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2001. 10)
별이 된 다람쥐(3)
아무리 더듬어 봐야 물리는 것이 있어야지. 배가 고파 아기 다람쥐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어.
아빠 다람쥐는 생각다 못해 알밤을 껍질 벗겨 꼭꼭 씹어서 아가의 입 안에 넣어 주었지. 그러나 아기는 받아 삼킬 줄을 모르고 울기만 하는구나.
아빠 다람쥐는 아껴 두었던 잣을 갖다 짓이겨 먹여 보았지. 그러나 금방 토해 버리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구나 글쎄.
낮이나 밤이나 잠도 안 자고, 악을 악을 쓰면서 울기만 했지.
안아 주어도 울고, 업어 주어도 울고.
며칠 밤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아빠는 뒈질라면 뒈지라지. 아가를 내던져 둔 채 잠이 들고 말았지.
자지러지게 울어 쌓던 아기 다람쥐도, 이제는 울 기운도 없어 지쳐 늘어진 채 잠이 들었는지 잠잠해졌어.
아빠는 침을 흘리며 깊은 잠을 잤지.
아빠는 코를 골며 정신없이 잤어.
얼마를 그렇게 잠을 잤는지 몰라. 그러다가 문득 잠이 깼어. 천정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지며 목덜미를 간지럽혔기 때문이야.
봄이로구나. 분명 봄이 왔구나.
그런데 나는 이게 무슨 꼴이람.
투덜대며 일어난 아빠 다람쥐는 아무 소리 없이 옆에 누워 있는 아기 다람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지. 그러다가 아빠 다람쥐는 놀랍게도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 거야.
아빠는 아기를 품에 안았지.
그런데 이상한 거야. 보통으로 울다 지쳐 잠든 모양이 아니었어. 다른 데는 다 몰라도 그 초롱초롱 빛나던 두 눈만은 자기를 용케도 빼닮았다고 기특하게 여겼었는데, 글쎄 그 두 눈이 죽은 제 어미의 흰자위뿐인 눈을 닮아 홉뜨고 있는 거야.
아가야,
아가야.
아빠는 다급하게 아가를 불렀어.
그러나 아가는 아빠가 흔드는 대로 고개를 흔들 뿐, 흰자위뿐인 두 눈이 그대로였어.
아빠는 아가를 눕혀 놓고 급하게 토굴을 빠져나왔지. 개울로 달려간 아빠는 얼음이 녹아 흐르는 물을 도토리 껍질에 담아 들고 다시 토굴 속으로 들어왔지.
아가 곁에 쪼그려 앉은 아빠는 도토리 껍질에 담아온 냉수를 아가 얼굴에 뿌려 주었지. 그리고 아가의 코를 빨며 입에다 숨을 불어넣었지.
품에 안고 손발을 주물러 주고, 어쩔 줄 몰라 애쓴 보람이 있어, 아가는 간신히 숨을 돌렸어.
그러나 아가는 이제 악을 쓰며 울지도 않고, 온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올라 열을 내며 앓는 거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끙끙거리고, 신음하며 앓다가는 걸핏하면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두 눈을 다시 허옇게 홉뜨고 까무러치는 거야. 그러다가는 다시 오들오들 떨기 시작해. 아빠는 아가를 품에 안고 큰 몸둥이로 작은 몸뚱이를 덮어 주었지. 그러면 이내 또 아가는 땀을 뻘뻘 흘리며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
아빠 다람쥐는 미칠 지경이었어.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어 아빠 다람쥐는 약초를 구하기로 마음먹었어.
가까스로 아기 다람쥐를 재워 놓은 아빠 다람쥐는, 살며시 토굴 속을 빠져나왔지. 그러나 아직도 이른 봄이어서 풀이나 나무들은 새싹이 나오지 않았고, 그러니 어디 가서 약초를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었어.
아빠 다람쥐는 하루종일 깊은 산 속을 헤매다녔지. 그러다가 약뿌리 비슷한 냄새만 나면 발톱이 찢어지는 것도 모르고 땅을 팠어. 돌을 집어던지고 땅을 파고, 땅을 파다가 가로막는 돌을 끄집어냈어.
몇 차례나 허탕을 쳤지.
어쩌다 재수 좋게 한 뿌리의 약초를 발견해서 그것을 뽑아냈을 때는 앞 발톱이 모두 찢어져 피가 흐르고 해는 이미 넘어가 주위가 깜깜했지.
아빠 다람쥐는 찢어진 발톱이 아픈 줄도 모르고 약뿌리를 찾은 것만 다행으로 여기며 깜깜한 산길을 달려 토굴로 가고 있었어.
어린 것은 그저 제 어미가 있어야 되는 건데 내가 못돼서 지를 죽였지 차라리 내가 대신 앓는 것이 낫지 어린 것 앓는 것은 눈 뜨고 볼 수가 없구먼.
아빠 다람쥐는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지만 아무 다른 정신이 없었어.
돌부리에 발이 채어 나둥그러지면 일어나고, 나뭇가지에 걸려 쓰러지면 또 다시 일어나며, 아무 다른 생각 없이 토굴로 달려 돌아왔을 때는 온 몸이 땀에 젖어 개울물에 목욕한 것과 같은 모습이었지.
아빠 다람쥐는 아직도 착하게 잠들어 있는 아기 다람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다시 토굴 밖으로 살며시 빠져나왔지.
개울가로 나온 아빠 다람쥐는 약뿌리를 깨끗이 씻었지. 그리고 바위 위로 올라갔어. 거기 옴팍하게 패인 곳을 찾아 앉은 아빠 다람쥐는 약뿌리를 찧기 시작했어.
아가야, 이 약 먹고 죽지 말아라.
아가야, 이 약 먹고 일어나거라.
달밤에, 달빛을 받으며, 바위 위에 앉아 약뿌리를 절구질 하며 아빠 다람쥐는 기도하듯 노래를 불렀지.
아가야, 이 약 먹고 어서 나아라.
아가야, 이 약 먹고 활짝 웃어라.
약즙을 만들어, 그것을 도토리 껍질에 짜 담아 놓고, 아빠는 다시 토굴 속으로 들어갔지.
조심스럽게 아가를 안고, 달빛 쏟아지는 바위 위에 나와 앉은 아빠는, 새삼스럽게 아가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어.
아주 양순하고 예쁘게 생긴 아기 다람쥐는, 숨을 고르게 쉬며 두 눈을 감고 잠이 들어 있었지.
두 눈을 감고 잠든 아가 얼굴에 엄마 다람쥐의 얼굴이 겹쳐 보였어.
아빠 다람쥐는 생각했지. 아기 다람쥐의 초롱초롱 빛나는 두 눈만은 자기를 닮았다고. 그런데 양순하고 예쁘게 생긴 아기 다람쥐의 잠든 이 얼굴은 누굴 닮았는가?
그것은 분명 엄마 다람쥐의 얼굴이었지. 그제야 아빠 다람쥐는 죽은 아내의 얼굴이 바로 보였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다시 보니 아기 다람쥐는 언젠가 개울물 속에 비치었던 자기 얼굴을 닮은 것 같기도 했어. 아빠 다람쥐는 아가에게 뽀뽀를 하며 꼭 껴안아 주었지.
아기 다람쥐가 그 바람에 잠이 깼어. 잠이 깬 아가가 다시 아빠 품을 파고들며 가슴을 더듬는 거야.
아빠는 아가에게 도토리 껍질에 담아 놓았던 약즙을 먹였어. 그러나 아가는 약즙을 받아 삼키는가 했는데 잠시 후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그만 먹은 약즙을 모두 토해 버렸어.
아빠는 화가 났지.
귀찮게 굴지 말고, 아예 죽어 버려!
아빠는 아가의 궁둥이를 몇 대 갈기며 소리쳤어.
그만 죽어버려, 그만 뒈져 버리라구.
아기 다람쥐는 자지러지게 울다가 숨이 컥컥 막히는 소리를 냈어.
아빠 다람쥐는 목 쉰 소리로 울어 대는 아기 다람쥐를 내려다보다가 맥이 풀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지.
무리진 달, 그 주변에는 큰 별만 몇 개 띄엄띄엄 보였지만 산등성이 쪽으로는 뭇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아빠는 어디선가 꽃향기가 풍겨 온다고 생각했어. 그것은 분명 꽃향기였어. 생전 처음 맡아 보는 진한 꽃향기였어. 아빠는 아가를 안은 채 꽃내음을 따라 밤길을 걸었어. 아빠는 조그마한 언덕 위에 올라갔어.
그것은 양지바른 곳 작은 무덤 곁에 고개 숙여 피어 있는 한 송이 각시꽃이었어. 그리고 그 무덤은 바로 눈 먼 아내의 무덤이었지.
눈먼 병신이라고 남겨놓고, 온갖 궂은 일 다 시키고, 겨우내 벌레 먹은 상수리나 썩은 도토리만 골라 먹이고, 그래도 아내 노릇 다 하겠다고 무진 애를 쓰다가, 마지막엔 아들까지 낳아 놓고 그만 숨져 간, 불쌍한 엄마 다람쥐의 무덤이었어.
아빠는 아가를 안고 무덤 옆에 서 있는 작은 소나무 밑에 앉았지. 어디선가 산새가 울고 있었어. 달빛 푸른 강 건너 밤나무 숲 속은 죽은 듯이 고요했어. 명주폭을 펼쳐 놓은 듯 흐르는 강물을 가로질러 외나무 다리가 보이고, 한 줄기 안개가 강물과 함께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단다.
울음을 그치고,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잠든 아기 다람쥐는 다시는 그 초롱초롱 빛나던 두 눈을 뜨지 않았단다.
아빠는 아가를 묻었단다.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단다.
며칠을 두고, 며칠 밤을 지새우며, 두 개의 무덤 사이에 앉아 있던 아빠는 외나무 다리를 건너갔단다.
밤나무 숲 속에는 산새만 울고, 이름 모를 멧새만 슬피 울고 있을 뿐, 누구 하나 거기에도 없었단다.
아빠는 다시 외나무다리를 건너왔지. 흰 구름 떠도는 강물 속에는 불쌍한 자기 모습만 비쳐 보였지.
창고마다 가득 찬 많은 식량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단다.
두 개의 무덤 사이에 턱을 고이고 앉은 아빠는, 밤이 가고 날이 밝고 또 밤이 와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잠도 안 자고, 무엇인가 깊이깊이 생각했단다.
흰자위뿐인 두 눈을 껌뻑거리며 아가를 한 번만 보고 싶다던, 눈먼 아내의 잠들 듯 숨진 얼굴이 자꾸만 어둠 속에 떠올랐단다.
약즙을 토했다고 때려준 아기, 엄마처럼 잠들 듯이 죽은 모습도, 자꾸만 눈앞에 떠올랐단다.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소나무 가지로 날아와 울었지.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렸어.
아기 다람쥐의 울음 소리도 들렸어.
눈먼 아내 다람쥐가 어둠 속 저만치서 손짓해 부르고 있었어.
귀를 막아도 들리는 새 소리,
물소리,
울음 소리,
눈을 감아도 보이는 눈먼 아내의 손짓..
아빠 다람쥐는 어찌할 줄 몰라 몸부림치다가 혀를 깨물었단다. 깨물고, 깨물고 또 깨물었단다.
달빛 잠긴 외나무
다리 아래로,
흐르는 맑은 강물
비친 별 나라.
그날 밤 별이 한 개
늘었습니다.
반짝 반짝 빛나던
별무리 속에,
아주 예쁜 별과 별
두 별 사이에,
커다란 별이 한 개
생겼습니다.
평화롭던 밤나무골
깊은 산 속에,
다람쥐네 한 가족이
살았었는데,
살았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