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생활의 깊이와 거룩함을 배양하는 길잡이 -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나르시즘과 다신론
나르시서스의 이야기가 명백히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니라 나르시시즘의 위험은 그것이 지닌 비 유연성(inflexibility)과 경직성이다. 나긋나긋함은 영혼의 특질로서는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그리 스신화를 보면, 거기 나오는 신들과 여신들의 유연성이 그들의 일차적인 특색중의 한 가지이다. 그들이 서로 싸울 수는 있으나 서로의 타당성(Validity)은 인정한다. 신들과 여신들은 제각기 그들 의 배치에 따라 다신론을 지탱하는 특수한 방식이 있다.
종교적 신앙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오히려 심리적 모형으로 이해되는 다신론은 쉽사리 오해를 받 는다. 소박하게 진술해서, 그 뜻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심층으로부터 우리에게 부과된 수많은 다 른 요구들이 있다. 이런 모든 충동들은 단 하나의 초점에 맞춰 보는 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고 바 람직한 것도 아니다. 성격의 단일성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오히려 다신론 사상은 다원성 안에 서 살아갈 것을 암시해 준다. 어떤 이는 그 사상을 필요한 만큼 깊이 연구하지도 않은 채 가정하 기를 이는 도덕적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되고, 윤리적 규정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라도 일어나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多)는 "여럿"을 뜻하지 "어떤 것이라도"를 뜻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신론적 도덕성에 있어서 우리는 각기 다른 도덕적 요구 때문에 생기는 긴장 을 경험하도록 허용한다.
심리학적 다신론은 양적인 문제이기보다는 더 질적인 문제에 가깝다. 자신 속에서 서로 경쟁을 벌이는 영혼의 요구에 대하여 관용하는 것을 발견할 때 인생이 더 복잡해지기는 하지만 동시에 더 흥미로워진다. 한 예를 보면, 고적(Solitude)과 사회생활의 모순적 욕구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 안에 공동체 정신과 고독함의 정신이 둘 다 있다. 때때로 그 둘은 서로 전쟁을 일 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그 둘 중에 어느 한쪽에만 충성한다고 불평 한다. 그러나 그 둘이 다 짜여져서 인생이 되는 것이며, 기호 논리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층적으 로 그리 될 수 있다. 사실상 복잡하고 경쟁적인 요구를 깊이 있게 받아들일수록 그 요구들은 각 기 더 미묘해진다. 그래서 도시 안에서 어떤 시골을 발견할 수도 있고, 공동체와 세련된 모습을 시골 속에서 발견할 수 도 있다. 다신론적 삶을 없애기는 힘들지만 그것이 인생을 흥미롭게 만들 고 움직이게 만들어 준다. 한 걸음 더 나가서 보면, 영혼은 다신론의 뒤엉킴 속에서 자라나는데, 그것은 마치 미궁 속에서 수 없이 많이 엎치락뒤치락 반전을 거듭하는 것과 같다.
다신론이 지닌 가장 가치 있는(rewarding) 특성은 각자의 마음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이다. 우리가 유일신적 태도로 삶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할 때, 즉 옳은 일을 하고, 전 통을 지키고,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등등, 노력을 할 때, 우리와 배치되는 도덕성이 우리의 본성 의 어떤 부분을 거리가 멀게 만들거나 별로 알려지지 못하게 만든다. 평생에 캠핑을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한 사람이 자기는 그런 일을 몹시 싫어할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 뒤에 그는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며 잠들기를 좋아하는 애인과 사랑하게 되었다. 야외에 나가 첫 밤을 맞아 그는 찬란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서는, 자신이 그렇게 소박하고 아름다운 행위를 감상하리라고는 전혀 몰랐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 내면에 다신론을 향한 작은 문열이가 있었음을 몰랐다는 것이었다.
다신론적 태도가 어느 정도 인간의 본성을 수용하는 것과, 동시에 일편단심에 의해서는 차단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본성을 수용하는 것을 허용한다. 신경증적인 나르시시즘은 영혼의 소재를 이 루는 수많은 감정, 추억, 소원, 환상, 욕망 그리고 공포를 멈춰 서서 성찰하고 바로 보는 데 필요 한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결과, 나르시시스트적인 사람은 자기가 누군가에 대하여 단일한 생각에만 고착되게 하고, 바로 여러 가지 가능성은 자동적으로 거부된다. 우리는 신화, 특히 연못 속에 있는 "다른" 얼굴의 발견을 다신론 속에 있는 교훈으로 읽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