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2001. 1)
아버지의 향기
<15>
"그러구 저러구간에 그 많은 똥을 다 어디다 퍼낸다냐?"
아버지가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시켜주며 혼잣말을 하셨다.
" . . . . . ."
나는 잠자코 자장면만 먹었다.
"주인 양반, 댁네는 변소를 워떻게 치슈?"
아버지가 갑자기 중국집 주인에게 물었다.
"옛날엔 그렇지 옛날엔. 우리 집 파밭에다 거름으로 썼지요. 이젠 파밭두 없어지구 군청에서 퍼
갑디다. 해수욕장이 생기기 전에는 거름을 돈주고 사다 썼는데, 이젠 돈주면서 퍼가게 허쥬. 그런
데 그건 왜 물우슈, 손님?"
"그 파밭이라두 있으믄 좋은디, 파밭이 있다면 지금도 똥을 퍼다 거기 붜두 되겄쥬?"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그렇지요, 파밭이 있으면 거름이 필요허지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슈, 손님?"
"거름이 필요허다. . . . . 그런디 그 파밭이 왜 읎어졌쥬?"
"팔았지요. 농사를 짓는 것보다 나으니까 팔고 파는 사다 쓰지요. 그리구 요새는 파대신 양파를
쓰거든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슈, 손님?"
"농사를 짓느니보담 사쓰는게 낫다. . . . . 그러면그 파밭은 어디 갔나요?"
"허허, 이 손님 참! 밭이 어딜까요, 가긴 땅이 어딜 걸어 다녀요? 농업학교 뒤쪽에 그냥 있지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슈, 손님?"
"농업핵교요? 농업핵교라, 농업학교면 농사를 짓겄쥬? 그렇구먼, 얘, 잉규야! 가자!"
아버지는 어리벙벙해 있는 중국집 주인에게는 한 마디 대꾸도 없이 내 손을 잡더니 문밖으로 뛰
어 나왔다.
"여보시오, 손님! 음식값!"
"예, 여기 있수다!"
아버지는 지갑을 뒤져 음식값을 쳐주고는 내 손을 잡은 채 뛰다시피 걸음을 빨리했다.
" . . . . 내가 왜 그생각을 못했던고. 늬 댕기는 학교가 농업학교였구나. 명호네, 그려, 명철이
두 그 핵교 댕겼지?"
"에, 동포농업학교유. 우리 학교는 동포중학교구유. 병설이거든유!"
"알었다. 어서 가자."
<16>
방학중인 학교는 조용했다. 아버지는 교무실 문을 두드렸다.
"예, 어서 오십시오."
당직 선생님이 겉옷을 걸치시며 일어났다. 낮잠을 주무셨던 모양이다. 입가에 침자국이 보였다.
"실례를 허겄습니다."
아버지가 교무실 안으로 들어서며 말씀하셨다. 나는 모자를 벗어들고 아버지 등뒤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처음보는 선생님이셨다. 그곳은 고등학교 교무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