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2001. 9)
별이 된 다람쥐(2)
색시들을 데려간 욕심장이 다람쥐는, 이튿날부터 마구 일을 시키기 시작했단다. 굴 파기 작업과 잘살기 운동이 벌어진 거지.
커다란 바위 밑에 여러 개의 창고를 만들고, 강 건너 밤나무 숲을 들쑤셔 도토리와 상수리를 물어 날랐지.
창고마다 가득가득 식량이 들어차도, 신랑의 욕심은 끝이 없었단다.
밤나무골엔 먹을 것이 지천이어서 그렇게 극성을 부리지 않아도 다음해 식량철까지 걱정이 없었단다. 그리고 누구 하나 간섭하는 이도 없으니 천지가 모두 자기 것이나 마찬가진데, 모두 다 긁어 모아다가 창고 속에 집어 넣고 문을 잠가야만 직성이 풀렸단다.
예쁜 새색시들은 손발이 터지고, 입술이 갈라지고, 가눌 수 없을 만큼 몸도 지쳤단다.
단장하고 노래하며 춤추던 일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서로 경쟁을 시켜 가며 몰아치기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량을 채우려고 정신이 없었단다.
눈 먼 언니도 어쩔 수 없었지. 앞을 못 보니 고생이 더욱 심했단다. 겨우 찾아서 물고 온 것이 썩은 상수리나 벌레먹은 도토리여서 핀잔을 먹기가 일쑤였단다.
네가 눈깔이 멀어 그런 걸 물어 왔으니 따로 모아 두었다가 너 혼자 처먹어라.
인정머리 없는 신랑이 소리쳤단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아무 소리도 못 했지.
가을도 어느 사이 지나갔는지, 어떻게 밤이 가고 날이 새는지, 어느새 하루 해가 저물었는지, 정신없이 시달리다 아무 구석에나 쓰러져 잠이 들었다가는, 신랑의 불호령에 다시 일어나, 외나무 다리를 건너갔단다.
겨울이 온다, 추위가 닥쳐와.
어서 더 물어다가 창고를 채우자.
신랑은 계속해서 다그쳤단다. 그러나 막상 겨울이 오니 신랑은 딴 궁리를 하기 시작했지.
어떻게 하면 저것들을 내어쫓을까? 겨우내 처 먹으면 식량이 얼마나 축날까?
이런 눈치를 알아차린 색시들은, 이미 속은 줄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지만 눈앞이 캄캄했단다.
신랑은 이제 매일같이 생트집을 잡아 색시들을 괴롭혔단다. 걸핏하면 한 줄로 앉혀 놓고 두들겨 팼지.
어느 날 깊은 밤에 다람쥐들은 한 마리 두 마리씩 토굴을 빠져나왔지.
큰언니는 어떻게 해, 앞을 못 보니.
막내 다람쥐가 뒤를 돌아다보며 말했지.
죽이기야 하겠니?
어쩔 수 없지.
둘째 언니가 울면서 대답했단다.
토굴을 빠져나온 다람쥐들은 외나무 다리를 건너갔단다.
강 건너 밤나무 숲 속엔 가랑잎만 날리고, 북풍은 몰아치는데 갈 곳이 없었단다.
애를 태우다가, 속을 썩이다가, 옛날 집을 찾아갔지만 늙은 부모님은 간 곳이 없고, 창고는 텅텅 비어 있었단다.
찬 바람이 도는 토굴 속, 옛날 집에 들어앉아 몇 날 며칠을 두고 밤을 지새우며 울던 다람쥐들은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단다.
아무런 의논도 없이 둘째 언니가 옛집을 빠져나오고, 그 뒤를 동생들이 쫓아나왔지.
아무런 의논도 없이 둘째 언니는 낭떠러지로 갔고, 그 뒤를 동생들은 쫓아갔단다.
눈 아래로 흐르는 강물, 낭떠러지 위에 나란히 올라선 다람쥐들은 강 건너 언덕을 바라보았지.
어디선가 이름 모를 산새가 울고,
차가운 달빛 속에 다람쥐들은,
한 마리씩 차례로 몸을 던졌지.
한 마리가 첨벙, 물에 빠지면
물방울이 튀어올라 달빛에 반짝,
그때마다 하늘에는 별이 한 개씩,
그 밤부터 강추위가 몰아닥치고,
강물은 꽁꽁 얼어 붙었고,
그 위에 눈이 내려 쌓였느니라.
간밤에 동생들이 떠난 날부터 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느니라.
그렇지만 남편은 말 한마디 없었느니라.
부모님들은 대체 어찌 사실까?
동생들은 어디 가서 얼어 죽지나 않았는지.
언니는 생각할수록 눈물만 나왔구나.
그러나 욕심장이 남편은 눈먼 아내에게 썩고 병든 상수리나 던져 줄 뿐, 혼자서만 알밤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그 겨울을 지냈단다.
배고프면, 처먹겠지, 지랄하고 자빠졌네.
겨우내 남편은 푸등푸등 살이 찌고, 겨우내 눈먼 아내는 야위어만 갔구나.
언덕 위 조그만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 오들오들 떨며 울어 쌓던 이름 모를 멧새 한 마리마저 훈풍 감도는 창공으로 날아오르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어느 꼴짜기에선가 실개울이 흐르며 소근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
때 이른 봄비가 한 차례 내려 땅 속 깊이 스며들고, 밝고 따스한 햇볕이 내려쪼이며 꽁꽁 얼어 붙었던 흙덩이를 풀어 놓았지.
풀뿌리도 이제 수런거리며 새싹을 밀어올릴 움직임을 시작했는데, 아직도 땅굴 속 욕심장이 다람쥐네 집안은 어둡기만 했지.
거기에다 아주 신경질 나는 일이 벌어진 거야. 글쎄 눈먼 병신 마누라가, 기다린 것도 아닌데, 새봄과 더불어 달덩이 같은 아들을 하나 낳아 놓더니만, 산후에 기력을 되찾지 못하고 비실대다가 그만 죽어 버린 거야.
우리 애기가 어떻게 생겼나,
한 번만 보았으면 한이 없겠어.
아내는 며칠을 두고두고 흰자위뿐인 두 눈을 껌벅거리다가 그만 아주 두 눈을 감아 버리고 만 거야.
눈먼 병신이,
육갑을 떠네.
남편은 코방귀를 뀌며 돌아앉았지.
병신 병신 하시지만,
눈 뜨고 앞 못 보는 분
당신이어요.
아내는 뜻 모를 마지막 말을 남기고, 다시 못 올 저 세상으로 가 버린 거야.
병신 지랄 작작하고,
진작시 뒈질 일이지.
남편은 아내를 져다 묻었지.
갓난 아기 다람쥐가 울고 있었지.
숨이 넘어갈 듯 울고 있었지.
아빠 다람쥐가 아기 다람쥐를 품에 안았지. 제 어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아기 다람쥐는, 울음을 그치고 아빠의 가슴을 파고들었어.(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