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0. 7)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23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신화가 우리에게 그밖에 뭔가를 또 가르쳐 준다. 즉, 나르시시즘은 변화의 큰 틀에서 보면 작 은 한 부분이다. 이야기 속에서 보면 장면이 숲에서 지하세계로, 등장인물은 사람에서 꽃으로, 즉, 사람이 물체로 바뀐다. 나는 이것을 인간적 주관성에서 떠나 자연으로 움직여 가는 것으로 본다. 나르시시즘이 스스로 치유하면서 거기서 벗어나 피조물의 세계로 들어간다. 우리는 나르시시즘 속에서 자연에게 상처를 입히고, 사랑 받지 못할 것들을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나르시시즘은 변 화되고, 그 결과로 자아를 사랑하게 됨으로 자연의 모든 사물들과 일치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 다면 우리는 나르시시즘을 공유하고, 상호적인 자아를 지니며 모든 피조물 사이에서 일종의 신 비한 동족의 관계(consanguinity)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너무 조심스럽게 신비주의 에서 뒷걸음치지 않기로 말하자면, 징후적인 나르시시즘이 순전한 종교적 덕목이 될 때에 비로서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간의 모든 징후와 문제들은 깊이있게 파고 들어서 심층에 서 보고 영혼충만한 방식으로 인식될 때 궁극적으로 종교적 감각으로 해결책을 찾게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와 같이 일상을 거룩하게,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바 꾸는 변화의 철학을 지닌 시인이었다. 1925년의 한 유명한 편지에서 그는 "우리의 과업은 잠깐 있다가 사라질 이 땅을 아주 깊게, 고통스럽지만 열정적으로 우리 속에 각인 되게 하여서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들 속에서 다시 살아나도록 하는 일이다" 라고 적는다. 이 말에서 나는 나르시 서스가 꽃이 피는 것을 연상한다. 자연은 우리 인생들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고, 우리의 인성은 창조물의 행위로서 꽃피운다.

모르페우스에게 부치는 노래(14행시)에서 릴케는 또 한번 소박하게 나르시서스에 대하여 언급 한다.

연못에 반사되어도
우리 눈 앞에서 자주 헤엄치네;
이미지를 알라

오로지 이중영역에서
두 목소리는
영원하고 또 부드러워지네.

나르시시스트는 냉혹하게 자기 비판을 당하면서도 무정하고 잔인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중 영역"(dual realm)이 발견 될 때, 그리고 나르시서스가 그의 타자성(otherness)과 접촉하며 연못에 누워있을 때, 지속적이며 영원하고 흐트러지지 않은 심층이 근거와 자신감을 안겨준다. 그 때 나 르시시즘 속에 있는 사디즘의 날카로운 날을 무디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발견의 물 속에 부드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르시서스로서 우리는 더 이상 자기 보존을 시도하면서 대리석처럼 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꽃처럼 되어서 뿌리는 깊어지고, 흐드러진 아름다움은 근거 를 찾고 자연의 정직한 겸손을 한껏 즐기게 된다.

문제는 너무 자주 우리의 징후가 손은 못대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의 교묘한(artful) 참여가 없 으면 변형(metamorphosis)은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르네상스기의 피치노와 피코 델라 비란돌라 같은 마법사들의 교훈인데, 그들의 글을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예술가나 시인 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징후는 상상력에 의하여 변화된다. 만약 조금이라도 나르시시즘이 내 입 밖으로 튀어나가는 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실마리를 잡아서 어디에서 내가 나의 영혼을 사랑 하지 않고 돌보지 않고 있는가를 찾을 수 있다. 특수한 언어가 나에게 어디를 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정확히 일러준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만약 나르시시즘을 이렇게만 인식하고 그 속에 서 신화의 요란한 소리를 듣게 된다면, 나는 내 나르시시즘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자기수용의 씨앗이 들어있고 더 넓은 세계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있다.


제 4장 사랑의 통과의례

플라톤이 말했듯이 사랑은 일종의 광기, 숭고한 광기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랑에 대하여 이야 기하면서 사랑이란 마치 관계의 한 측면인 것처럼, 크게 말하자면, 뭔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해야 사랑을 옳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해서 성공하고, 문제를 극 복하여 실패하였을 때도 살아났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치료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안고 오 는 수많은 문제들은 사랑에 대한 상승기대와 맨 밑바닥까지 떨어진 경험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명백한 사실은 사랑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과, 과거의 몸부림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라도 찾아본다면- 명백한 사랑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멀게라도 연결되 어 있는 자료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우리가 사랑에 대하여 가볍게 이야기 하면서, 사랑이 얼마나 힘이 있고 또 얼마나 지 속적인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사랑이 치유해주고 온전하게 되는 것을 기대하는데, 실 은 알고 보면 사랑이 움푹 파인 틈이나 텅빈 실패를 만들어 낸다. 이혼을 한번 겪고 보면, 결단 코 그칠줄 모르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 되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흔히 우리가 옳은 짓을 했는지 완벽하게 알 길이 없고, 그런 결정을 내린데 대하여 마음의 평화를 누릴지라도 추억과 애착은 다만 꿈속에서라도 지속된다. 사람들은 결코 표현될 수 없었던 사랑에 대하여 정서적으 로 심한 고통을 받는다. 한 여성은 자기 아버지가 수술실로 마지막 들어 가던 때를 생각만 하면 운다. 평생동안 그들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기는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하고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으면서도, 움츠러들었고, 결국은 너무 늦었다. 양심의 가책은 지독했 고 또 지속적이다. 그의 "향연", 즉 사랑의 본질에 대한 그의 유명한 책에서, 플라톤은 사랑을 충 만과 공허의 자식이라 부른다. 이 두 측면의 각기 다른 측면을 어떤 형식으로든 동반한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사랑이 어떻게든 인생을 완전하게 해주리라는 상승 기대는 사랑 경험에는 필수적인 부분이다. 사랑은 인생의 그처럼 쩍 벌어진 틈이 아물고 치유되게 할 것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사랑이 그 자체를 드러내면서 고통과 혼란을 안겨 주었다는 것이 즉 차이가 난다. 그런데 사랑안에서 뭔가 자기 갱신적인 면이 있다. 그리스의 여신처럼, 건 망증의 목욕을 통하여 자신의 순결(virginity)을 갱신한다.

내 생각에 우리가 사랑을 경험할 때마다 사랑에 대하여 뭔가를 배우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관계에서 실패했을 때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우리는 어 느만큼은 터프해지기도 하고, 아마 조금은 더 슬기로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 그 자체는 영원 히 젊고, 언제나 젊은이의 어리석음을 어느 정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국은 사랑 때문에 겪는 고난이나 막다른 골목 때문에 너무 지치지 않는 것이 더 좋고, 오히려 공허함이 사랑의 유 산 가운데 일부이고 따라서 사랑 그 자체의 본질임을 감상하게 된다. 과거의 실수를 피하려 하 거나 어떻게 하면 사랑에 대하여 똑똑히 굴 수 있을까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따위는 필요치 않다. 사랑 때문에 황폐하게 된 뒤에 우리가 이룰 수 있는 발전은 다시 한번 자유롭게 사랑속으로 들어 갈 수 있게 되는 것과, 우리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있어서는 신비하게 필요한 어두움과 텅 빈 상태로 더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고려할 때 관계란 측면에서는 덜 생각하고, 영혼의 사건이란 측면에서도 더 많이 생각 하는 것이 쓸모 있을지 모른다. 이는 고대의 교본들(handbooks)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관점이다. 관계가 작용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없고, 다만 우정과 친밀에 대한 경축은 있다. 강조점은 사랑이 영혼에 대하여 무엇을 하는가에 있다. 사랑이 더 넓은 비젼을 가져다 주는가? 사랑이 어떤 방식 으로든 영혼이 통과 의례를 거치게 하는가? 사랑이 연인들 땅으로부터 멀리 거룩한 것을 의식하 는데로 옮겨 주는가?

피치노가 말한다. "인간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름다운 대상과 합일이 되어 유한한(moutal) 인생에게 영원을 가능하게 하려는 욕망이다." 이것은 신플라 톤주의자들에게 찾을 수 있는 근원적인 가르침으로서 땅의 쾌락을 영원한 즐거움에 대한 초청으 로 보는 것이다. 피치노가 말하기를 이러한 일상 생활의 일들이 영원을 향하여 우리를 매혹시키 는 "마법의 미끼"라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두 사람 사이의 완전히 세속적인 (땅의) 관계처럼 보이는 것이 동시에 영혼을 향한 훨씬 더 깊은 길이 된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의 희생자들을 혼란시킨다. 왜냐하면, 사랑이 영혼 속에서 작용하는 것이 관계에 있어서 명백히 보이는 템포와 필수 조건 같이 세부적인 것들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의 초기 낭만파 시인인 노발리스(Novalis)가 아주 소박하게 표현한 것이 있다. 즉, 그가 말하기를, 사랑은 본디 이 세상 을 위하여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프로이드가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즉, 사랑에 있어서 우리가 인생의 우연한 일들로부터 영혼을 향하여 우리의 주의를 돌리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기를, 사랑에는 언제나 초기의 가족 패 턴이 현재의 관계로 전이되는 법이다. 아버지, 어머니, 형, 누이 같은 사람들의 사랑에 있어서 늘 보이지 않으나 영향력이 있는 현존으로 암시된다. 프로이드는 우리가 사랑이 꿈틀대면 의례껏 행동으로 되살아 나는 심층적인 환상에로 눈길을 돌리게 한다. 물론 우리는 프로이트가 환원론적 으로 말하면서 현재의 사랑이 옛 사랑의 부활이라 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아니면, 우리는 프 로이드의 초대를 받아서, 사랑이 추억과 이미지를 가지고 영혼을 얼마나 풍부하게(비옥하게) 만들 어 주는가를 생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