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강정규 연재동화 (2000. 11)

아버지의 향기

"이 노무 자석, 내 손목아지를 뿌러뜨리던가 발목아지를 분질러야지. 잉규야!"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시더니 지게 작대기를 찾아 들었다.
"애비야, 내 얘기 안즉 안 끝났다. 인규는 시방 집이두 없구, 그렇게 펄펄 뛴다고 일이 풀 리는 게 아니니라."
"그럼유, 그럼 절더러 워떻게 허라구유?"
"잃어버린 시계를 찾어야지, 그려서 누명을 벳겨줘야 혀. 이냥 놔두면 울애기 평생두고 기펴고 못산다. 병이 되야....."
"이 사람은 워디 갔대유? 여편네가 집 구석에 앉아서 애 하나 다스리지 못허구. 그날 내 가 뭐랬슈? 아무래두 맘이 내키지 않는 것을, 뭐? 서울 학생들 헌티 배울 게 있다구? 잘 배웠다. 애새끼 도둑놈 맹글고......... 이 사람 워디 갔슈, 예?!"
아버지는 펄 펄 뛰고 계셨다.
"에미두 집에 읎다. 앨 찾으러 나갔어. 메칠동안 받도 안먹구. 잠두 못자구 끙끙 앓다가 , 좀 전까지 방안에 있었는디 워디 갔는지 읎어졌어."
"아이고 이런! 이럴 때 지가 워치게 혀야 쓴대유. 미치겄네유. 어머님!"
아버지가 마루장을 주먹으로 치셨다.
"그려두 워치게 혀야지, 그걸 애비헌티 내가 묻고 있어 시방"
"동포역 변소간을 치워야겄구먼그류, 그려야 시계를 찾쥬! 절더러 평생 똥이나 푸라는 거 그만 그류!"
아버지가 벌떡 일어서더니 대문 밖으로 횡하니 내달았다. 어머니는 굴뚝 뒤에서 나를 안 은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13>

그날 밤 아버지는 동네 사람에게 업혀 들어 왔다. 한밤중에 침장이 할아버지께서 다녀가 셨다. 토사곽란이라고 했다. 며칠을 그렇게 앓아 누우셨다.
"애비야!"
어느날 할머니가 다시 아버지를 불러 앉히셨다.
"예!"
아버지는 할머님 앞에 무릎을 끓고 앉으셨다. 얼굴에 핏기라곤 없었다.
"아무리 화가 나두 그렇지, 술도 음식인디 그렇게 퍼마셔서 어쩌겄냐? 몸베리구, 집식구 애태우구, 에미 가슴이다 못박구..... 그려서 해결된 일이 무에 하나라두 있느냐?"
"어머님, 잘못혔습니다. 용서해 주셔유. 잘못혔슈......"
아버지가 윗몸을 조아렸다.
"어머님, 저두 잘못혔어유, 무조건 용서해 주셔유."
어머니도 아버지 곁에 나란히 무릎을 끓었다.
"됐다. 그런디, 그날 말이다. 그날 애비가 술 취해 들어와서 내게 한 말 있지야?"
할머니가 좀 누그러진 말투로 다시 물으셨다.
"어머님, 이 사람 말대루 용서허세유. 지가 하두 속이 터져서 술먹구 들어와 어머님께 포악 을 혔내빈디, 뭐랬는지 생각이 안나느만유."
"아녀. 그게 아니구, 술먹기 전이두 한마디 허구 나갔느니라, 뭐랬는고 허니, '내가 그 큰 변 소 똥을 워떻게 다 치우느냐구' 그래 잖냐?"
"그랬었내뷰. 증말이지 그 큰 변소 똥을 워떻게 다 치워유. 그려서, 화통이 터져서 어머님께 큰 소릴 질렀던개뷰."
"그려, 그 말이다. 애비가 그렇게 말하구는 몸져 누었는디, 내 그동안 여러모로 생각혀봤지 만 해결책은 그 방법밲이 없구먼. 에미랑 애비랑 다 나서구, 내라도 나서서 똥을 다 퍼내야 써. 그려서 그 시계를 찾아내야 울애기가 살어. 그렇지 않음감?"
할머니의 얼굴이 이제야 편안해 지셨다. 그 말씀을 별러오신 모양이었다.
"어머님, 그렇지만 그 큰 변소에 가득찬 똥을 워떻게 다퍼낸담요."
"그런 말은 허덜 말어라. 왜 못퍼? 새끼 장래 생각을 혀야지. 누명을 벳겨 줘야 써. 애비 노 릇허기가 그리 쉽지 않은 법. 딱 결심 한 번 굳히거라. 내 할 말 다 혔다. 나가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