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3. 3)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54

토마스 무어 지음


만약 우리가 과거를 회복함으로써 현재를 개선할 수 있다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면, 우리는 현재 당면한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나에게는 우리가 전혀 영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표류하는 사회가 아니라, 그와 반대로, 어떤 의미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영적인 사회로 보인다. 잃어버린 영성과 무디게 만드는 물질주의에 대한 열쇠를 찾기 위해선 단지 영성에 대한 탐구를 강화하는 것뿐 아니라 영성을 다시 상상해 보아야 한다.

1400년대 후반 피치노는 저서 [생명의 책]에서 영과 몸, 종교와 세계, 영성과 물질주의는 모두 양극화하는 분열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술회하였다. 즉, 우리가 강박(충동)적으로 물질주의자가 될수록 영성은 더욱 신경증적으로 될 것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의 광적인 소비 사회는 삶에 대한 추상적이며 지성 편중의 접근 방법에 대한 경향에 있어서 도망자의 영성의 표징을 내보이고 있는지 모른다. 피치노는 이러한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영과 몸이 자기 자신들의 극단적인 만화가 되지 않도록 하는 방지책으로서 그 둘 중간에 영혼을 형성하도록 권고하였다. 그렇다면 물질주의에 대한 치료는 우리의 영성 수련과 지성 생활, 그리고 세계에 대한 감성적이며 정신적인 개입을 할 자세 속으로 영혼이 돌아오게 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될 것이다.

가장 넓은 의미로 볼 때, 영성은 삶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요인들에 대한 접근이나 돌보려는 시도와 이 세상의 개인적인, 구체적인, 제한적인 문제들을 초월하려는 시도의 한 측면이다. 종교는 종교학자 미체아 엘리야데가 표현했듯이 ‘in illo tempore’, 즉 우리의 계산 밖의 다른 시간으로서 신화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창조의 시간으로 이승 저 너머로 눈길을 뻗치는 것이다. 종교는 또한 사후 생과 이승에서의 최고의 가치에 관심을 둔다. 이와 같은 영성의 관점은 영혼을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서, 비전과 감동과 또 거기에 필요한 의미를 폭넓게 제공해 준다.

영성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반드시 종교적이지는 않다. 수학이 넓은 의미에서는 영적이며, 구체적 삶의 세부사항으로부터 추출해낸다. 만약 집이나 일상으로부터 잠시 떠나거나, 높다란 고목들과 인간적인 스케일을 훌쩍 넘어서 진행되는 자연의 과정에 감동을 받는 것이 한 방법이 된다면, 햇살 가득한 가을날에 숲 속을 거니는 것도 영성적 활동이 된다. 플라톤 주의자들이 말하였듯이, 영은 우리를 인간적 차원의 한계 밖으로 끌어 올려 주며, 우리의 영혼을 살찌게 해준다.

지적이며 기계적인 지식의 추구는 때때로 영성 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엄청난 열정과 유일신적인 일편단심을 가지고 수행될 수 있다. 트레이시 키터는 저서 [신기계의 영혼]에서 실제로 영혼에 관하여 이야기하지는 않으나, 컴퓨터를 발명하거나 개발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서술하면서, 그들은 가족의 손실을 겪으면서까지 기술 시대에 대한 비전을 위하여 자신을 부정하며 몽땅 바치는 헌신적인 사람이라 한다. 그들은 ‘기계의 수도사들’이다. 그 옛날의 수도사들처럼, 그들 또한 그들이 하는 노동 수련의 영성에 사로잡혀 살면서, 빛과 전자의 세계에 있어서 자연계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재생산하는 기계를 추적하는 열정으로 말하면 금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컴퓨터 그 자체는 삶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디지털 수학이나 광 그래픽으로 세련화하지만, 그것은 싫든 좋든 간에 물질의 영성화 또는 해체하는 작업이다. 중세의 수도사들도 지성적인 지식이나 독서, 필경이나 경건한 도서관의 사서 임무를 보면서 지상의 삶을 승화시키는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분주하게 살았다.

경험을 추상화하는 데 있어서 영혼에게는 몇 가지 심각한 결함이 생긴다. ‘알려진’ 세계에서 살려는 지성적 시도는 평범한 일생 생활로부터 무의식적인 요소들 즉, 우리가 매일 부닥치면서도 별로 알지 못하는 일들을 앗아간다. 융은 무의식과 영혼을 동등하게 다룬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미스터리로부터 보호받으며 순응함으로써 편안한 마음으로, 지성적으로 예측 가능한 세계 속에서 온전히 의식적으로 살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날마다 영혼 충만한 삶에 대한 기회를 놓치고 만다. 지성은 알기를 원하고, 영혼은 놀라기를 원한다. 지성은 앞을 내다보며 계몽과 타오르는 열정의 기쁨을 원한다. 영혼은 늘 내면으로 끌려 들어가며 관상과 지하세계의 보다 더 그늘지고 미스터리적인 경험을 찾는다.

제임스 힐먼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우리의 영성이 충분히 심오하지 못할 때, 영성은 뒷문으로 살짝 빠져나가서 이상야릇한 모양으로 온갖 종류의 이상한 열광주의를 띤다. 우리는 실제적인 종교적 감성에서 광신주의로 치달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수세기에 걸쳐서 점성술이 문학과 종교의 바탕에 엮여져 들어갔다. 기독교의 시초는 물고기 즉 점성술 시대의 물고기자리와 우연의 일치를 이루는데, 이와 같은 점성술의 요인에 관하여 융은 책 한 권을 저술하였다. 거룩한 예술의 역사는 내내 점성술의 주제와 이미지를 내보이는데, 늘 교리와 제사의식으로 표현되는 미스터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점성술이 신문지면에 글자 맞추기 옆에 쯤 가서 자리하게 되었다. 한 때는 종교 예술과 신학에 포함될 수 있었던 살아 있는 신화가 이제는 안방의 놀이가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영성이 그 깊이와 실체를 어떻게 상실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작은 예에 불과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피치노의 표현대로 영성이 이제는 더 이상 영혼을 지니고 있지 못한다.

근본주의와 그 ‘치유’ - 다신론

영혼을 상실할 때, 영성은 흔히 근본주의라는 그림자 형태를 취한다. 내가 어느 특정 집단이나 종파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에 대하여 우리의 시각을 사로잡는 관점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근본주의의 본질에 대하여 서술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음악적 아날로기아를 통하여 하는 것이다. 피아노 앞에 가서 낮은 C를 제법 세게 치면, 알든 모르든 간에 일련의 톤 전체를 들을 것이다. ‘펀더멘탈’ 음은 분명히 들린다. 그러나 C와 G와 E와 심지어 B플랫의 오버톤이 그 소리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그 소리는 매우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나는 근본주의 -펀더멘탈리즘-을 삶의 오버톤 즉, 상상력의 풍부함과 다신론에 대한 방어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다. 대학에서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근본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헤밍웨이 소설에서 오버톤 즉, 미묘한 인용문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어떤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하는데, 뱀 한 마리가 성경 아가서를 암송하면서 자기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은 그 전날에 자기네 뒷마당에서 지렁이 한 마리를 봤던 경험이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근본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법칙에 도달하는데, 종교적 영성이나 온갖 이야기와 꿈과 그림에 적용시킬만한 것이다. 지성은 요약된 의미를 원하며 모든 것이 잘 되고 정신의 목적적인 특성에 들어맞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영혼이 갈망하는 것은 성찰의 깊이와 의미의 여러 층과 끝이 없는 뉘앙스와 참조 사항들과 암시와 예상 같은 것들이다. 이 모든 것이 이미지와 스토리의 질을 풍부하게 해주며, 반추할 만한 요소를 많이 안겨줌으로써 영혼을 즐겁게 해준다.

반추는 영혼이 주로 즐기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초대 기독교 신학자들은 성서 본문에 어떻게 해서 한꺼번에 여러 수준에서 읽혀질 수 있는가를 상세히 토의하였다. 그 속에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 알레고리적인 의미와 (죽음과 사후 생에 관심을 갖는) 신비적인 의미도 있었다. 그들은 출애굽기 이야기를 전형적으로 설명하면서 예를 들자면, 죄 속에 갇혀 있는 영혼을 해방시키는 데 대한 알레고리로 말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그 스토리의 유일한 의미는 아니었다. 이와 같은 수행은 성서에 대한 ‘원형적’ 독서를 암시하는데, 성서 이야기를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나 신앙 고백이 아니라 인생의 뿌리를 형성하는 미스터리에 대한 미묘한 표현으로 간주한 것이다. 기적 이야기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단순한 증거가 안 될 수도 있다. 사실상 영혼은 신성을 받아들이는 데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대신에 영혼의 다양한 방식에 대한 헤아리기 어려운 진실은 어느 정도 표현할 수는 있다. 삶 속에서는 제각기 하나만 있을지라도, 영혼이 마치 수백 개의 빵과 물고기로 배불리 먹을 길이 있는 것인가? 모든 혼인이 가나에서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결혼식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길이 있는가?

영혼의 관점에서 보면, 수많은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해가 풍부함은 될지언정, 모든 교회를 하나로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궁극적으로는 바로 종교의 생명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열렸던 공의회로부터 큰 스파크를 받았음을 기억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공의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각처에서 온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플로렌스에서 만나서 사상의 교합을 통하여 기독교적 생활 방식에 전혀 새로운 전망을 열었고, 그리스 사상과 마법의 실제에 노출되면서 엄청난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공의회에서 있었던 대화의 덕을 입은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시적 신학’이라 불리는 책을 쓰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코시모 디 메디치는 이집트의 마법의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스토리의 무한한 내적 공간이 종교에서 비롯되는 일상 생활에서 비롯되든, 그것은 바로 그 자체의 영혼이다. 우리가 거룩한 이야기에서 미스터리를 박탈한다면, 남는 것은 사실을 싸고 있는 부서지기 쉬운 껍질과 단 한 가지 의미를 지닌 문자주의가 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스토리에다 영혼을 허용하면,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깊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근본주의는 의심과 절망과 공허라는 어두운 요소들을 키질하여 날려 버리면서, 스토리를 이상주의적으로 로맨틱하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 때문에 가로막혀서 우리는 스스로 의미 속에 참여하고 우리 자신의 미묘한 도덕적 가치를 개발하는 힘든 노력을 저버리고 만다. 거룩한 교훈적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미스터리를 심화시키는 잠재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근본주의 안에서는 그것이 방어적으로 사용되어 개인이 선택과 책임과 계속적으로 변화해 가는 자신의 정체감 때문에 염려하는 것을 덜어주려 한다. 어떤 상황에서나 근본주의의 비극은 생생한 삶을 한 개의 딱딱한 얼음 덩어리 같은 의미로 얼려버리는 그 능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근본주의에는 융이안-프로이디안, 민주당-공화당, 락 -블루스 등 온갖 종류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방식과 상관이 있다. 예를 들면, 이 심리학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일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어떤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우리는 발달 심리학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형성된 것에 대하여 뭐든지 부모 탓을 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런 어릴 적 이야기들을 통하여 볼 수 있고, 신화처럼 그 이야기에 귀기울여 들을 수 있고, 그 속에 있는 시를 포착하고,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영원한 미스터리를 들을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