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띄우는 말씀 (2002. 11)

‘성실성과 치열성이 요구됩니다’

김영운 목사
(발행인 / 공동체성서연구원장)


       

중요한 고비마다 떠오르는 주제가 있습니다. 다름아닌 ‘위기 관리 능력’입니다. 우리는 위기에 강하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런 면도 있으나,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밖으로부터 오는 위험에 대처하는 데는 강한 반면에, 내부적인 어려움에 봉착할 때는 약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IMF 위기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권이 힘을 합하고, 정부와 국민 모두가 구조조정과 ‘금모으기’와 근검절약 등을 통하여 빠른 시간 안에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신용 등급이 상향조정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에는 또 다른 면의 위기 관리 능력을 내보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수없이 많은 외침 을 당하면서도 살아남았고, 국난을 극복하는 데 민족의 강인함을 보였습니다. 가까이는 6?25 전쟁을 겪으면서 그렇게도 빨리 전쟁의 아픔과 상흔을 이겨내고 복구함으로써 용기와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이민 역사 백년을 기념하는 재미 한국인들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겨레의 유민들과 이민들이 드러낸 끈기와 용기는 그야말로 위기 극복의 모범으로 어느 곳에서나 칭찬을 듣습니다.

온 나라가 수출입국의 깃발 아래 경제 발전과 수출을 증진시키려 애쓰던 지난 두 세대에 걸쳐서 이 땅의 젊은이들이 광부로, 간호사로, 노동자로, 무역상으로 각양 각색의 일을 통하여 열정과 능력을 세계 속에 빛낸 것은 위기 관리 능력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생존을 위하여 드러내는 우리의 위기 관리 능력은 나라 안팎에서 놀라울 만큼 크게 나타났고, 또 세계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내부적 요인에 따른 어려움과 위기에는 동형 반복적으로 약점을 드러내고 만다는 점입니다. 4?19 직후의 민주화 과정에서 그랬고, 80년 ‘서울의 봄’을 지나는 과정에서 그랬습니다. 군부 통치를 접고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선 과정과 역사상 초유의 정권 교체를 통하여 소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상황에서도 그렇습니다.

결국 밖으로부터 오는 위험에는 자기보존의 본능이 강하게 나타나면 생존전략을 놀랄 정도로 거의 본능적으로 드러내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대결 의식과 경쟁심만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눈높이는 낮아지고, 의식은 좁아지고, 공동체의식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이와 같은 증상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상황이 바로 대선 정국에 다름 아닙니다. 대선 정국은 분명히 위기입니다. 위험과 기회가 맞붙어 있는 상황입니다. 모든 유권자가 바르게 깨어있는 의식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세계 속에 나라를 빛낼 바른 지도자를 뽑는 데에 그야말로 ‘위기의식’을 가지고 나선다면, 분명히 큰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대착오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 여러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경험했던 부끄러운 일을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무서운 위험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 스스로가 목청 높여 외치면서도 극복하지 못하는 지역 감정과 파당심, 불공정한 극도의 경쟁심과 집단 이기주의, 그리고 후보자들과 또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하는 참모들과 조력자들의 허영심, 그리고 자신들도 모르게 이런 사람들의 편가르기에 유혹 받는 유권자들의 무신경, 이 모든 것이 되풀이된다면, 그것은 정말 다음 세대에게는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요, 당대에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번 대선 정국의 위기를 그 이전의 어떤 위기를 극복했을 때보다도 더 큰 분별력과 용기로써 지혜롭게 이겨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모두가 뜻을 모아야 할 일이겠으나, 특히 아주 짧은 기간 안에 후보자들을 바르게 검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론의 성실성과 치열성이 요구됩니다. 누가 법을 지키며,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의미의 정치, 희망의 정치를 펼칠 능력과 자질과 도덕성 그리고 비전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지니고 있는가를 분별하도록 언론이 앞장서서 그리고 온 국민이 결단하고 나서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