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1. 12)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39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그의 행동에 대한 나이브한 설명이 떨어져 나가고 대신 그 자리를 그의 인생의 굴직한 주제에 대한 더욱 더 실질적인 생각으로 채우게 되자 그의 기분은 어두운 색조가 짙어진 것이다. 그가 신학생 때나 사제가 된 다음에도 내내 사람들에게 대접받아 온 방식에 대해서 분노를 더욱 더 표현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경쾌한 기분을 많이 잃어버렸다.
한편, 그가 사제관에 들어가 살게 되었을 때에, 그는 거기서 대체로 움츠려들어 있었다. 그는 고독을 끌어안고 사제관 안에서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최근에 경험한 상처들은 순전히 우울증으로 깊어만 갔다.
이쯤에서 빌은 교회 당국을 비판하게 되었고, 자신이 사제가 되려다가 실패한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더욱 실감나게 이야기하였다. 빌은 자신은 사제가 될 재목으로 태어난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꿈이 아니라 아버지의 꿈을 이루도록 아버지 대신에 자신이 사제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빌은 자신의 우울증이 자기 인생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러한 스타일로 이야기하였다. 즉, "소용없어요. 다 끝난 일이예요. 내가 평생 원하던 것을 얻기에는 이제 너무 늙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는 방에 쳐 박혀서 책이나 읽는 거예요." 그러나 치료는 계속해서 받았고, 매주 그는 우울증 때문에 말하게 되었고, 또 우울증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나의 치료 전략은 단순히 빌의 우울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심을 보이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어떤 영리한 기술도 없었다. 나는 그가 어떤 우울증 워크샾에 참가하도록 권하지도 않았고, 자기 내부에 있는 우울한 사람을 접촉하도록 환타지아로 이끄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영혼의 돌봄은 그런 일 보다는 바로 그 순간에 그의 영혼이 스스로 표현하는 방식을 단순히 감상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나는 그의 어조가 느리고 섬세하며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관찰하며 빌이 자신의 매너와 말과 꿈과 대화 속의 이미지를 어떻게 끌어들이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우울증에 빠질 때에는 빌이 자기는 절대로 신부가 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의 말을 나는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사제직이 여러 해 동안 그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녔던가를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는 자신의 소명 속에 숨어 있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있었다.
그의 사제 생활은 그 한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 때문에 영혼이 되살아나며 깊이가 더해갔다. 빌은 난생 처음으로 사제가 되기 위하여 자신이 어떤 희생을 했던가를 직면하게 되었다. 이것은 사제직에 대한 적대적 거부가 아니라 완성이었다. 내가 눈여겨 보니까 심지어 그가 자신의 희생을 한 겹 한 겹 헤쳐보며 생각하거나 자신의 사제가 된 데에 대하여 강렬하게 후회하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그는 교회를 향한 자신의 충성심이나 신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나, 자신의 죽음과 사후생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는 이제 와서야 비로소 사제직의 참된 핵심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었다.
강박적으로 남을 돕는 유순한 신부는 사라지고, 그 대신에 덜 조작적이면서도 더욱 강력하고 개성적인 사람이 되 살아나고 있었다.
우울한 상태에서 보면, 빌은 다만 익숙한 생활은 죽고 끝이 나며 오랫동안 간직해온 가치관이나 이해심을 비우는 꼴이 되었다. 그러나 우울증은 분명히 그의 나이브한 삶을 바로잡고 있었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사람들의 가장 큰 덕목은 동시에 그의 중심적인 결점이 된다. 모든 존재, 이를테면 동식물이나 사람에 대한 빌의 어린이 같은 관심은 그에게 뜨거운 동정심과 이타적인 감성을 듬뿍 안겨 주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는 상처받은 가능성 때문에 동료 사제들에게 농담 꺼리가 종종 되었는데, 그들은 놀림 받는 것 때문에 빌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 줄은 몰랐다
그의 너그러움은 무제한인 듯 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 때문에 그는 허무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울증은 그를 강하게 만들었고, 그에게 확고함과 견고함을 새로이 갖추게 해 주었다.
우울증으로 말미암아 빌은 자신의 삶 속에 있는 약함들을 더 잘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그의 나이브한 관심 때문에 누구에게나 덮어놓고 승인 해주는 경험이 많았다. 진짜 영웅도 없었고, 전적으로 원수도 없었다.
그러나 우울증을 앓으면서 빌은 사물을 더욱 깊이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의 동료들을 향한 적개심이 진짜로 담대하게 터져 나왔다. 한번은 "그 친구들, 모두 일찌감치 죽었으면 좋겠어."하고 이를 악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빌은 나에게 자신있게 말하곤 했다.
"나는 늙었어요. 그걸 직면합시다. 나는 칠십이예요. 나에게 무엇이 남아 있겠습니까? 나는 젊은이들이 미워요. 나는 그 젊은 녀석들이 병이 들면 기분이 좋아요. 내 인생에 남은게 많다고 말하지 마세요. 남은 것이라곤 없어요."
빌은 자신을 노인이 된다는 것과 강렬하게 동일시하였다. 그가 사실을 직면하고 자기의 나이를 부인하지 않고 나에게 말하는 것을 두고 내가 어떻게 시비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가 믿기에는 그가 이토록 똑똑하게 말하는 것이 따지고 보면 다르게 동일시 할 수 있는 옵션에 대한 방어가 될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빌이 우울증의 더 낮은 차원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 주는 형국이었다. 바로 그런 특징 순간을 포기함으로써, 날개 속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생각은 할 필요도 없고 느낌을 경험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하루는 그가 나에게 꿈 이야기를 했는데, 꿈 속에서 그가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두 번째 층계를 내려가는데 너무 좁아서 더 이상 내려가고 싶질 않았다. 자신은 저항하는데도, 뒤에서 한 여자같은 이가 계속 내려가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이것이 당시의 빌의 상태를 그림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는 상당히 내려가 있었지만 더 깊이 빠져 들어가지 않으려고 싸우고 있었다.
"나는 늙은이야.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하는 빌의 불평은 진짜로 농신이 치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하는 말이 나이를 확인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나이에 대한 공격이라고 해야 더 맞다.
그가 이런 말을 할 때면,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가 신학생 시절이나 사제로서 여러 해를 두고 성장할 기회를 거부당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어떤 면에서는 내내 어린 아이처럼 살면서 돈 문제나 생존에 대하여 걱정 한번 안하고 인생의 중대 결정 같은 것도 한번도 안하고 단순하게 장상들의 명령만 따르며 살았다는 것이다. 이제 바야흐로 운명은 불안정과 성찰의 깊은 자리로 밀어 붙였다. 난 생 처음 그는 매사를 묻게 되었고, 이제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신부님의 꿈 말이예요." 내가 말하였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는데 한 여인이 뒤에서 윽박지르는 꿈은 말이죠.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프로이트에게 눈을 돌려서 그것을 탄생의 시도로 봐야 할 것 같아요."
"나는 한번도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요." 그가 흥미를 느끼며 말하였다.
"신부님은 우울한 가운데에 바르도 상태에 계신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게 뭔지 아세요?"
"아니요. 한번도 못 들어 봤어요."
그가 말하였다.
"티벳트 사의서에서는 환생의 중간 기간, 즉 다음의 생으로 환생하기 이전의 상태를 두고 바르도라고 설명합니다."
"나는 요즈음 인생의 사건들에 대해서 도무지 아무 맛도 못 느껴요."
"제가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신부님은 삶에 참여하고 싶질 않아 하세요. 신부님도 생과 생 사이에 계신 거예요. 그 꿈이 아마 신부님을 초청해서 운하 속으로 들어가시게 하는 것 같아요."
"나는 꿈 속에서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느낌이었구요. 그 여인 때문에 좀 어지러웠어요."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말하였다. 이승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특히 처음 그런 경험을 하면서 몹시 고통스럽기는 하면서 겉보기에도 성공적이지 못할 때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하면서 말했다.
"나는 준비가 안되어 있어요." 그는 이해심과 확신을 가지고 말하였다.
"그건 상관없습니다." 내가 말하였다. "신부님은 어디에 계신지를 알고 계시구요. 거기에 게시는 것이 중요하지요. 바르도는 시간이 걸립니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닙니다. 미숙한 탄생, 즉 조산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빌은 일어나서 그가 '동굴'이라고 부르는 수도원의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밖에 별다르게 할 일이 없지요. 그렇잖아요?" 그가 물었다.
"그렇지요." 나는 그에게 무엇인가? 구체적인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하였다.
빌은 그의 신학 강의 시간에 달의 발자국들을 측정하면서 무엇이 영혼에게 유익한가를 자기는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우울증으로부터 배운 뒤로는 한층 더 굳건하게 진리를 설파하였다. "나는 남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라고 절대로 말하지 않겠어요." 그가 말하였다. "나는 다만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미스테리에 대해서 말 할 수 있을 뿐이예요." 우울증에 빠졌을 때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던 것처럼, 빌은 미스테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감상법을 찾았다.
사제가 미스테리에 관한 한 익숙할 것처럼 말들 하지만 빌의 우울증이야말로 그의 신학 교육에 있어서 진일보하게 만들어 주는 결과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