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2000. 10)
아버지의 향기
마을에서는 경호가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수근거렸다. 그들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고 나
는 갈 수 없었다. 내가 있는 곳에 그들이 오면 내가 피하고, 그들이 있는 곳에 내가 가면 그
들이 피했다. 방앗간 집에도 갈 수가 없고, 이젠 우리 집도 있을 곳이 못되었다. 나는 저수
지에 빠져 죽던지 도망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국 집을 나왔다. 변소에 가는 척 집
을 빠져 나온 나는 무작정 걸었다.
<12>
"애비야!"할머니가 입을 떼셨다.
"예, 말씀허세유."
"방앗간 집에 서울서 학상들이 놀러 왔다지?"
"예"
"그 학상들 중에 하나가 시계를 잃어버렸다더라."
"그러유? 간수를 잘 못혔구먼그류. 그런디유?"
"그 시계를 우리 잉규가 가져갔다는구나 글씨......"
"누가 그려유? 봤대유?
"그냥 그런 소문이 돈다더라....... ."
"누가 그런대유? 이 빌어먹을! 내가 그놈 눈을 빼던지......."
아버지가 자리를 차고 일어 나셨다.
"애비야, 그게 아니라, 내 얘기 아즉 안끝났다. 잉규가 그런 소리 듣게 됐느니라......."
할머니는 이야기를 거꾸로 하고 계셨다.
"어머님께서 애를 싸고 도니께 버릇 없고 겁이 없지요. 왜 남의 시계를 차고 가요, 가
길......."
"차고 갔어두 잘 차고 갔다가 돌아와서 돌려 줬으면 되지, 그런디 그렇게 하질 못혓다는구
나......."
"그럼 웠다 뒀대유? 팔아 먹기라도 혔대유?"
"팔아 먹기는, 팔아 먹기라도 혔으면사 차라리 났지. 변소깐이다 빠쳤다는구나. 동포역 뒷
간이다 빠쳤대야........ ."
"그려셔유? 그려서 워떻게 혔대유?"
"뭘 워떻게 혀, 그게 끝이지."
"경호네서 잠자코 있어유?"
"잠자코 있기는......... 에미 시켜서 쌀 팔아 대봉쳐 줬지. 동포장 가서, 경호 데불고 가서 똑
같은 시계 사줬느니라."
"잘들 허셨슈. 잘들 허유, 그럼 끝났네유. 그럼 됐지 또 무슨 일이 남었남유?"
"방앗간 집에 서울서 학상들이 놀러 왔다지?"
"예!"
"그 학상들 중에 하나가 시계를 잃어버렸다는구나."
"아까 허신 말씀이잖유?"
"혔지, 혔는디 그게 그렇게 끝날 일이 아니잖남?"
"그럼 그 시계를 우리 잉규가 훔쳤다구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