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의 일부로서, 시간과 공간 속에 제한된 일부이다. 그는 자신이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나머지 전체와 분리된 것처럼 경험하는데, 이는 일종의 의식의 시각적 망상, 곧 착각이다. 이 망상은 우리에게는 일종의 감옥이 되어 우리를 개인적 욕망과 가장 가까운 몇 사람에 대한 애정에 갇혀 있도록 한정시킨다. 우리의 과제는 우리의 뜨거운 동정심의 원을 넓혀서 생명있는 모든 것과 자연계 전체가 지닌 그 아름다움을 끌어안고 살아감으로써 우리 자신을 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인류가 낳은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이 짧은 표현 속에 인생의 목적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마치 에니어그램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합니다. 에니어그램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핵심적인 진리가 여기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아’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포로입니다. 본래적인 자아, 본질적인 자아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의식이 잠들어 있어서 자기 자신이나 주변 세계도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시각적 망상’ 속에 사로잡혀 살기를 잘합니다. 굴지예프는 에니어그램을 배우며 수련하는 사람에게 목적을 일깨워주며 한 마디로 ‘인류를 위하여 살아라’ 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키우면서 이런 목적 의식을 가지고 가르치고 양육한다면, 세계는 얼마나 달라질지 말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유아기의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내 아이가 인류를 위하여 살아야 할 목적과 사명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나 오늘의 세계 현실은 이런 물음과는 너무 대조적이고 동떨어진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의미의 정치](부제: 하나님 형상의 정치) 의 저자 마이클 러너 (Michael lerner)는 오늘날 세계가 ‘이기주의와 물질주의와 무한 경쟁’ 속에 깊이 빠져서 모두 냉소적인 태도로 살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영혼의 돌봄]의 저자 토마스 무어(Thomas Moore)는 현대의 중병을 ‘영혼’의 상실로 진단하고, 그 증상을 영혼을 소홀히 한 결과로 강박증과 중독증과 폭력과 의미의 상실로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굴지예프가 이렇게 살아가는 인간상을 보고 일찍이 “인간은 기계다”라고 한 것입니다. 고유한 기능으로서 생각과 느낌과 행동 사이의 균형도 조화도 이루지 못한 채 뭣엔가 끌려 다니듯 하는 모습은 한마디로 지적한 것입니다.
굴지예프나 융 같은 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온전한 영혼을 고스란히 타고 났는데, 그 속에는 생각과 느낌과 행동의 기능이 채 발달하지는 못하였으나 균형과 조화 속에 있어서 각기 고유한 목적을 위하여 발달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의 본성을 두고 하는 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상처를 입습니다. 불가피한 것입니다. 대부분 ‘폭력적 분만’ 과정을 거치면서 태어난 아기는 자라면서 입는 수많은 상처들을 통하여 불균형과 부조화가 생깁니다. 그런 상처의 경험은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이 되고, 만 6살이 지나면서 그것이 인성 또는 거짓 인성으로 나타나고 작용하게 됩니다. 상처가 결국은 격정을 지니게 만들고 성격은 그 격정에 따라 작용합니다.
에니어그램의 성격 유형이 결정되는 과정에 작용한 요인은 다양합니다. 각 가정의 환경과 역사 속에 있는 정신적 역동성를 포함하여 일차적으로 부모들의 성격과 습성의 패턴, 자녀에 대한 교육 철학 그리고 태도 같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부모 이외의 돌보는 이들이나 형제 자매와의 관계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이 조기 교육이 강력히 추진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교회 학교나 유아원 및 기타 학원의 교사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모와의 관계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밖의 부모 같은 역할을 한 사람들과의 관계나 상호작용도 어린이는 부모와의 관계와 상호작용과 연결시켜 보게 됩니다. 사실 부모와의 관계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기억되고 그것이 상처로 남아 있어서 작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실제 일어났던 일보다도 그런 경험을 통하여 부모를 보는 어린이의 ‘관점’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정신역동성은 중요합니다. 가족은 일차적인 정신역동적 집단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서 서로 영향을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주고 받는 관계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삶이나 행동이 어린 자녀들에게 특히 성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르거나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삽니다. 어린이의 성격이 형성되는 것도 6세까지의 과정일 뿐 아니라 만 6세에 성격 유형 즉 성격의 에니어그램이 확정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어른 중심의 문화 속에서 사는 부모들은 대개 부모 중심의 삶이 있을 뿐입니다. 부모 자신이 사랑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합니다. 사랑한다 하여도,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할 따름입니다. 그것이 어린 자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경험될 지는 별 신경을 안 씁니다. 어린 자녀는 부모의 애정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경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나 표현 방식을 드러내고도 모릅니다.
여기서 우리 어른들이 그리고 특히 부모들이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어린이가 만 6세를 향하여 가면서 부모들이나 조부모들의 사랑을 경험할 때, 어린이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의 관점에서 부모의 사랑을 어떻게 보며 느끼며 경험하는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편안하고 즐거운 환경에서 부모와 갈등을 별로 안 느끼고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 긍정적인 관계 속에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불편하고 불쾌한, 이를테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면서 애정의 표현이나 교류가 원활하지 못하면 부정적인 관계에서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부모로서는 사랑한다고 하여도 어린이가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든가 자기가 좋아하는 한 쪽 부모를 힘들게 하든가 하는 것 때문에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한 양가적 감정을 경험합니다.
이렇듯 어린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린이가 상처 받는 경우, 그래서 부정적 관계가 될 가능성은 역설적으로 사랑 때문에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이가 엄마를 사랑하고, 또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경우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아플 때, 그 어린이는 엄마가 안 아프고 빨리 낫게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낍니다. 이 때 어린이는 자괴심과 좌절감과 함께 무력감을 느끼며 상처를 입을 정도로 민감합니다. 이만큼 어린이의 섬세한 느낌에까지 주의하고 관찰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