 자책과 자기 심판을 임상적인 증산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어리석음으로서 실제로 영혼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심리학은 크라프의 자기 비판을 노이로제적인 마조키즘의 한 형태로서 교정해야 한다고 할 지 모르지만, 베케트가 모여 주는 것은 심지어 그 자체의 추함과 어리석음 속에서조차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녹음 테이프를 돌리면서 중얼거리며 욕을 하는 크라프는 동시에 우리의 기억을 우리 자신의 정신 속으로 되돌리는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나타내며, 이는 역시 우리가 증류시키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우울한 환원 작업으로부터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이 출현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진흙구덩이에서 금이 나오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농신(토성)은 때때로 검은 태양 (sol niger)이라 불리운다. 그의 어둠 속에서 귀중한 빛이 찬란하게 비치는데, 이는 우리의 본성으로서, 우울증이 안겨주는 선물 중 아마도 가장 큰 것으로, 바로 우울증에 의하여 증류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현대 방식으로 우울증을 질병으로 보고 기계적으로 화학적으로 처리하기만 고집한다면, 오로지 우울증만이 제공해 줄 수 있는 영혼의 선물을 우리는 잃을지도 모른다. 특히, 전통이 가르쳐 주는 것을 보면 농신은 무엇이든 그와 접촉하기만 하면, 고정시키고, 어둡게 하고, 무게를 잡게 하고, 굳어지게 만든다. 만약 우리가 농신의 무드를 없앤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삶을 밝고 따듯하게 하려는 노력을 소진시키고 말 것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농신을 억제하는 것 때문에 불려 나온 우울증은 점점 증가하고 그 때문에 우리는 한층 더 우울증에 사로잡힐지 모른다. 그리고 농신이 영혼에게 주는 정체성의 예리함과 본질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농신의 상실이 드러내는 증상에는 모호한 전체의식과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과, 일반적인 불안과 권태로서 농신의 어둡고 깊은 무드를 창백하게 반사시키는 것 등이 포함된다.

농신은 성격의 표면에서보다는 오히려 영혼 깊은 곳에서 정체성의 자리매김을 한다. 정체성은 한 영혼이 자신의 무게와 크기를 찾는 것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그것을 벗겨낸 후에 비로소 우리가 누구인지를 안다. 이것은 화학적 의미에서 본질로 '환원'되는 우울한 생각에 의하여 결려내지는 것이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남는 것은 하얀 유령같은 것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바싹 마르고 본질적인 '나'이다.

영혼의 돌봄은 우울증이 상징하는 더 큰 세계를 북돋우어 줄 것을 요청한다. 우리가 임상적으로 우울증에 관하여 말할 때, 우리는 정서적 조건이나 행동적 조건을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울증을 농신이 찾아 오는 것이라 상상할 때, 그 때는 농신의 세계 속에 있는 수많은 특징들이 누에 들어오게 된다. 즉, 고립에 대한 필요, 판다지의 응고, 추억의 증류, 죽음의 수용, 등 몇 가지 이름을 대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영혼을 위하여 우울증은 통과제의이다. 만약 우리가 공허하고 나른한 우울증에는 상상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속에 있는 통과제의적 측면을 간과할 수도 있다. 즉, 공허함은 유쾌 또는 불쾌의 감정과 카타르시스의 이미지들과, 후회와 상실의 정서들로 가득하다. 무드의 농도로 말하자면 회색은 흑백 사진에서만큼 흥미로울 수도, 잡다할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우울증을 병리학적으로 보면서, 치료를 받아야 할 증후군으로 대한다면, 그 때는 농신의 정서가 비정상적 행동으로 빠져나가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대안이 있다면 농신이 찾아 들도록 초청하고 그가 와서 문들 두드리면 그가 머물 수 있는 적절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정원들을 보면, 농신에게 바친 초당이 있었는데 어둡고, 그늘지고, 뚝 떨어진 곳에 있어서 한 사람이 물러나서, 우울증 적인 사람 속으로 들어가서 불안해 질 두려움 없이 머무르는 곳이다. 우리는 이런 정원에서 모델을 찾고 거기에서 우울증을 다루는 태도와 방법을 익힐 수 있다. 때로는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서 냉정함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친구로서 또한 상담자로서 우리는 그런 감정들을 바꾸려고 하든가 해석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그런 감정들을 위한 정서적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가정집이나 상업적인 건물 안에 방이나 실제적인 정원을 마련하여 한 사람이 물러나서 그 곳에 들어가 명상하거나 생각하든가 아니면 그냥 혼자서 앉아 있기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현대 건축이 영혼을 인식하려고 노력하게 될 때, 한 개인이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원이나 사각형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나 보인다. 그러나 우울증은 원심력이 있어서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간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빌딩이나 기관들을 '센터'라고 부르지만 농신은 아마도 전초지점(outpost)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병원이나 학교에는 '공동실'이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비공동실'이 되어서 사람들이 물러나서 고독을 즐기게 하는 것이 되기가 쉽상이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을 때에도 텔레비젼을 켜 놓든가 하루종일 비디오를 켜 놓는 일은 농신의 침묵에 대하여 방어하는 것이 될지 모른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토성(농신)을 에워싸고 있는 텅 빈 공간을 없애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빈 공간을 채우려고 할 때, 우리는 농신이 억지로라도 증상을 역할로 담당하고는 치유자나 교사로서 보다는 오히려 농신의 전통적인 역할로서 페스트처럼 진료소나 병원에 자리를 잡게 만들 수도 있다.

어째서 우리는 영혼의 이런 면을 감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농신에게 대하여 아는 것이 대부분은 우리에게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허는 너무 늦게 그리고 너무 문자 그대로 나타나니까 그 속에 영혼을 지니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보면, 판자집들이나 실패한 기업들이 경제적 사회적 '불경기'의 신호가 된다. 도시 안에 있는 이와 같은 '불경기'의 지역에서 보면 의지와 의식적 참여로부터 쇠퇴는 단절되고 나타나는 것은 오로지 문제나 질병의 외적 표현일 따름이다.

우리는 또한 불경기를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볼 때, 보다 건강한 계획과 기대를 깨고 기습적으로 들어오는 문자 그대로의 실패와 위협으로 본다. 만약, 우리가 농신을 볼 때, 그의 어둡고 텅빈 공간들이 삶 속에 자리매김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면, 어떨까? 만약 우리가 농신을 달래서 그의 가치관이 우리의 생활방식에 편입되도록 하면 어떨까? (달랜다는 것은 보호의 수단으로 인정하는 것과 존경을 표하는 양쪽을 동시에 의미한다) 우리는 중병에 직면해서도, 우리는 농신에게 더욱 더 솔직함을 보여 줌으로서 존경을 표할 수도 있다.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말을 듣고 보면, 말기 질환의 우울한 사실들을 터놓고 이야기할 때 가족들이 얼마나 힘을 얻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질병이나 의사와 병원을 찾아가는 것을 꼭같이 우리의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운명을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 받아 들일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 속에 있을 때 그것이 미치는 영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려고 하면 우리는 영혼을 돌보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 있을 때는 오로지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것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표현하는 몇 마디 말이 농신을 달래 주고 계속해서 화해하는 길이 될 것이다.

우울증은 영혼이 지닌 얼굴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고 우리들의 관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친밀도를 키워 준다. 영혼 속에 편히 머물고 있는 무엇인가를 우리가 부정하거나 덮어놓으려고 한다면 그 때 우리는 남들에게 온전하게 현존할 수가 없다. 어두운 자리들을 감추면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영혼의 상실이다. 어둔 자리를 대변하거나 그 관점에서 말하는 것은 순전한 공동체와 친밀한 관계를 향하여 나갈 길을 제공하는 것이 된다.

우울이 지닌 치유의 능력

몇 해 전에 빌이 나를 찾아 왔다. 그는 내가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사제로서 나에게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사제 서품을 받은 지 삼십 년이 될 즈음에 육십오세 때에, 뜨거운 동정심을 지니고 살던 시골의 사목으로서 자기 교회의 여신도 두 사람에게 자기 생각에는 완전히 적절한 도움을 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주교가 생각하기에 그는 교회 기금을 잘못 처리하였고, 또 다른 면에서는 판단력이 부족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생동안 존경을 받고 살아온 그는 이틀의 말미를 받고 짐을 싸서 교구를 떠나고 말았다. 그가 자기 상황에 대하여 나에게 말할 때 빌은 아주 생기있게 자기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집단 상담 치료에 잘 갔고 거기서, 특히 그의 분노를 다루는 방식을 발견하였다. 그는 어느 시점에 가서는 자기 자신이 심리치료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는데, 그 때의 생각은 자기의 동료 사제들을 도와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의 빠져들게 된 어려움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보니까 그의 설명이나 변명은 나이브하게 보였다. 한 여신도에 대하여 그가 말하기를 "나는 다만 그 여자를 도와 주려 한 것 뿐이었어요. 그에게는 내가 필요했거든요. 나의 관심이 그에게 필요하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겁니다."

나는 어떤 판단을 하지 않으면서 다만 빌의 범상하지 않은 경험과 해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속에 담고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꿈 이야기를 가지고 꽤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빠르게 그는 꿈속의 이미지를 읽는데 있어서 전문가 뺨칠 정도가 되었다. 나는 집단 상담치료 때에 그가 그린 회화와 그림들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몇 주일을 두고 그런 이미지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끝에 우리는 그의 천성에 대하여 통찰하게 되었다. 이런 미술 작업을 통해 빌은 자기 가정 배경과 아울러 그가 사제가 되기 위하여 결심하게 된 주변의 주요 사건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