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3. 5)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56

토마스 무어 지음


가족 또한 영성의 근거이자 초점이 된다. 수많은 전통 속에서 가족의 사당이나 사진이 별세한 가족들을 기린다. 가족들의 모임과 방문과 스토리텔링과 사진첩, 유품들 그리고 심지어 그들의 회상을 녹음한 노인들의 녹음 테이프를 듣는 의식 같은 것도 영혼을 살찌게 하는 영성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신들과 여신들을 도처에서 보는 다신교도 세상에서 영성적 가치를 찾는 쪽으로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이런 식으로 영성을 확장하기 위하여 다신론자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는 기독교에 헌신적인 경건하고 유일신적인 주요 사상가들도 광범위한 영성을 위해서라면 그리스의 다신론에 눈을 돌렸다.

우리는 그리스 사람들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아르테미스의 영성을 실행하는 일이다. 아르테미스는 숲과 고독과 출산하는 여인과 소녀들과 자기 충족의 여신이었다. 그의 스토리를 읽고 수많은 그의 회화나 조각을 관상하면서 우리는 세계 속에서나 동시에 우리들 속에서 자연의 미스터리는 어느 정도 배울 수 있다. 아르테미스를 통하여 감동을 받아서 동식물의 방식으로 미스터리를 탐구할 수도 있고, 아니면 혼자 뚝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며 아르테미스가 지켜주는 고독에 봉사할 수도 있다. 침입과 침해에 강력하게 대항하며 보호해 주는 여신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 자신의 삶이나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그와 같은 영을 함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신교는 아프로디테적인 영성에서와 같이 우리가 가장 기대하기 어려운 곳에서도 영성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섹스가 영혼의 깊은 미스터리의 근거가 되고, 거룩한 일이 되며, 영혼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근원적인 경험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름다움, 몸, 호색, 화장품, 치장, 의상, 그리고 보석 즉, 세속적 패션에서 다루는 것들도 아프로디테의 의식과 스토리 속에서 종교적 중요성을 찾는다.

만약 우리가 영성 생활에 대한 다양한 근본주의적 태도를 넘어설 수만 있다면, 이를테면 지나치게 단순한 코드의 도덕성에 집착하는 것이든지 스토리의 고착된 해석이든지 개인의 생각은 소중히 여기지 않는 공동체라든지 하는 것은 넘어설 수만 있다면, 영성적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다른 방법들이 눈에 들어올 수 있다. 우리는 그래서 몸과 개성과 상상력과 탐구에 대한 영혼의 필요와 대항하지 않으면서도 영성적일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모든 정서와 인간의 모든 활동과 삶의 모든 국면들이 영혼의 미스터리 속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래서 거룩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식 종교의 영혼

영성과 영혼 충만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또 다른 길은 영혼을 향하여, 그리고 영혼에 대하여 종교가 공식적으로 하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융은 자신의 삶 속에서 좋은 예를 보여 준다. 그는 가톨릭 교회가 1950년에 선포한 성모 마리아 승천 교리에 매료되었다. 융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는 것은 상관없다. 그에게 있어서 이 일은 영혼에게 중요한 날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종교 개혁 이래 가장 중요한 종교적 사건”이다. 그의 생각에 이 사건은 여성을 신성의 영역으로 끌어 들였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삶 속에 하나님의 성육신이 이루어짐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는 그 교리에 관한 찬반 논쟁을 이성적으로 하는 것은 논외로 간주하였다. 그는 성모 마리아가 루르드의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였다는 보고와 함께 그것이 교황에게까지 보고되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는 이 교리가 인간과 신 사이의 강력한 연합을 바라는 집단적 필요성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는 이 교리가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중대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융은 글 속에서 여러 가지 전승을 인용하면서 가톨릭 미사와 중국의 황금꽃 이미지와 티베트의 사의 서, 욥기 등등의 상징주의의 영혼이 내포한 암시 같은 것을 탐구하였다. 이 때의 위험은 그런 접근법이 종교를 심리학적으로 처리하거나 제의나 교리를 심리학적 문제로 환원시킬 우려가 있다. 그러나 종교적 이야기나 제의 속에서 영혼에 귀기울여 듣는 것은 환원적일 필요가 없다. 르네상스 신학자들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전통적 교리에다 특별한 지위와 명예를 안겨줄 수 있으며, 동시에 영혼에 대한 언표로 들을 수도 있다.

종교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제의와 이야기는 영혼의 미스터리에 대하여 성찰할 수 있는 근거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예를 들어 공생활을 시작할 무렵에 세례를 받으려고 요단강에 서 있는 예수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 이런 장면은 누구의 삶에 있어서도 중대한 순간을 묘사하는 것이다: 즉, 사람이 스스로 시간과 운명의 강력한 흐름 속에 서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가톨릭의 가르침은 세례의 물은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개개인이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사건들과 사람들의 흐름을, 바로 세례의 물이 상징한다는 것이다. 헤라클리토스는 “만물이 흐른다.”고 간결하게 말하면서, 강물을 인생 유전의 흐르는 이미지로 사용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공적인 근거로부터 어떻게 하면 특수한 상황 속에서 영혼을 이해하고 또 다룰 수 있는가를 배우며, 동시에 그들이 꿈에 나타날 때 비슷한 이미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를 배우게 된다.

우리가 기독교 신자든 아니든, 우리는 요단강에 서 있는 예수 이야기를 읽으며 감동을 받고 우리 자신이 세례를 받는다. 요단강은, 복음서가 말해 주는 대로, 삶을 충만하게 살려는 것과 일과 사명을 감당하려는 것과 따라서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는 아버지와 보호하시는 성령의 축복을 받으려는 의지에 대한 원형이다. 르네상스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요단강의 이 장면을 그리면서 전적으로 위엄을 갖추고 예수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반면에 배경에는 세례 받을 차례를 기다리는 (우리 가운데 아무라도) 옷은 거의 벗어서 머리 위로 치며 들고 서 있는 평범한 자세를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안일하게, 건조하게, 무덤덤하게 살길을 찾는 대신에 실존의 강물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드는 의지를 감동적으로 보여 주는 이미지이다.

종교적 성상과 건축물도 영성과 영혼이 어떻게 만나는가를 보여준다. 유럽의 대성당들은 하늘 높이 치솟는 첨탑과 끝이 뾰족한 높은 창문들 속에서 영성을 묘사한다. 로켓이 지상을 떠나 우주로 향하듯이 첨탑들이 공중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이런 대성당들이 또한 색채, 조각물, 조소, 묘소, 지하납골당, 벽장, 채플, 성물궤, 이미지, 성소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든 것이 영혼이 깃드는 곳으로서 내면성과 성찰, 상상력과 이야기 그리고 환상의 자리가 된다. 대성당은 영혼과 영이 연합하는 곳으로 볼 수 있는데, 이 둘은 대등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으며 내재적으로 서로 관련이 되어 있다.

오늘 날 종교에는 사회과학을 의지하여 영성을 타당하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일상 생활과 정식 종교 사이의 보다 더 깊은 연합은 종교를 영혼을 위한 안내로 이해하는 데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생활이나 사회 생활을 이와 같은 영성적 관념과 분리시키지 않을 때, 교회 안에서 진행되는 일과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사이에서 더욱 긴밀한 관계를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인식하게 될 것이 있다. 즉, 심리학적 타당성이나 사회학적 타당성보다 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의식으로서 이해심과 관심을 가지고 수행하는 제의가 필요하며, 경외심을 가지고 들려주고 깊이 있게 토의되는 이야기가 필요하며, 전통적 가르침과 이미지를 통하여 심오하게 전수되는 영성 지도가 필요한 것이다.

영혼을 지닌 아이디어

내가 심리학 대학원 과정을 처음으로 가르칠 때 일이었다. 학생들은 독서 목록에서 프로이트와 융의 저서를 발견하고는 걱정이 되어 불안해했다. 그들은 나에게 와서 책 읽기가 너무 어렵다고 불평하였다. 그들은 성숙한 학생들이며 이미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요 저술가들의 저작에 대하여 겁을 먹었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심리학의 원조들의 이론을 체계화하고 요약한 교과서를 가지고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교과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상을 단순한 개요로 환원시켜 놓은 것이다. 복잡한 사상을 미끈하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영혼은 상실된다. 프로이트, 융, 에릭슨, 클라인과 그 밖의 심리학자들의 저술의 아름다움은 그 글의 복잡함 속에 있으며, 저작마다 나타나는 내면의 모순 속에 있으며, 교과서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나 원 저작에서는 도처에서 나타나는 개인적인 기벽과 선입견 속에 있다. 프로이트나 융보다 더 심한 기벽을 지닌 저술가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개인적인 스타일 속에 그들의 저작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한번은 심리학 석사 논문을 심사하는 자리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이 있다. 나는 제법 분량이 있는 연구 논문을 읽고는 ‘토론’에 할애된 문단은 95 페이지에 단 하나밖에 없음을 발견하였다. 질의 시간에 나는 그 여학생에게 연구 논문에서 토론 부분이 어째서 그렇게 짧으냐고 물었다. 나머지 심사 위원들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사색’은 권장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토론은 최소한 그 정도로 짧게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사색’이란 단어가 마치 외설처럼 울렸다. 분량이 많은 연구에 확고하게 근거를 두지 않은 어떤 것도 사색으로 간주되면 비교할 가치는 별로 없는 법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사색이란 단어가 좋은 단어이고, 영혼의 단어로서 거울을 의미하는 speculum에서 파생되었는데, 성찰과 관상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 학생은 분량이 많은 연구를 세심하게 수행하면서 주제의 영성을 충족시켰다고 할 수 있겠으나, 영혼을 위해서는 한 것이 별로 없었다. 그 여학생이 자기 연구 계획에서 밝힌 세부사항을 탄탄한 실력으로 열거하며 기술하였고 수많은 시간을 들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수행하였으나 자기 연구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하여 보다 심층적으로 성찰하지는 못하였다. 그 학생은 이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반면에 나는 현대 심리학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 학생은 통과되었고, 나는 낙제한 셈이 되었다.

지성은 종종 확고한 근거에 자리 잡고 있는 증거를 요청한다. 영혼의 생각은 다른 방식으로 근거를 찾는다. 이는 설득과 섬세한 분석과 내면의 논리와 우아함을 좋아한다. 영혼의 생각이 즐기는 토론 방식은 결코 완벽하지 않으나 좀 더 이야기도 하고 독서도 할 욕망을 품은 채 끝나는 방식을 즐긴다. 불확실성과 경이로움으로 만족한다. 특히 윤리적 문제에 있어서는,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꼼꼼히 살피고 문제를 제기하고 계속해서 성찰한다.

연금술사들은 그릇 밑바닥에 있는 축축하고 질퍽한 물질에 열을 가해야 증발과 승화와 응축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가르쳤다. 삶의 진한 요소는 상상력을 가지고 탐구하기 전에 먼저 증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식의 승화는 본능과 신체로부터 방어적으로 도망쳐서 합리성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다. 이는 묘하게 경험을 끌어올려서 사상과 이미지와 추억과 이론이 되게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긴 시간의 부화 과정을 거쳐서 그 모두가 생활 철학으로 응축되어서 각자에게 독특한 특징을 띄게 된다. 생활 철학은 그 자체를 위하여 사상을 추상적으로 집합시킨 것이 아니라 대화와 독서를 숙성시켜서 사상이 되게 하여 일상의 분석이나 결정과 결합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디어들은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서 우리가 일을 할 때나 삶의 결정들을 내릴 때 자신감을 갖게 해 준다. 그런 아이디어들이 더 풍성한 경이와 탐구를 위한 확고한 기반을 마련해 줌으로써 마침내 종교와 영성 수련을 거쳐서 인간의 경험을 흠뻑 적시는 형용키 어려운 미스터리로 발전시킨다.


늘 깨어 있으라.
기계적 삶에 저항하며
살기 위하여
수련하는 목표이자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정진, 또 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