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2002. 3)

약수터 가는 길(5)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분부하셨지요? ”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구요.”
누군가가 대답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나요? ”
선생님이 다시 물으셨다.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곳으로 갔어요.”
아이들 가운데서 누군가가 대답했다.
“거기서 어떻게 했나요? ”
선생님이 또다시 아이들에게 물으셨다.
“장작더미 위에 이삭을 올려놓았어요. 그리고 손에 칼을 잡고 아들을 막 찌르려고 할 때 ....”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지요? ”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야훼의 천사가 말했어요...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한 아이가 천사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대답했다.
“하하하 ...”
“...호호호.”
아이들이 천사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소리를 듣고 웃었다.
“무슨 야훼의 천사 목소리가 그러니? ”
“꼭 영감 목소리다, 얘....”
“호호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분부를 듣고 조금도 의심하거나 거역하려 들지 않고,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그러나 경일이는 어디서 들은 것 같은 이 이야기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이야기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디서, 언젠가, 꼭 들은 것 같은 이야기, 틀림없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듣든지 읽은 것 같은데, 잘 생각나지 않았다. 답답했다.
경일이는 주일학교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시장을 지났다. 시장엔 갈 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수퍼마켓 앞을 지나다가 경일이는 커다란 포스터를 보았다. 예쁜 여자가 수영복을 입고 비스듬히 누워 웃고 있는 사진 옆에 커다란 인삼 한 뿌리가 사람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그림이었다.
경일이는 제 머리를 주먹으로 쳤다.
“그래, 인삼!”
드디어 생각났다. 별나라에서 온 편지에 씌어 있었다. 하나님을 산신령으로 바꾸어놓으면 똑같은 이야기야. 이삭이 인삼이지 뭐야. 아니 인삼이 수양이지 뭐..... 하하하. 경일이는 혼자서 신이 나 웃었다. 신이 나서 혼자 웃다가 멋쩍어져서 ‘천군사’를 오르는 길로 접어들었다. 때마침 천군사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천군사’를 오르는 길옆에 노인정이 있었다. 노인정이라고 무슨 정자가 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개발 제한지역’ 이라고 쓴 하얀 말뚝이 박힌 길가 깨밭 귀퉁이에 헌 의자 여남은 개가 놓여 있고, 네 귀를 미루나무에 잡아 맨 포장이 겨우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을 뿐이었다.
경일이는 기분이 좋았다. 좋은 기분으로 아직까지 들고 있던 사과를 한 입 와작 베어 물었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아들이 인삼이 되고, 이삭이 어린양이 되고.... 별나라에서 성경 얘기가 어쩌면 그렇게 비슷할 수가 있담.... 경일이는 노인정 헌 의자들 가운데 가장 푹신해 보이는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민영이가 준 사과를 와작와작 씹어 먹기 시작했다.
“이 녀석, 뭬 그리 기분이 좋으냐? ”
누군가가 등뒤에서 말했다.
“....? ”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였다.
“안녕하세요.”
경일이가 앉은 채 인사했다.
“오냐, 교회에 다니는 모양이구나.”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네, 어떻게 아세요? ”
“이녀석, 네 무릎 위에 놓인 성경책이 말하는구나.”
할아버지가 웃으시며 말했다.
“할아버지도 성경책 읽어보셨어요? ”
“아니다,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럼, 아브라함과 이삭 얘기 모르시죠? ”
“모르지, 알 턱이 있나...”
“그럼 인삼 얘기는요? ”
“인삼 얘기라, 동자삼 얘기 말이냐? ”
“동자삼이 뭔데요? ”
“아, 이녀석아, 동자삼도 몰라? 옛날에 효자가 살았느니라. 아버님이 병이 들었지. 산신령님께 빌었더니 외아들을 삶아 먹이라는게야. 서당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번쩍 안아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었지. 그런데 금방 아들이 하나 또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게야. 소댕을 열어보니 거기 들어 있는 것은 커다란 인삼이더란다....”
할아버지가 담배를 태워 무셨다.
“맞았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어떻게 그 얘기를 아셔요? ”
“어떻게 알다니, 네가 아는 성경 얘기를 내가 모르는 것이나 네가 모르는 동자삼 얘기를 내가 아는 것이나 피장파장 아니냐? ”
“아녜요, 피장파장이 아니란 말예요. 저는 인삼 얘기두 안단 말예요. 별나라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거든요. 거기 그 이야기가 씌어 있었어요. 할아버지 얘기와 좀 차이는 나지만요.”
“별나라에서 보낸 편지? 녀석 참 별난 나라 얘기를 다 하는군, 허허허.”
그 때 민영이가 저 만치서 뛰어오며 말했다.
“할아버지, 점심 잡수셔요.”
경일이는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