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2002. 11)

삼촌의 별나라 (2)



“승냉 올려라.”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엄마가 상 위에 냉수가 반 쯤 담긴 하얀 대접을 두 개 받쳐 들고 오셨다. 국 그릇과 물 그릇이 바뀌어졌다. 물 그릇에 두 숟갈씩 밥을 말았다. 젓가락을 집어 다시 간추려 놓는다. 젓가락으로 간추릴 때 제사상에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경완이는 승냉이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이 나 오지 않았다. 그만치 분위기가 엄숙했다.
“이제 잠시 문 밖에 나가 있는거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어른들이 대청으로 나왔다. 경일이와 경완이도 대청으 로 나왔다. 아빠가 방문을 닫았다. 경일이는, 왜 문을 닫고 나오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삼촌까지 아주 점잖게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겨울 달이 밝았다. 눈 쌓인 마당에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내년 농사는 풍년이겠구나.”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예, 눈이 많이 내려 물이 흔하겠어요.”
아빠가 대꾸하셨다.
“승냉이 뭐예요?”
경완이가 이제야 물었다.
“승냉이란 제사상에 올리는 냉수의 높임말이야. 어른이 잡숫는 밥을 진지라 하 고 임금님이 잡숫는 밥을 수라라 하고 제사상에 올리는 밥을 메라 하듯이.”
삼촌이 말했다.
“삼촌, 그런데 지금 왜 이렇게 나와 있는거야?”
경일이도 그제야 물었다.
“그건 말이다. 경일아.”
이번엔 아빠가 대답하셨다.
“응, 왜 나와 있는 거야? 문도 닫아놓고.”
경완이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건, 증조 할아버님과 증조 할머님께서 진지를 많이 잡수시라고 그러는거야.”
아빠가 말씀하셨다.
“그럼, 지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방안에 와 있어?”
경완이가 말했다.
“그렇지, 그렇지만 우리 눈엔 안 보여.” 그리고 경완이가 할머니 품에 안겼다.
삼촌이 말했다.
“아하, 예수님이 안 보이는 것과 같구나.”
경일이가 말했다.
“그렇지, 우리 왕자님들이 아주 똑똑해.”
삼촌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아빠도 한 마디 하셨다.
“제사 지낼 때, 그 자손들이 모두 모여 돌아가신 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그분을 추모하는 것이나,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되새기고 예수님의 행적을 더 듬으며 그분 말씀대로 바르게 살려고 다짐하는 것이나, 형식은 다르지만 비슷한 데가 많다고 생각해요.”
삼촌이 말했다.
“그렇지, 창조주 하나님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동 자삼 이야기가 겹치는 부분을 보면 신기해.”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브라함 얘기, 나도 알아요. 별나라에서 온 편지에서도….”
경일이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할아버지가 “에헴” 헛기침을 하셨다. 그리고 방문을 여셨다. 방안엔 여전히 촛대 위에서 촛불이 팔랑일 뿐 아무도 없었다. 다시 절을 했다. 모두들 절을 했다. 제사상 앞에 붙어 있던 붓글씨 쓴 종이가 향로 위에서 불탔다. 종이 타는 냄새와 향냄새가 방안에 가득 찼다. 할아버지가 제사상 위의 술잔을 들어 먼저 마시셨다.
“경일이 경완일랑 이 물을 조금씩 마셔라. 무서움을 안 타느니라.”
삼촌이 승냉 그릇을 들어 경일이와 경완이가 마시게 했다. 증조 할아버지가 마시다 남긴 물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제사상이 물려지고, 되차린 음식상이 들어왔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었다. 떡도 먹고, 고기도 먹고, 과일도 먹었다.
“과식하면 못 써.”
삼촌이 말했다.
“그래라. 내일 먹으렴.”
아빠가 말씀하셨다.
“삼촌, 우리 삼촌 방에 가.”
경일이가 말했다.
“졸음 오지 않니?”
“괜찮아, 삼촌 방에 가서 별나라 얘기 읽다가 자면 되지 뭐.”
“그러자, 그럼.”
삼촌이 일어섰다. 경일이와 경완이도 일어섰다.
강 정 규 님은 동화작가로 크리스챤 신문사 부사장을 지냈고, 지금은 "시와 동화" 발행인이며 햇순 편집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