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빈선생
말씀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함께 나눈다는 건 마치 강가의 돌에 이끼가 끼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10년전 교회를 다닐것인지 말것인지 고민할 때 작은교회에서 처음
접한 공동체성서연구. 그 뒤로 지금까지 교인들과는 주일 오후, 수요일 저녁, 속회, 5년전
부터는 목회자들과 함께 화요일 오후, 일주일에 평균 3회이상 말씀의 나눔을 가졌습니다.
삶속에서 소화되기도 전에 또다른 말씀에 밀려 스쳐지나 간 것 같았는데, 돌같은 내 마음의
한구석에도 어느덧 말씀의 이끼가 끼어있음을 보고 놀라곤 합니다.
말씀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낀 말씀의 이끼의 첫째는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 이상하게도 말씀의 나눔을 경험하면서 서로 다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경험을 많이 가졌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26살의 나이로 간 군대 생활도 그랬습니다. 상급자들이 대부분 5-6살 차이가 났고, 중대장도 나이가 같았는데, 처음엔 그것을 잘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5년전에 한 결혼생활도 그랬습니다. 소아마비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10년이나 사귄 두 사람 사이를 못미더워 하시는 어른들과의 다름, 결혼 후 오랜동안 사귀었으면서 불구하고 힘겨워 했던 서로의 다름, 참 힘들었습니다. 지금의 제 생활도 그렇습니다. 저의 집은 일곱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저와 아내, 그리고 아들, 장모님, 자궁암 수술 후유증으로 거동하기 힘든 처이모, 처남댁과 초등학생인 처조카. 저희 일곱식구는 한 식구처럼 서로 도우며 신비한 체험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낮갈임을 많이 하던 제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말씀을 나누며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며 낀 이끼에서 나온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둘째는 '들음'인 것 같습니다. 말씀의 나눔은 상대방에게 말하기 이전에 상대방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말씀의 나눔을 할 때 매번 먼저 2-3분의 명상을 합니다. 명상은 다르게 설명하기 이전에 귀기울여 듣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말할 기회, 말할 자리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던 저에게 이 듣는 연습은 삶을 보다 풍성하게 하였습니다. 많은 부분 문자로 의사소통을 하는 시대에 살면서 잃은 것이 있다면 바로 듣는 능력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제가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일할 때 대화모임을 하다 보면 대화가 아니라 독백을 하고 있는 것을 느낄때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봅니다. 말씀의 나눔은 '듣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말씀의 나눔이 잘 안될 때 저는 점검하곤 합니다. 잘 듣고 있는가?
셋째는 '되새김질'인 것 같습니다. 말씀의 나눔을 처음 접했을 때의 신선함은 컸습니다. 성경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만 받아 오다가 성서를 자기 삶의 자리에서 해석해 보고, 그것을 서로 나누고, 서로 감격하고... 그런데 그것도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타성에 젖기도 하고, 말씀의 나눔이 걷돌때가 많았습니다. 많은 말을 나누었는데도 끝나고 나면 웬지 허전함이 자리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느날 허전함의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의 되새김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말씀을 나눔도 중요하지만 그 뒤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되새김질 없이는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타성에 젖기 쉽고, 안주하고 싶은 일상을 극복하는 길이 바로 되새김질에 있다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말씀과 삶이 만나지는 그날을 그리워 하며 되새김질을 계속할 뿐입니다.
넷째는 '다양함'인 것 같습니다. 성서를 읽고 서로의 느낌을 이야기 할 때면 똑같은 본문을 읽고 어쩌면 저렇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놀래곤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서로의 다른 느낌이 모자이크 되어서 말씀이 되살아날 때입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하나라는 느낌이 밀려 올 때의 벅참은 경험한 사람이 아니고선 모를것입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서로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어울려 말씀을 나누면서 얻는 풍성함을 보다 더 경험하고 싶습니다.
전 지금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와 공동체성서연구원이 함께 주최하는 평화만들기 바자의 실무를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바자를 준비하면서 평화만들기를 다시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평화만들기가 바로 말씀의 나눔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들음에서, 되새김질에서,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말입니다.
너무 장황해진 것 같습니다. 이 일이 끝나면, 저는 자신도 모르게 낄 말씀의 이끼에 의지하여, 새로운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아내와 함께 장애아동들의 아픔을 나누는 일이 그것입니다. 그 준비를 하느라고 또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요. 하지만 말씀의 나눔을 그치지않는 한 잘 견딜수 있을 것입니다. 또다른 10년 동안 제 마음에 새롭게 낄 말씀의 이끼를 그려보며 빙긋이 웃어봅니다.
* 문홍빈선생은 한양대와 동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크리스챤아카데미 공동체성서연구원에서 간사로, 인천에서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길벗봉사회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에서 평화바자 실무를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