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28:12-28 요8:32, 행17:16-34)
하태영 (목사/삼일교회)
구약의 욥기는 지혜문학 중에서도 지혜문학에 속한다. 세계 문학작품으로서도 동서 고금을 통해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다. 그만큼 욥이 다루는 주제는 진지하고 깊기 때문이다. 그 대략은 이렇다. 의롭게 살던 욥이 까닭 없이 비통한 일을 겪는 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욥의 친구들)은 제 마음대로 욥을 추궁하고, 욥의 신앙을 비판한다. 하지만 어느 것도 욥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지 못한다. 우리는 어떻게 보는가?
지금까지 욥에 대한 관점은 대체로 '하나님 신앙의 승리'라는 차원에서 보아왔 다. 이유 없이 당하는 비통한 슬픔과 의심 가운데서도 신앙인으로서 자아를 잃지 않고 승리했기 때문에 욥이야말로 신앙으로 승리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 혀 다른 시각에서 욥을 보기도 한다. 이를테면 인간에게 고난은 왜 닥치는 것이며, 고난이 닥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라는 관점에서 보는 게 아니라, 유대인들 의 우주적 도덕질서에 도전함으로써 저들의 지혜관을 무너뜨리려 했다고 보는 것이 다.
유대인들은 인간의 모든 고난을 인과응보라고 여겨왔다. 인간이 겪는 고난은 반 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잠언의 말씀들은 대체로 인과응보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욥기를 보면 그 같은 논리가 도전을 받고 있다. 욥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욥에게 어떤 도덕적인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창조행위 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는 관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 안에 있는 피조물이지,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 가운데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이 있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 다'는 뜻이다. 천지만물은 자기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 사람의 도덕 개념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늘이 이 사람에게는 비를 내리고, 저 사람 에게는 비를 안 내리고 하지 않는다. 번개가 치고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마음이 고 운 사람은 피해가고, 마음 나쁜 사람만 골라서 내리치지 않는다. 자연은 자연의 이 치에 따라 운행할 뿐이다. 여기서 천지란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적 개념이라기보다 는 세상의 이치를 이름일 것이다.
예수께서도 유사한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가리지 않고) 내리신다"(마5:45). 사람이 제 마음대로 선과 악을 구분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듯 사랑하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 어쨌든 사람은 자기 방식의 선과 악의 판단을 가지고 인간사를 재단하지 만 그것이 결코 하나님의 뜻일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욥은 인간이 참된 지혜를 찾을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한다. 대답은 '아니다' 이다. 참된 지혜는 인간이 보석처럼 캐낼 수 없는 것이며, 어느 공간에 담겨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어떤 보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욥에 의하면 사물의 본질에 관한 가장 심오한 지각은 여전히 인간의 사유와 사색과 과학적 성과물 '밖에' 있다. 욥은 말한다. 인간이 그 어디에서도 지혜를 구할 수 없다면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 신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것이 참된 지혜이다 라고. 인 간은 어딘가 감춰진 지혜를 '찾기' 위해 열심히 궁구한다. 하지만 욥은 깨닫는다. 지혜가 어딘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지혜라는 것을.
요한은 보다 직설적으로 말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요한이 말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이 요한 이 말하는 진리야말로 욥이 말하는 진리와 통할 것이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진리라고 하였다.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곧 진리라고 말한다. 요한이 말하는 진리는 인간이 탐구해서 얻은 진리가 아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서 당신을 계시하여 주신 진리이다. 인간이 노력해서 얻은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진리이다.
21세기 들어온 인간의 가장 큰 업적 중에 하나는 아마도 생명공학의 발달일 것 이다. 유전자 지도는 이전에 상상치 못한 새로운 가능성 그 자체이다. 이제 난치병 을 치료할 길이 열린다. 무두셀라처럼 오래 살 길이 열린다. 양질의 식량을 무한정 생산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마음만 먹으면 유전자를 조작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첨단 과학의 승리요, 인간의 승리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인간은 행복해질 것인가? 인간 세상은 슬픔도 없고, 눈물도 없고, 미움도 없고, 갈등도 없고, 배신도 없고, 전쟁도 없고, 굶주림도 없고, 질병도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한 것은 인간의 삶의 환경이 바뀐 것이 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인간은 변함없이 죄 아래 있고, 고난 가운데 있고, 연약함 가운데 있다. 이전보다 더 큰 고통과 예기치 못한 질병과 굶주림과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자기를 구원하지 못한다. 인간 에게 필요한 궁극적인 진리는 여전히 인간 '밖에' 있다. 이처럼 과학이 눈부시게 발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다. 인간이 과학적 진 리(사실)를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진리 밖에서 방황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은 풍부한데 지혜는 메말라 있다. 물질은 풍족한데 정신은 공허하다. 오늘날 우리들은 과학적 진실규명을 진리로 착각하고 더 이상 인 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탐구하고자 하는 진지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헬라 사람들이 그랬다. 철학의 도시 아테네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신들을 많 이 섬기고 있었음에도 그들에게서 진실성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알 수 없 는 신"까지 섬기고 있었음에도 그들의 영혼은 공허하기만 하다. 사도 바울은 그들 에게서 철학적 사변론자들의 공허와 위선을 보게 된다. 그들은 진리를 도구적으로 활용할 생각만 했지 어느 누구도 자기를 깨뜨리고 진리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이 가 없다. 이를테면 인류 초유의 과학적 진실이라고 하는 유전자지도를 손에 쥐고, 큰 일을 해냈다고 자랑하며,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더 많은 돈을 벌까 하고 돈독에 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지식 정보 시대의 혁명적인 변화 가운데 서 지식 습득에 대한 욕구는 강렬하면서도 자기를 파열시키는 진리에 대한 욕구는 녹슬어가고 있다. 헬라 사람들처럼 새로운 지식에 대한 열망을 강한데, 존재를 존재 이게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무관심이다. 그리하여 겉은 풍요한데 속은 비어 있다. 육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는 러브호텔처럼 즐비한데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고뇌는 없다. 진리가 없는 것이다.
성령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성령 안에서 자신이 부서질 생각은 않고, 성령을 욕구 충족의 방편으로 이용할 생각만 한다. 그리하여 정신적으로 보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이나 성령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에 어떤 차이가 있는 지 발견하지 못한다. 어쩌면 윤리적으로 보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보다 성령에 취해 비틀거리는 게 더 해로울지도 모른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은 이미 심 판 받은 사람이지만, 성령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은 '자기 의'에 빠지기 쉬운 사람 이라서 그렇다. 우리는 진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내가 깨지고, 부서지 고, 녹아져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25 물 같은 성령(눅12:35-48)
26 고난으로 드리는 봉사(마20:17-28, 엡4:11-12)
27 제멋대로 폭발하는 생명에너지(골2:1-3)
28 부활체험-<너> 안에서 죽은 <나>의 소생(눅24:13-35, 요15:6-11)
29 날마다 영으로 만나다(행13:26-33, 요21:1-14)
30 하나님의 영이 떠나지 않게 하라(사32:9-18, 요16:16-24)
31 진리 안으로 들어가라(욥28:12-28 요8:32, 행17:16-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