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청소년들은 새로운 소비형태와 문화형태를 창출하였다. 그들은 기성세대 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의 소유자이며, 스스로 차별화를 부르짖는 세대이다. 흔히 신세대의 특징을 PANTS 신드롬이라고 한다. 신세대는 개인적이며(personal), 흥미위주로 살며(amusement), 자연스 러움을 좋아하고(natural), 성별구분이 모호하며(trans-border), 극단적 자기사랑으로 살기를 원한 다(self-loving). 이에 따른 반작용으로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은 세상이라는 물위에 쉽 게 방향도 모른 채 표류하게 되고 그것이 일탈이라는 개인적,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부산부녀복지관에는 이런 부작용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가출 청소녀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공동 체로서 현재는 70여명 가량의 식구들이 생활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충동적으로 한 두 번의 가출을 한 경험을 갖고 있고, 그것이 자신에게 심각한 영향력을 미칠 것인지 조차 판단하지 못한 다. 이 충동적인 가출은 습관적인 가출로 이어지고, 함께 어울려 놀려고 하다보니 절도를 하게되 거나, 아니면 윤락 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삶의 위기 한복판에 있는 우리의 딸 들이 이 곳에 살고 있다.
혜지는 복지관에 세 차례나 들어왔던 아이다. 18살의 혜지는 가출을 하여 떠돌아다니다가 우리 집에 들어오게 되었고,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식당 문을 부수고 탈출(?)을 했다. 한 달여 지난 후 에 혜지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우리 집을 나간 후 아는 아주머니의 소개로 전라도에 있는 단 란주점에 소개받고 일했었는데, 이런 생활인줄 몰랐다고... 다시 복지관에 가고 싶다고 했다. 복지 관에 온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경찰이 혜지를 찾아 왔다. 그 동안 저지른 절도가 50건이 넘는다고 했다.
화가 난다고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서 손등에 힘줄이 나간 애경이, 싸우다가 쟁반을 집어 던져 서 친구 머리를 일곱 바늘 꿰매게 한 주현이, 찾기 불가능한 곳에 담배를 숨기고 와서 한 밤중에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다 걸린 재희, 외박 나갔다가 술에 만취되어서 "선생님, 며칠 더 놀다 들 어 갈께요" 술주정하던 13살 진선이, 기숙사 선생님 방을 뜯고 들어가 한달 월급을 슬쩍해서 이불 호청 속에 꽁꽁 감추어 두었던 경자 등이 우리 집에 모여 산다.
그러나 오늘이 컴퓨터 선생님 생신이라고 박수 쳐 드리고, 스승의 노래 불러주는 또 다른 아이 들의 모습이 있다. 시험을 본다면서 끝까지 책을 붙들고 공부하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대 견해 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무 목표도 없이 살다가 비로소 목표를, 꿈을 가지게 되어 행복해 하 면서 자신의 삶을 준비할 줄도 알게 되고, 싸워도 죄책감이 전혀 없었는데 이젠 견딜 수 없어 괴 로워하면서 먼저 손내밀어 화해 할 줄도 알게 되고, 규칙과 나와는 상관없노라고 뻗대고 살았는데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부끄러워할 줄도 아는 보통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 바로 이 아이들이 세상 사람들이 문제아라고 말하면서 자신과는 구별되게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았던 우리의 소중한 딸들이다. 워드(wp) 자격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이런 일이, 이런 기회가 자기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예배실에서 한참을 기도하며 우는 우리의 딸들이다. 잠든 틈에 기숙 사를 돌면서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녀석들 이불을 덮어주면, 다음 날 아침 "전도사님 어제 밤 저 이불 덮어 주셨지요?"하면서 행복해 하면서, 다음 날 일부러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사랑 받고 싶 어하는 순진한 우리의 딸들이다.
집이 싫어서, 학교가 싫어서 뛰쳐나온 딸들은, 아침 6시부터 오후 10까지 매일 반복되는 학교 수업(중입, 중졸, 고졸, 수능)과 기술 수업(컴퓨터, 제빵, 미용, 편물), 예배(새벽예배, 저녁기도회, 주일오전, 주일 저녁예배, 수요예배)등 벅찬 하루 일정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비로소 희망을 찾아가려고 하는 이 딸들 때문에 매일 웃고, 울면서 기다린다. 자신이 되고 싶었 던 최선의 자기 모습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갈 때까지 보듬어 안아주고, 훈련시키면서 기다린다. 생명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자신의 삶에 대한 아름다운 살림을 꿈꾸어야 할 이들이 '죽을 자리로 끌려가는' 삶을 선택하도록 방관만 할 수는 없다. 회복할 길이 없다고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며 이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일일 것이다.
* 이은상(부산 복지교회 담임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