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용
"저는 중국 길림성 도문철도실험소학교 6학년 2반에 다니는 리선자입니다.
감격의 이 자리를 빌어 저는 중국의 1만 7천명 피해자자녀를 대표해 우리들에게 따사로운
손길을 보내주신 여러분들게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만리타향 머나먼 고국땅에 계시는 생면부지의 여러 선생님들이 우리들에게 물붓고 있는 사
랑은 어버이의 은정보다 더 깊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고마운 은정에 목이 메는 이 시각에 저는 부모님 그리고 저희 가정과 같은 처지에 처해있는
수많은 피해자 가정의 피눈물겨운 사연들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
특히는 새학기를 근심걱정 없이 공부하게 되었으니 대단히 기쁨니다. 앞으로 학습에 더욱
노력하고 많은 지식을 배워서 우리 영웅민족의 기개를 펼치며 세상에서 제일 뭉친 민족으로
되게 하려는 큰 포부를 가지며 꼭 그렇게 하려고 선생님들 앞에 맹세합니다. 이 결심으로써
선생님들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
2000년 8.15. 1만 7천명 피해자자녀 대표 리선자
지난 8월 15일 우리나라에서는 감격적인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이 있었지만 필자는 다른 감격을
맛보았다.
중국 연길 시내의 "연길인민문화궁" 3층 강당, 우리가 '조선족' 이라고 말하는 중국동포의 자녀들이 모여서 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이 행사는 필자가 일하는 "한민족선교정책연구소"에서 중국 동북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 성)의 소학교, 중학교 학생 70여명에게 두 번째로 장학금을 전달하는 날이었다. 이날 강당에 는 중국 조선족사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고있는 전 연변대학 총장이신 정판룡교수와 조선족 사기피해자 협회의 임원, 장학금 위원회 위원, 피해자 자녀 부모, 기자, 서울에서 함께 동행 한 수송교회 청년대학생등 230여명이 모인가운데 진행되었다.
사실 조용히 전달을 하려고 했는데 피해자 협회측에서 아이들에게 공식적 행사를 통해서 전 달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해서 할 수 없이 거창하게 행사를 치뤘다.
이날 장학금을 전달받은 아이들의 사연은 기구하다.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대학을 나와야 인정을 받는 사회이다. 물론 농사를 지으며 목에 풀칠 정도 한다면 대학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중국 동포 부모들도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자식들이 고생하는 것은 보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우리 민족인가보다.
보통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중국돈 500원에서 700원 정도인데 이것은 우리돈 7-10만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연간 2,000-3,000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이러한 경제력을 가지고는 자식들을 공부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가난의 악순환은 대물림이 되어왔다. 이 악순환의 돌파구로 택한 것이 이들의 조국인 우리나라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말도 통하니 그들의 한국행 꿈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택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 가지 수속을 위하여 드는 비용이 중국돈 500만원에서 700만원, 이것은 사실 그들이 평 생 모아야 가능한 금액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1-2년 고생하면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 중국인 사채업자에게 빚을 내어서 수속을 밟는다. 일확천금 의 꿈을 앉고.
안타까운 일은 이러한 이들을 이용하여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기 로 인해 1만 7천여명이 피해를 당하고 중국인 사채업자에게 매를 맞아 불구가 되거나 살해 당하고 도주생활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가정이 와해되는 지경까지 왔다. 그러다보니 아이 들과 노인들의 생활이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되었다. 가난으로 인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이 2,0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노인들도 말할 것이 없다.
이날 70명의 학생에게 중국돈 300원과 경노원에 5,000원을 전달했다. 전체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작은 금액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아이들의 6개월 학비와 생활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금액이다. 우리돈 5만원이 채 안되는 금액이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것이다.
이 아이들은 희생자들이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꿈을 접어야 할 위기에 놓여있는 아이 들이다. 자신들의 선택이나 실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절망에 놓여있는 아이들이다. 사실 이들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한 것은 그들의 부모가 아니라 우리들이 아닌가? 선량한 사 람들을 이용해서 배를 불리려는 우리 한국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고통이 아닌가?
한국인이라면 한이맺힌 이들에게 그 한을 풀기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교회는 중국선교를 말하며 상상할 수 없는 많은 헌금을 보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 부분이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우리 이름의 십자가를 거는데 투자가 되었다. 중국의 현실과는 상관없이. 그 현장 옆에 우리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이러한 장학사업에 함께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회사를 경영하며 자신의 신분노출을 꺼리며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장학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실업가 신사장님, 이 장 학사업 소식을 듣고 눈물겨운 사랑을 보여준 중국동포들(이들은 한국에서 노점상으로, 식당 종업원으로, 목욕탕 때밀이 등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만 쌈지돈을 털어서 50만원을 만들어 주셨다), 강연을 듣고 즉석에서 작정을 하신 이집사님, 중국 현장을 돌아보고 후원해 주신 김장로님 등 소중한 손길들이 모아져 작은 사랑을 만들었다.
더 고마운 일은 이번 선교지 탐방을 함께한 수송교회 청년대학생 10여명이 경비를 절약해서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50명분의 장학금을 즉석에서 기탁했다. 참으로 눈물나는 일들이다.
지금도 장학금을 받아들고 고마워 하며 머리를 땅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하는 아이들,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 이철용 (목사, 편집위원, 한민족선교정책연구소 정보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