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대부분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영향이 자녀의 성격 형성과정에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면,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 경험하였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문제는 자녀의 눈높이와 감성에 따라 그야말로 ‘맞춤형 사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하겠습니다.
부모를 좋아하고 부모의 사랑을 편하게 긍정적으로 받고 경험하며 자란 자녀의 대표가 에니어그램 9번 유형입니다. 양친 부모의 애정을 거의 똑같이 긍정적으로 경험한 어린이가 9번 유형으로 자랍니다.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사랑이 자녀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아버지가 어머니와 호흡을 맞추고 보조를 맞춰 나갈 때, 애정의 흐름이 원활하게 되고, 자녀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만 6살까지 성격 유형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편하게 받고 자란다는 것은 자녀들이 별로 갈등을 느끼지 않고 자란다는 말이 됩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부모가 잘 들어주었고 잘 해주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란 경우입니다. 갈등을 별로 안 느끼고 자라기 때문에 그만큼 긴장감이 적습니다. 그러나 편한 만큼 늘어지기 쉬운 법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잘 해주는 경우, 대개는 부모의 사이가 좋습니다. 부부의 금실 이 좋다고 할 수 있고, 집안이 화목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부부 사이가 별로 안 좋아서 부부 싸움이 잦은 경우에도 부모가 각기 자녀에게만은 애정을 쏟고 적극적으로 표현할 때 자녀의 성격은 양친 부모의 긍정적인 사랑에 의하여 원만하고 평화적인 특성을 지니게 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불편하면서도, 아버지도 나를 사랑하고, 어머니도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과 경험을 가지고 자라는 어린이는 9번 유형이 됩니다. 다만 같은 유형 가운데서 전형적인 공포나 함정에 빠지며 갈등을 기피하는 성향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부모의 사랑을 어떻게 받고 자라는가에 따라서 에니어그램의 성격 유형이 확정되는 것은 일차적인 특징입니다. 같은 유형 가운데서도 애정이 어떻게 표현되고 또 실제로 어떻게 경험되었는가에 따라서 건강한 바탕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측면이 남달리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도 있고, 격정이나 강박충동에 사로잡히는 빈도나 강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위적인 노력에 의하여 어떤 성격을 만드느냐 하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오로지 부모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랑을 필수과목’으로 삼고 열심히 사랑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부모가 좋으면서도, 비중이 미묘한 차이라도 어머니에게 조금 더 실리면, 9번 유형 가운데서 1번 날개를 갖게 됩니다. 대조적으로 아버지에게 비중이 조금 더 실리면, 9번 유형은 같지만 날개는 8번이 됩니다.
여기서 비중의 차이가 더욱 커서 아버지에게 기울어지면, 기본 유형이 6번이 됩니다. 아버지와 긍정적인 관계로 성장한 경우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6번 유형은 ‘아빠가 더 좋아요.’하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어린 자녀의 욕구나 필요를 어머니보다 한발 앞서서 채워주는 것이 일상화되면, 어린이는 아버지를 의지하게 됩니다. 뭐든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이는 아버지를 먼저 찾게 됩니다.
부모와의 사이에서 친소관계 즉 친밀도를 따지자면, 자녀는 아빠와 더 친합니다. 커서도 아버지를 더 가깝게 느낍니다. 아버지를 좋아하고, 아버지를 닮으려 하고, 아버지와 함께라면 언제 어디서나 편하고 든든합니다. 아빠와 함께 있을 때는 안전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아빠와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6번 유형으로 성격이 형성되는 6세가 되면서 불안과 공포가 자주 느껴지게 됩니다.
아빠가 좋은 어린이는 어쩔 수 없이 일터에 가야 하기 때문에 아빠가 집을 나가야 할 때에도, 아빠가 자기를 버리는 것처럼 오해하거나 착각할 경우가 생기게 되고, 이런 느낌을 갖게 되면 6번 어린이는 잘 웁니다. 아빠가 집을 나설 채비를 하면, 벌써 겁먹은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울 준비를 합니다. ‘눈이 큰 아이’하면 6번 유형을 얼른 떠올리게 됩니다.
아직도 한국 문화 속에서는 남아 선호 사상이 남아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 제도 속에서 며느리가 손녀를 낳으면 구박받던 시절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 아들 낳으려고 하는데 딸만 낳게 되니까 자꾸 아들을 낳으려다 딸을 계속 낳아서 딸 부잣집이 된 경우가 흔히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손녀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미운 오리 새끼’가 되고 맙니다. 마음씨 착한 아버지는 조부모의 눈총으로부터 딸(들)을 보호하느라고 사랑의 날개를 펼칠 때, 딸(들)은 그 속에 피하면서 안전을 느낍니다. 그래서 딸 부잣집에서 6번 유형의 딸(들)이 생기는 묘한 현상이 한국에서 나타납니다.
6번 유형이 아버지에 비하여 어머니의 사랑이 덜 긍정적이라 느끼고 살았을 때, 5번 날개를 갖게 됩니다. 이보다 더 부정적으로 가면 7번 날개가 됩니다. 이런 경우, 어머니가 사랑을 안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사랑하거나, 어머니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을 아이가 싫어하다가 그리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어머니의 사랑이 크고 또 자녀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비중이 뚜렷하면, 어린이는 3번 유형이 됩니다. 엄마는 늘 ‘네가 제일이다.’하면서 키우기 때문에,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란 어린이는 또 엄마가 제일입니다. 따라서 엄마의 사랑을 받고 인정도 받는 것이 3번 어린이에게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렇게 엄마와의 애정이나 친밀한 관계가 지속되면서 3번 어린이는 자칫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잘 나서고, 또 나서면 인정받고 칭찬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잘 안 될 경우에는 못 견딥니다.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못 견디는 만큼, 거부당한다고 생각만 하여도 못 견딥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경쟁을 잘 하게 됩니다.
이렇게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는지 3번 유형 어린이는 아버지가 사랑하지만 엄마만큼 안 한다고 느끼면 그만큼 아버지가 덜 좋고, 따라서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되면서 2번 날개를 갖게 됩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나 관계가 이보다 더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느껴지면, 4번 날개를 갖게 됩니다.
에니어그램의 상징에서 삼각형 안에 들어가는 9번, 6번, 3번 유형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양친 부모나 아니면 부모 가운데 어느 한 쪽 하고도 긍정적인 애정을 경험하며 자랍니다. 어린이가 자라면서 애정을 받은 경험이 중심이기 때문에, 친부모가 아니라 조부모나 심리학적으로 아버지나 어머니 역할을 한 어른과의 관계에 비춰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생각할 때, 그들은 공통적으로 나태를 지닙니다. 세분하면, 9번은 기억에 나태하고, 6번은 자립에 나태하고, 3번은 자기 개발에 나태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목표설정까지가 어렵지, 일단 목표를 세우면, 수행하기는 어렵지 않을뿐더러, 하기 시작하면 근면, 충실, 성취의 특징을 살립니다. 요즘 말로, 어젠다만 분명히 세우면, 끝내 줄 사람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