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 성서 난해구 해설 (2001. 4)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면 부자가 되나요?
(잠언 22:16)

민영진 목사
(대한성서공회부총무)

질문

민영진 목사님,

{공동번역성서}에서 잠언22장16절을 보면 "어려운 사람을 학대하면 그가 부자가 되고 부자에게 자꾸 갖다주면 그가 가난해진다." 라고 되어 있는데, 번역이 이상해서 {개역한글 판}과 {표준새번역} 성서를 보니 {공동번역성서}와는 뜻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개역한글 판}에 보면 "이(利)를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富者)에게 주는 자는 가난 하여질 뿐이니라"라고 되어있어요. {표준새번역}에는 "이익을 탐해서, 가난한 사람을 학대 하는 사람과, 부자에게 자꾸 가져다 주는 사람은, 가난해질 뿐이다." 제 생각에는 분명 {공 동번역성서}가 번역이 틀린 것이라 생각됩니다.
정확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샬롬!

이숙정 드림


대답

이숙정 자매님께,

우선, 흥미 있는 문제를 물어주셔서 우리 모두가 이 본문을 다시 볼 수 있도록 하여주 신 것에 대하여 감사 드립니다. 아마 {공동번역}을 보시다가, "어려운 사람을 학대하면 그가 부자가 되고"라고 하는 내용이 너무나도 도발적(挑發的)이어서 다른 두 번역을 비교해 보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비교해 보시니까 {공동번역}만 번역이 다른 것 같고, 다른 두 번역들은 번역 내용이 같은 것처럼 보이니까, 아마도 {공동번역}의 번역이 틀린 것 같고, 서로 일치하 는 다른 두 번역들은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욱이, 성서의 말씀인 데,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 어려운 사람을 학대하는 길을 제시하였을 까닭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욥기}나 {전도서}를 포함하여 {잠언(箴言)}과 같은 지혜 문학에는 여러 종류의 격언과 금언과 처세 교훈과 속담 등이 자주 인용되어 있고, 그러한 격언이나 금언이나 속담들은 경험된 현실을 그대로 진술하고 고발하는 역할도 합니다. 부자들이 어떻게 부자가 됩니까? 정당하게 벌어서 부자가 된 이들도 있지만, 동서고금 을 막론하고, 가난한 사람의 등을 쳐서 부자가 된 이들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상 한 것은,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여 부자가 된 이들 중에는 자기들보다 더 권력이 많은 또 다 른 착취자에게 착취를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구약성서 {전도서(傳道書)}의 저자 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지방에서든지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고, 
    법과 정의를 짓밟아도, 
    너는 그것을 보고 놀라지 말아라. 
    높은 사람 위에 더 높은 이가 있어서, 
    그 높은 사람을 감독하고, 
    그들 위에는 더 높은 이들이 있어서, 
    그들을 감독한다." 
    ({표준새번역} 전 5:8)

착취의 먹이사슬을 말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약자를 착취한 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때만 되면, 자기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부 자들에게 혹은 권력자들에게, 불순한 동기에서, 뇌물성 선물을 가져다 바치기도 하지요. 자 신이 남에게서 빼앗기도 하지만 자기 역시 자기보다 더 큰 권력자에게 빼앗기니까 결국, 착취한 재물로는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상대적으로 평생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동번역}의 이해입니다.

그러면 다른 번역들은 왜 {공동번역}과는 다를까요? 표현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것 같 은데, 사실상 근본적인 내용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학대하여 얻은 재물 을 가지고 (약간 부자가 되었네요!), 자기보다 훨씬 더 부자이며 권력자인 사람에게 뇌물이 나 바치면서 (약간 빼앗겼네요!) 부귀(富貴)와 영달(榮達)을 꿈꾸는 자는, 그런 식으로 부를 누리려는 자는, 결국 가난하게 된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히브리어 원문은 어떨까요? 히브리어를 아시면 곧바로 그 본문을 보시면 되겠 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보실 수 없으면, 그 히브리어 본문을 글자 그대로 번역한 로버트 영 (Robert Young)이란 사람의 {축자역성서(逐字譯聖書 Young, Literal Translation of Bible)} 의 번역을 소개할 터이니 한 번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He is oppressing the poor to multiply to him, He is giving to the rich -- only to want.

이것을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재산을 늘리려고 가난한 이들을 학대한다, 그는 부자에게 갖다 바친다. -- 궁핍할 뿐이다."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을 최초로 다른 말로 번역한 것이 그리스어 칠십인역인데, 그것도 한 번 보겠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직역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He that oppresses the poor, increases his own substance, yet gives to the rich so as to make it less.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자는 제 재산을 늘린다, 그러나 부자에게 갖다바치니, 여전히 궁핍하다."

오히려 {공동번역}의 이해가 더 원문의 형식과 뜻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개역} 이나 {표준 새번역}이 틀린 번역은 아닙니다. 결과를 볼 때 결국 착취자는 부자가 못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개역}은 "이(利)를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라고 문장 구조를 달 리하여 번역하였고, {표준새번역}은 "이익을 탐해서,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문장 구조를 달리하여 번역한 것뿐입니다.

번역자들이 원문을 번역할 때, 그들이 파악한 원문의 뜻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우리 독자들이 받는 인상도 서로 달라집니다. 원문의 의미가 복합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하나의 고정된 의미는 없습니다. 의미 뿐 아니라 표현 방식도 번역판에 따라 다양합니다. 표 현이 다르면 독자가 받는 인상도 다릅니다. 그러나 귀하께서 비교하신 세 번역은 근본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일치합니다. 아무리 반역을 다양하게 한다 하더라도, 일정한 번역 원칙의 통제를 받으면서 수행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의미의 차이와 함께 의미의 유사성도 동시에 가 지고 있습니다. 여러 번역을 비교하여 읽으시면서 성서 속의 신비한 세계를 즐겨보시기 바 랍니다.

민영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