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소리

2000년 6월 15일 새벽 7시, 울산으로 떠나는 버스 속, 한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인천에서 오는 용섭씨! 그는 북한에 있을 때 성분이 나쁜 관계로 탄광에서 오래동안 고생을 하였다. 60이 다 된 나이에 홀홀 단신으로 서울에서 살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 버릇이 되어있다. 엊저녁에 마신 술 탓에 약간 늦게 일어났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중간쯤 가다가 휴계소에서 아침을 먹기로 한 일정을 바꾸어 용섭씨를 기다리는 동안에 우리는 양재동에서 아침을 먹었다.
울산 YWCA 이사들이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도착하자마자 드린 예배 때에 우리는 정말 깊은 사랑을 느꼈다. 우리보다 먼저 울산 Y에 도착해 계신 주님을 느꼈고 울산 Y 회원들의 사랑은 우리의 피곤과 상처를 풀어주고도 남았다.
북한을 탈출 할 때에는 부인과 함께 했지만 중국에서 헤어진 부인의 소식을 아직도 몰라 아픔을 안고 사는 송일씨는 아들과 딸 둘을 서울에 두고 울산 여행길에 올랐다.
"작년에도 왔었지만 올해도 또 오니까 너무 좋고 감사합니다." 진정으로 드리는 그의 인사 말씀이 있었다.

다이아몬드 호텔에 준비된 울산 시민들과의 만남은 통일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일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가?"를 미리 내다보며 대화를 하였다.
각 테이블에 공동체문화원 회원, Y 회원, 북이탈 주민, 울산 여성 운동가들, 시민 운동가, 목사, 기자 등 여섯 조로 나누어 주어진 제목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1) 상호 이해 (가치관 문제, 장래의 희망과 기대) (2) 상호 신뢰(불신의 벽과 요소를 깨는 일, 믿음의 바탕을 만드는 일) (3) 상호 협력(남한 내부에서 협력할 일, 남과 북이 협력할 일, 사회통합을 위한 준비, 탈북자가 본 탈북 주민의 재통합과정의 문제, 통일을 위한 지역 사회와 시민 단체의 역할을 위해)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통일이 될 때 먼저 북을 이탈한 주민들이 남과 북 사이에서 든든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였다.
마침,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날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어떤 이들은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저기에 속아 넘어가면 절대로 안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번 모임의 형태는 통일된 한국을 미리 내다보며 그때의 삶을 위해 지금부터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과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참석자 모두가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자리였다.
발제자는 10분씩 우리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하는 역할만 하였다.

- 남북의 화합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지연, 학연 등 현재 화합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고쳐 나간다.
-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경제, 문화, 종교 등 다양한 교류를 한다.
- 물질을 제일로 삼는 가치관을 지양한다.
- 현재 북 이탈 주민과 시민들이 서로 존중하며 도우며 산다면, 현재의 아픔을 딛고 선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고 믿는다.
- 북에서 온 사람은 모든 면에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신뢰의 바탕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있다면 또 다른 쪽에서 큰 능력이 있음을 발견 해야 한다.
- 남한에는 자유가 있지만 부부 사이에나, 부모 자녀 간에 예의가 없고 함부로 하는 행동이 눈에 거슬린다.
- 간판이나 모든 대화에서 외래어가 너무나 많아 우리말의 정화가 필요하다.
- 자원 봉사자가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버스 속에서 오고가며 많은 대화를 나누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면서 남과 북, 50년 이 상 떨어져 살았던 형제들의 이산가족 재회를 한 기쁨은 참석해 본 자들만이 알 것이다.

* 윤명선 (공동체문화원장)

현장의 소리 (2000. 8)

북 이탈 주민과 함께 하는 한 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