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2. 10)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49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돈과 일 사이의 관계는 상당한 판타지가 담겨있다. 그것은 짐인 동시에 비상한 기회가 된다. 일과 관련된 많은 문제는 돈을 중심으로 생긴다. 우리는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하며, 자신은 자신의 수입보다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받아야 할 금액을 요하지 않는다. 돈은 유일한 관심사이다. 아버지들은 자식이 자신만큼, 또는 그 이상 돈을 벌면 자랑스레 여긴다. 젊은이들은 부와 재정적 안정을 증명할 모든 것을 갖추게 되었을 때 비로소 어른 사회의 일원이 된 것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돈에 대하여 반응할 때, 돈이 지닌 힘을 피하면서 귀신 쫓듯이 하거나 강박 충동적으로 대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돈이 가져다 주는 특정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제공해주는 메시지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실존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돈을 많이 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면, 아마 그 나름대로 진실이 거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 판타지 속에 담겨 있는 영혼 충만을 느끼기 위하여 공동체적이며 구체적 생활 속에 더 깊이 잠겨들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단지 그 판타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한다. 때론 수백 만 달러를 벌어놓고도, 언제나 더 큰 부자가 될까를 기다리기도 한다.

일의 실패

우리가 일을 하는 도중 실패를 맞이할 때, 우리의 잠재적인 영혼은 적잖이 놀란다. 그러나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먹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그것은 때로 과도한 상승 기대에 대한 해독제가 된다. 일에 대한 성공과 완전을 바라는 야심은 우리를 계속 달리게 하지만, 실패에 대한 우려는 일에 대한 영혼으로 다가가게 한다. 완전에 대한 생각이 영혼의 낮은 지대로 하강할 때, 그러한 성육신의 몸짓으로 인해 인간적인 성취가 솟아오른다. 우리는 실패 때문에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으나 우리의 높은 목표가 인생에 있어서 창조적인 역할을 하게만 된다면, 그것은 끓어올라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완전은 상상의 세계에 속한 것이다. 전통적인 가르침에 의하면, 휴머니티를 결정하는 것은 솟구치는 영이 아니라 삶 속에 자리잡은 영혼이다.

기독교는 이와 같은 하강의 몸짓에 대해 심오한 이미지를 부여했다. 예술가들은 수백 가지 다른 형태의 수태고지를 그려왔고 그 순간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황금빛이 비치는 가운데 미천한 여인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시킨다. 이 신비가 기억될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이 생생히 살아난다. 먼저 우리는 감동을 받고, 그리고 나서 우리가 받은 감동에 몸을 입히는 여러 갈래 길을 찾아 나선다.

일에 대한 평범한 실수는 인간적인 한계 속으로 영이 하강하는 불가피한 부분이다. 실패는 신비한 일이지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가 실패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실수를 자학적으로 즐기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기대에 못 미칠 때마다 성육신의 신비가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실수 때문에 생기는 열등감이나 겸비한 마음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음을 이해한다면 실수는 우리가 하는 일 속에 병합될 것이며, 그것이 우리를 황폐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연금술사의 용어인, ‘죽음을 만든다’는 뜻을 지닌 mortificatio 는 작품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융은 설명하기를 (고행이나 금욕처럼) 인생에 있어서 ‘죽음을 만드는’것 같은 일은 영원한 요인들이 천명되기에 앞서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한다. “내가 원하던 그 직업을 얻지 못한 것이 결국은 잘 된 일이야” 라고 깨달을 때, 그 사람은 바로 이 신비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 기막힌 단순성 때문에, 이런 언표는 인간의 의도와 욕망 속으로 스며들어서 마침내 실패라는 신비의 핵심을 사로잡는다. ‘죽음을 만드는’ 순간에 인간의 의도와 야망이 인생과 일에 있어서 반드시 최상의 길잡이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지 모른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실패의 연금술을 포착하지 못한다면, 성공의 기회를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실패에 대한 신비를 이해하고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은 연금술적으로 영혼에게 작용하는 방식이 되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의 무능을 통해서 보는 눈을 뜰지언정 지나치게 자신의 무능과 동일시하지 않게 해준다. 실패 때문에 문자 그대로 일이 안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부정적 나르시시즘”에 가깝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 속에 나타나는 신적이며 신비스러운 역할을 부인하는 부정적인 방식이다. 나르시스트는 말한다. “나는 실패작이야. 나는 아무 것도 잘 할 수가 없어.” 실패가 마음에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오히려 실패에 푹 빠져서 탐닉하는 것은 마음에는 필수적일 뿐 아니라 영혼을 자라나게 하는 썩히는 행동에 반한 미묘한 방어가 된다. 상상력을 가지고 실패를 감상한다면, 그 실패를 성공으로 연결할 수 있다. 그러한 연결 고리가 없으면 일은 성공에 대한 커다란 나르시시스트적인 판타지와 실패로 인한 우울한 감정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신비함처럼 실패는 내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영혼에 존재하는 창조성

우리의 노동 생활에 있어서 영혼의 또 다른 잠재적 근거인 창조력은 다분히 낭만화해 있다. 보통 우리가 창의성에 대하여 상상할 때, 우리는 pure(젊은이)의 관점에서 보며 이상주의와 예외적인 성취에 대한 고상한 판타지를 부여한다. 이런 뜻에서 일은 대부분이 창의적이지 못하고 평범하고 반복적이며 민주적이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바로 창의성에 대한 생각을 바닥으로 끌어내리기로 하면 그것은 반드시 예외적인 개인들을 위하여 유보해 놓을 필요도 없고 명석함과 동일시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평범한 삶 속에서 창조성이 의미하는 것은 모든 경험으로부터 영혼을 위하여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때로는 장난 삼아, 또는 발명의 관점으로 경험을 변화시켜 의미로 가득 차게 할 수 있다. 어떤 때는 경험을 단순히 기억 속에 간직하거나 성찰함으로써 그것이 지닌 상상력을 품거나 드러내게 만든다.

창조성은 수많은 다른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때로는 우울을 동반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우울증과 한바탕 씨름하는 동안을, 매우 창의적인 시간을 보낸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의식의 스타일과 통찰의 브랜드를 창출해낸다. 그리고 우울한 기분에서 문화와 인성의 중요한 요소들이 출현한다. 융은 자신의 장기간의 분열 즉, 자신이 “방향 감각 상실의 상태”라고 부른 상태에서 자신의 근원적인 심리학적 통찰을 (수태고지의 언어로) 잉태하였다. 또 다른 때는 아프로디테 식으로 성적인 관심과 욕망에서 솟구치듯이 창조성이 상상될 수 있다. 분명히 말해서 마릴린 먼로는 그녀 나름대로 창조적이었다.

창조성은 그 자체의 그림자를 끌어안을 때 스스로의 영혼을 찾는다. 예술가의 슬럼프는, 예를 들자면, 창조적인 과정에 있어서 잘 알려진 부분이다. 때로 영감은 멈추고 작가는 손대기 어려운 빈 원고지와 대면한다.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아이디어의 증발을 인정한다.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할 때 몇 달 또는 몇 해 동안이라도 날마다 자녀를 위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면서 즐길 수도 있다. 그러다가 하루는 영감이 떨어지고 공허감이 덮쳐온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빈자리가 어떻게 창조성의 일부가 되는가를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일에 있어서 이와 같은 측면을 우리의 소박한 삶으로부터 그렇게도 빨리 배제시키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 할 수 있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열심히 노력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음악을 개인적인 표현으로 보기보다는 더 창안하고 작업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현재보다도 바하의 시대에 기량이 훨씬 더 좋았다” 고 말한 적이 있었다. “먼저 장인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는 ‘재주’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부적으로 골똘히 빠져드는 열의가 없고 스스로를 장인정신 속에 묻어 위대한 음악가로 부활하려는 모습이 없습니다.” 그는 예술가가 영감의 순수한 채널이 되는 데 대하여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강연에서 말하였다. “불가능한 일이 생길 수 있다면, 그래서 나의 작품이 별안간 완벽한 형태로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속은 기분에 빠져 바로 그 작품 때문에 당황하고, 곤란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창조적인 일은 신나고 감동적이고 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날마다 일어나는 시시한 것이고 불안과 좌절과 막다른 골목과 실수와 실패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창조적인 일은 밝은 햇빛이 좋아서 미궁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버리고자 하는 이카루스의 솟구치는 소원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은 나르시시즘 같은 것이 없을 수 있고 세상을 살면서 뭔가 이루어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물질 세계가 안겨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창조성은 무엇보다도 먼저 영혼 충만하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이루어내는 유일한 것은 예술이나 문화나 가정에서나 그 어디서든지 바로 영혼이기 때문이다. 쿠사의 니콜라스와 그를 이어서 콜리지가 인간의 창조성은 우주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행위에 참여하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쿠사의 말을 빌리자면,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우리는 ‘인간세계’인 소우주를 창조한다. 우리가 날마다 일을 하며 집도 짓고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키우고 문화도 엮어내면서 우리 모두는 창조적인 사람들이 되고 있다. 주의 깊은 정성과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운명 속으로 들어가서 일종의 영혼 가득한 창조성을 즐기면, 그런 창조성이라면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지닌 찬란함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그쯤 되면, 궁극적인 일은 영혼과 연대하는 것이며, 운명의 요구에 응답함과 동시에 영혼이 제시하는 인생의 세부 사항들을 돌보는 일이다.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외부적인 노동과 영혼의 opus(작품)은 동일한 것으로서 불가분의 것임을 아는 시점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 때는 우리가 하는 일의 만족은 깊고도 지속적인 것으로서 그것은 실패로도, 번뜩이는 성공의 빛으로도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