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3. 2)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53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역사적으로 신화와 제의는 한 줄로 서 있다. 민족은 저마다 창조 설화와 민족 신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며, 민족 신을 숭상하고 제의 속에서 그들의 창조를 경축한다. 신화가 문자 그대로의 경험이 아니라 느낀 경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방식인 반면에, 제의는 정신과 마음을 향하여 말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문자 그대로의 정황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닌 그런 행위이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빵을 먹는 것은 육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살찌게 하는 행위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행동들이 실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대신에 영혼을 향하여 말하는 것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끌어안는다면, 그래서 우리가 하는 수많은 일에 있어서 기능이 차지하는 지배적인 역할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나날들 속에서 영혼에다 더 큰 비중을 둘 수 있을 것이다. 옷 한 벌이 유용할 수도 있으나, 동시에 그것은 영혼의 주제와 관련하여 특수한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음식이 지니는 어떤 상징적 암시성이나 그 음식을 차리거나 먹는 방식에 신경을 쓰며 주목함으로써 만찬이 제의가 될 만큼 수고를 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어느 정도 생각이 필요한 이런 부가적인 차원이 없으면, 삶이 매끄럽게 진행된다 해도, 천천히 영혼은 약화될 것이고 마침내 영혼의 현존은 오로지 징후들 속에서만 나타나게 될 것이다.

노이로제나 명백히 말해서 정신병이 흔히 강박(충동)적 제의의 형태를 취한다는 것은 주목할 값어치가 있다. 우리가 어떤 음식, 흔히 ‘정크 푸드’ 같은 것은 계속 먹으면서 끊지를 못한다. 우리는 텔레비전 수상기에서 물러나지를 못하는데, 특히 인이 박힌 것처럼 익숙해진 프로그램이 나오면 더욱 그렇다. 이런 것이 바로 강박(충동)적인 제의가 아닌가? 몹시 불안한 사람들은 부적절한 순간에도 제의적인 소리 같은 것을 흥얼대거나 과장된 의상을 입거나 강박(충동)적으로 손을 씻는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과장하는 손짓이나 팔짓으로 제스처를 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악의 현존을 느낄 때마다 둘째손가락들을 서로 엇갈리게 하는데, 이런 짓을 한 시간에 여러 차례 반복한다. 그리고 또 어떤 여성은 말하면서 한 문장을 마칠 때마다 자기의 무릎을 친다.

이런 노이로제 같은 제의가 나타나는 것은 상상력을 잃었거나 더 이상 영혼의 돌봄이 없을 때 생기는 현상으로 볼 수는 없을까? 바꾸어 말하자면, 나날의 삶 속에서 제의가 있기만 하다면 그 제의가 영혼을 상상의 세계에 머물게 하면서 문자주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해준다. 노이로제는 상상력의 상실로 정의될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행동한다”고 말할 때 그 뜻은 이미지의 영역 속에 간직되어야 마땅한 것이, 마치 삶이 시가 아닌 것처럼 그 삶 속에서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노이로제적인 종교의식을 치유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보다 더 순전한 종교의식인 제의를 다듬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의는 세계의 경건성을 유지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아무리 단순한 것일지라도 그 주변에 상상력의 후광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영혼에게 봉사한다는 사실을 알면 그것 때문에 삶이 풍요로워지고,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더 귀하게 되고, 더욱 더 보호와 돌봄을 받을 만한 가치가 생긴다. 꿈속에서 작은 물건에라도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과 같이 제의 때문에 생기가 돋는 삶 속에서도 무의미한 사물은 하나도 없다. 전통 문화를 볼 때 의자나 도구 같은 것에다 정교하게 얼굴이나 몸을 조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평범한 물건들 속에서도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고, 마찬가지로 간단한 일조차도 제의가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량 생산하는 상품 위에다 상상력의 표시는 전혀 없이 단순히 기능성을 그려 넣은 스탬프만 찍어대는 것은 보통 일들 속에서 제의가 맡을 역할을 부인하는 꼴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생기를 돋울 수 있는 영혼을 쫓아 버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교회나 사찰에 가는 것은 그런 강렬한 전통 제의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지만 또한 제의를 행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도 된다. 전통이 제의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되는 까닭은 영혼의 개인의 의식보다는 훨씬 더 큰 범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짜 맞춘 제의’는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거나 우리 스스로 꿈을 해석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자질구레한 이론을 뒷받침하는지는 몰라도 영원한 진리를 지지하는 것은 못된다. 어느 수녀들의 그룹이 여러 해 전, 성금요일 미사에서 부활절 찬미를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너무 정신적으로 불건강한 것 같고 맥빠지게 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성금요일의 무드가 지닌 깊이가 비록 어둡기는 할지라도 전통은 그런 감정 속에 담긴 중요성을 더 잘 알았을 법하다. 우리가 제의를 우리의 삶 속에서 더욱 중요하게 자리매김할 것 같으면, 형식을 갖춘 종교와 전통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흘러가는 유행보다도 제의 전승에 더욱 민감한 교회를 찾기 원하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보수주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깊은 다면적인 영혼이 장기간에 걸친 시간을 반영하는 전통 속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란 곳은 가톨릭이다. 내 기억으로는 비록 제단을 나무로 만들지라도 성인의 뼈나 제단의 벽돌 한 장까지도, 거기에 필요하였던 것이다. 내가 그와 같은 신성한 기술에 대한 정보를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서 인식하게 된 것은 우리 집에 가족의 유품을 두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내 말뜻은 꼭 뼈가 아니라 기념이 될 만한 것들 또는 사진이나 묵은 편지 같은 것들이다. 나는 돌로 된 것들도 원하는데, 그런 것은 나 개인의 삶에 비하자면 영혼이 사는 광대한 시간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또한 교회에서 배운 것은 초를 반드시 밀랍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만찬용 빵과 포도주를 선별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소년 시절, 제단 위에 놓인 미사를 위한 거룩한 책을 본 기억이 있다. 그 책은 붉은 가죽으로 제본되어 있는데 책갈피에 술이 달린 색색의 넓은 리본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본문은 큰 글자로 되어 있고 전례에 대한 지시는 붉은 글자로 인쇄되어서 검은 색으로 인쇄된 기도문과 확연히 대조를 이루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런 특징들로부터 얻은 교훈을 간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서 즉 제의를 어떻게 행하라고 정확하게 일러주는 붉은 글자로 된 지시의 중요성을 명심하고 산다. 마음속으로 나는 날마다 주서 즉 일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특별한 방식에 주목할 수 있다.

자연히 내가 암시하고 있는 것이 표피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영혼이 없는 제의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그들은 너무 가볍게 주서를 가지고 논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는 일들이 이루어져서 진정으로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차원을 불러일으킬 만큼 격을 갖춘 깊은 성취감을 느낄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나는 지금 소년 시절에 경험한 미사의 제의에 대하여 다분히 감상적인 것을 상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중에 신학교 강의실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제의가 효력이 있는 것은 제의를 행하는 사람의 의도 때문이라기보다는 ex opere operato 곧 ‘행해진 일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것은 순전한 제의와 의식주의를 논하는 것 사이의 중대한 차이라 하겠다. 즉, 의식을 행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의도나 선호는 소재 그 자체에서 나타나는 전승과 제의에 뒷줄로 서는 것이다.

주서는 어떤 표피적인 자리에서 솟아나올 수는 없다. 그것이 개인의 취향이나 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될지는 몰라도, 그 사람의 정신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견고한 근거에서 솟구쳐야 마땅한 일이다. 융이 그의 돌 조각품을 사랑한 것은 감상적인 것도 실험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나 먼 훗날 현재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나 똑같이 정직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특별히 의식화하는 형태가 모든 사람에게 적합할 수는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서와 제의의 소재를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생각으로 제각기 사제나 목사나 랍비를 찾아간다면 얼마나 흥미로울까. 이런 영성의 전문가들은 오늘 세상 사람들이 선호하는 사회학이나 경영학이나 심리학의 훈련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제의 같은 것에 학문적 깊이를 가지고 훨씬 앞설 수는 있다. 영혼을 더욱 잘 돌볼 수 있는 길은 여러 해에 걸쳐서 개인의 행동이나 관계에 대하여 상담을 받은 것보다는 오히려 깊은 제의적 생활을 발전시키는 것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삶 속에서 심리적 적응의 노력은 조금 덜 하고 제의를 더 많이 경험한다면, 우리는 사랑이나 정서 같은 영혼의 일에 있어서 한층 더 좋은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우리는 순수하게 현세적이고 개인적이고 즉각적인 문제들을 더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영혼의 관심들과 혼동한다.

영혼에게 강렬하고도 진한 영성 생활이 필요한 것은 몸에 음식이 필요한 만큼이나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필요한 것과 똑같다. 이는 수 세기에 걸쳐서 영성의 대가들이 전해준 교훈과 이미지이다. 이런 사상 속에 담긴 지혜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똑같은 대가들이 보여 주는 것은 영성 생활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성 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광신적으로 치닫거나, 우리에게 동의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싸우거나, 우리의 개인적 집착 때문에 남을 개종시키려 하는 일이 우리 자신의 영혼 충만을 표현하기보다 쉽고, 우리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자기도취적으로 만족하거나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영성의 의미와 기쁨을 찾기보다 쉽다. 지난 세기의 역사가 이미 보여 준 것은 정신 질환이나 폭력에 대한 노이로제적인 영성의 경향이었다. 영성은 강력하다. 따라서 그 잠재력은 선을 위한 것만큼이나 악을 위해서도 강렬하다. 영혼에게는 영이 필요하다. 그러나 영성 또한 영혼이 필요하다; 즉 깊은 지성과 상징적이며 은유적인 삶에 대한 민감성과 순전한 공동체 그리고 세계에 대한 애착 또한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어떻게 해서 보다 더 영혼 충만한 종교와 신학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긍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다. 우리의 문화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느 특정 전승을 주창하는 것이 아니라 영성 지도에 대하여 영혼에게 필요한 것을 돌보는 일이다.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융의 말을 따라 점차 영혼이 종교로 돌아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융은 1910년에 프로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얼마나 무진장한 광희(미칠 듯한 기쁨)와 분방함이 우리의 종교(신앙) 속에서 잠자고 있는지요. 우리는 그 사랑의 찬미가 열매 맺도록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제 11 장
영성과 영혼의 혼인

영성에 있어서 우리는 의식과 인식과 최고의 가치를 얻으려고 애쓴다. 영혼충만에 있어서는 인간의 경험이나 감정 양면의 가장 즐거운 것이나 가장 지치도록 하는 것을 모두 견디어낸다. 이 두 가지 방향은 인생의 근본적인 맥박을 형성하며, 어느 정도는 그 둘은 서로를 끄는 힘이 있다.

아무도 우리가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의 시대, 그리고 가치관이 상실되고 윤리 기준이 전이된 시대를 살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자신을 살펴보면 옛 가치관과 방식으로 돌아가자고 역설하고픈 유혹을 느낀다. 과거에 우리는 보다 더 종교적인 국민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걸쳐서 전통적 가치가 영향력이 있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에 대하여 희미하게나마 향수를 느끼는 관점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융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감으로써 현재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융은 이와 같은 책동을 일컬어 ‘페르조나의 퇴행적 회복’이라 한다. 사회는 제각기 이와 같은 방어 전략에 빠져서 과거로부터 끌어 낼 수 있는 보다 더 좋은 조건이라고 상상되는 것을 시도하려 애쓴다. 문제는, 기억이 항상 상상의 일부이며, 다른 시기의 어려웠던 시절이 후일에는 무의식적으로 ‘한참 좋았던 시절’로 황금색으로 빛나게 꾸며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