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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영진 목사님께,
대한성서공회 총무님이 되신 것을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중책을 맡으시고도 우리 [햇순] 독자들을 위해 성경 난해구 해설을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약의 복음서를 읽다 보면, 구약 본문이 인용되어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본문은 복음
서에 인용된 본문과 인용의 출처인 구약의 본래 본문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예수께서 인용하신 시편의 한 구절입니다.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개역개정판] 마 21:15-16)
관주를 보니까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이 시편 8편 2절이라고 되어 있기에 그 곳을 참조해 보았더니 본문이 좀 다릅니다. 여기 그 본문을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怨讐)들과 보복자(報復者)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개역개정판] 시 8:2)
이렇게 서로 다른 본문을 어떻게 인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요?
기독교대한감리회 용두동교회 서동영 올림
서동영 님께,
그리스어 번역 본문의 인용입니다
신약성서 안에는 구약 본문 인용이 참 많습니다. 서동영 님께서 지적하신 것말고도, 구약 자체의 본문과 신약에 인용된 본문 사이에 약간씩의 차이가 나는 것이 많습니다. 우선, 쉽게 말씀드린다면, 예수께서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말씀을 하셨을 것이고, 예수께서 인용하신 구약은 히브리어 본문이었을 것인데, 신약의 복음서를 쓴 문필가들은 그것을 모두 그리스어로 적었습니다.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말씀하셨을 예수님의 말씀이 모두 그리스어로 적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구약 인용도 히브리어 본문의 인용이라기보다는 그리스어로 번역된 고대 그리스어 번역 본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귀하께서 제기하신 문제는 인용의 정확성 여부에 관련된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두 구약 본문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감(靈感)이 연륜(年輪)을 앞서는 것 같습니다
귀하께서는 인용 관계에 있는 본문이 출처와 인용 사이에 본문이 변경된 것 같다는 점을 문제 삼으셨지만, 마침 귀하께서 주신 본문이 저에게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이 본문과 만난 제 자신의 성서 체험, 본문 체험을 귀하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젊은 예언자들의 예언을 만나거나, 젊은 천재 시인들의 시를 만나보면, 영감이 연륜을 앞선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소월이나 윤동주 씨 같은 시인들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남녀 노소가 다 그들의 노래와 시를 좋아하고, 어떤 교수는 70 평생을 20대에 요절한 시인들의 시를 연구하며 평생을 보내기도 합니다. 영감은 연륜보다 앞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직 제가 어렸을 때, 바울, 아모스, 호세아, 미가,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성서의 인물들을 만나면서, 저는 그들이 어린 저보다는 인생에 있어서도 선배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의 글을 읽었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회갑을 지난 이후부터는 성서의 인물들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가 제 나이의 저보다는 다들 젊었을 때였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게 되면서 역시 영감은 연륜에 앞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시편의 시인이 한 말은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권위”가 있어서 “하나님의 원수들”도 그 앞에서 꼼짝없이 할 말을 잃고 유구무언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하나님의 원수들이 젖먹이같은 어린아이가 하는 말의 권위 앞에서 물러서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잠잠케 하신 것입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눈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을 고쳐 주고 계셨습니다. 그 때 아이들이 성전 뜰에서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에게 호산나!” 하면서 환호를 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어른들은 아이들이 외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예수님을 나무랐습니다. “아이들이 지금 당신을 보고 무어라고 하는지 듣고 있소?”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 어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소. 다 듣고 있소, 당신들은 성경에 ‘주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완전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고 하신 시편의 말씀도 읽어보지 못하였소?” (마 21:14-16) 하고 받아치신 것입니다.
인용구의 출처인 시편 시인에게서나 예수께서 인용하신 이 구절에서 저는 영감(靈感)이 연륜(年輪)보다 앞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단순히 ‘젊은이’일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에게 영감이 작용합니다.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바로 기성 세대(‘원수들과 보복자들’)를 굴복시키는 말(시편 시인)이 되고, “하나님 찬양을 완성하는 작품”(예수)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감이 연륜을 앞선다는 것에 있어서 이것보다 더 한 강조를 어디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곧, 나이 많은 신도들이, 어린이들을 존중히 대하고, 그들에게 겸손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는 말에도 귀기울여 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린것들이 뭘 안다고...” “젊은애들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지 못할 때 성령께서 어린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셔서 그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어린 아이에게서 완전한 기도 완전한 찬미가 나오게 하시어 어른을 부끄럽게도 하십니다.
민영진 드림
민영진목사
편집위원, 대한성서공회부총무, 감신대교수(구약신학) 및 대한성서공회 번역실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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