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붐볐다. 해수욕장에서 동포역까지는 12킬로미터, 길가에는 무궁화 나무가 키넘게 자라
있었다. 그러나 오가는 버스며 택시들이 일으키는 흙먼지로 나뭇잎들은 숨을 제대로 못 쉴 지경
이었다. 길가에 무논에 웃자란 볏이파리들도 마찬가지고, 높은 지대의 층을 이룬 밭에 서 있는 옥
수수 이파리나 밭둑에 서있는 소나무들도 흙먼지를 켜켜이 뒤집어쓰고 있었다. 버스는 그 위에
또 한층 흙먼지를 끼얹으며 달렸다.
"아이고매, 애떨어지겄네!"
인근 시골에서, 서포리 바닷가 모래찜질을 하거나 소금물을 찍어 바르면 약이 된다고 찾아온 할머니들이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데 나는 아까부터 배가 아파오기 시작 했다. 버스를 타기 전부터 사실은 아랫배가 좀 이상했었다. 그러나 나는 형이 맛보라며 조금 따라 준, 그 말오줌 맛의 술을 한 모금 마신 탓이려니 했다. 그런데 이제 온 배가 뒤틀리며 꾸르륵, 소 리를 내고 나면 금방이라도 설사가 나올 것 같아 몸을 뒤틀고 있었다. 거기에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등줄기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먹은 음식이 잘못된 모양이었다. 음식이 상했거나, 상하지 않더라도 기름기 많은 것을 먹고 바닷물 속에 그렇게 오래 앉아 있었으니 배탈이 날 수밖에.
버스가 동포역 광장에 멎었다. 승객들은 천천히 내렸다. 나는 기다릴 수 없어 사람들 틈을 비집
고 급히 내렸다. 그리고 화장실 쪽으로 달려갔다. 화장실은 모두 일곱 칸이었다. 판자로 짠 출입
문에 페인트로 '숙녀용'이라고 쓴 것이 네 칸, '신사용'이라고 쓴 것이 세 칸이었다. 나는 신사용
변소 문을 두들겼다. 안에서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숙녀용을 두들
겼다. 마찬가지였다. 맨 마지막 문을 두들겼을 때, 문이 덜컥 열리며 한 아주머니가 변소에서 나
왔다. 나는 쏜살같이 들어가 허리띠를 풀었다. 그런데 그때 허리띠에 찼던 손목시계가 밑으로 철
썩 떨어졌다. 변소는 깊었다. 그 깊은 변소는 넓기까지 했다. 그 넓은 바다 위에 섬이 떠있었다.
그 섬은 황금빛이었다. 밑변이 넓은 삼각형 섬의 꼭대기에 시계는 반쯤 쳐 박혀 있었다. 금세 나
올 것 같던 설사는 어디로 들어갔는지,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누군가가 밖에서 변소
문을 두들겼다. 나는 숨을 죽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바지춤을 추켜 올리고 허리띠를
매었다. 허리띠는 허전했다. 손목도 허전했다. 거기 어딘가에 매달려 있어야 할 시계는 저 아래
오물 속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계는 경호형이 군대생활 삼 년 동안 졸병 월급으로 모아 사
다준 경호의 입학 기념 선물이었다. 경호는 시계를 주며 말했다.
"물 들어가면 안돼! 그게 어떤 시곈 줄 알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계는 지금 물 속도 아닌 똥통 속에 빠져 있었다. 나 는 울고 싶었다. 옆의 변소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오줌이 쏟아졌다. 누군가의 오줌은 밑으로 쏟아져 시계를 가라앉힐 것만 같았다.
나는 급히 변소에서 나왔다. 우선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화장 실 주변과 근처의 선로반까지 돌아보았다. 그러나 너무도 청소가 잘 되어 있었다. 나는 울타리로 심은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측백나무와 무궁화였다. 그러나 그것들도 전지가 잘 되어 있었다 일 미터가 넘는 긴 가지는 찾을 수도 없었지만 설혹 그런 나뭇가지가 있다해도 변소를 드나드는 사 람들 눈앞에서 교복을 차려 입은 중학생이 생나무를 잘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설사 긴 나뭇가지가 구해진다 해도 끝이 낚시처럼 구부러지지 않는 이상 어찌 시계를 건져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제사 철사 생각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