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띄우는 말씀 (2002. 9)

실뿌리의 비유를 살립시다.

김영운 목사
(발행인 / 공동체성서연구원장)


       

십 년 전쯤에 다솜학교에서 환경캠프를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초중등 학생들이 중심이 된 그 캠프를 마감하는 순서에 가서 제일 나이 어린 학생 정호가 나와서 목청껏 외치고 있습니다. “샛강을 살립시다.” 누가 말한 것보다 누가 외친 것보다 그 말이 지닌 뜻이 그리고 그 값이 우리의 가슴으로 밀려왔습니다. 십 년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 장면만 떠올리면 가슴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며칠 전 일입니다. 외손녀 가용이의 손을 잡고 쇼핑 센터에 갔는데 갑자기 ‘대~한민국’ 하는 것입니다. 뭘 보고 그러나 하고 살피자니 진열장 안에 있는 물건이 붉은 색 천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고 아마도 붉은 색 티셔츠들이 강렬하게 연상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작은 교회의 귀여운 꾸러기 세중이가 ‘오! 필승코리아’를 외쳤습니다. 함께 외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월드컵이 끝난 지 꽤 됐다고 행각해서인지 목소리가 전 만은 못해, 그다지 크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좁은 골목길을 나오면서 볼 수 밖에 없는 우리 동네, 서울 마포구 성산1동 골목길의 도로 표지판은 무더위 때문에 느끼는 불쾌감을 웃돌게 합니다. 이유인즉, 얼마 전에 미로처럼 좁은 골목 구비마다 모퉁이마다 꽤나 돈을 많이 들였겠구나 싶게 일방통행 표지판을 세우고 길바닥에도 하얀 페인트로 그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지키지들을 않는 것입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요즘 와서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하나 둘 씩 훼손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전주에는 표지판이 반대 방향으로 돌려 세워졌더니, 어떤 것은 아예 흰 페인트로 뭉개져 있다시피 덧칠을 해놓았습니다.

최근에는 텔레비전 뉴스에 종종 보도가 되더니, 급기야 일간 신문에서도 집중 보도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공권력의 위기’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최일선에 서있는 경찰이 웬만한 일은 대부분이 귀찮아서라도 참는다는 통계 숫자를 어떻게 삭여야 할지 모를 일이지만, 공권력의 위기는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겹쳐지면서 떠오르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가 ‘실뿌리’입니다. 실개천이 살아야 강물이 살아납니다. ‘대~한민국’ ‘오! 필승코리아’의 함성과 함께 월드컵 4강을 이룬 저력을 유지하는 것도 우리의 의식의 실뿌리가 튼실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포스트 월드컵 대책을 잘 세우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월드컵 4강을 벤치마킹하자는 것은 더욱 더 매력있는 호소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자칫하면 공허해질 수 밖에 없는 까닭은 우리에게 저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남만 못해서도 아닙니다. 한다고 마음만 먹으면 해내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큰 나무를 살리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가지치기를 공들여 하면서 전정을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뿌리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실뿌리가 죽으면 큰 병이 듭니다. 큰 나무에 필요한 수분과 자양분은 대부분 실뿌리를 거쳐서 흡수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공권력이 민심을 압도하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슬픈 일인가를 뼈아프게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공권력의 날이 안 선다’고 언론이 보도할 정도로 공권력이 도전받고 위기에 빠집니다. 마침내 도로표지판을 무시하다 못해 훼손하는 일이 버젓이 자행됩니다. 게다가 더욱 한심스럽게 그런 일들을 무신경하게 외면하는 당국자들이 있는 현실은 또 다른 슬픔과 괴롬을 안겨 주기에 충분합니다.

‘샛강을 살리자’는 목소리도 ‘대~한민국’을 ‘오! 필승코리아’를 외치는 어린이들의 순진무구한 목소리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는 기쁨의 함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 모두는 각자가 각 분야에서 월드컵 4강을 벤치마킹 해야 합니다. 정치인과 지도층 인사로부터 공권력을 담당하는 이들과 시민들도 모두가 말을 정갈하게 하는 것은 물론 한 말은 꼭 지켜야 합니다. 규칙과 질서는 작은 것일수록 더 잘 지켜야 합니다. 실뿌리를 살리는 심정으로 모두가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실뿌리의 비유’를 온 몸으로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