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정 교육의 전통은 한 마디로 ‘엄친자모’의 표상에 나타납니다. 아버지 상은 근엄하신 분입니다. 엄격하시거나 말씀을 잘 안 하십니다. 속에는 사랑이 있을지라도 겉으로는 표현을 잘 안 하십니다. 따라서 어린 자녀들에게는 ‘무서운 아버지’로 잘 느껴집니다. 근엄한 아버지 앞에서는 떠들어도 안 되고, 장난쳐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됩니다. 더욱이 까불면 안 됩니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는 늘 반듯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기대나 기준에 어긋나면 꾸중을 듣게 됩니다. 애들 말로 혼납니다. 야단 맞습니다. 심하면 매도 맞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아버지가 무섭습니다. 특히 뭔가 잘못 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어린이가 만 6살이 되면서 1번 유형이 됩니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의 성격이 근엄하지 않고 오히려 자상하고 다정다감한 분이라도, 자녀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게 되면, 어린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적극적으로나 긍정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도 1번 유형이 됩니다. 아버지가 손님 같고, 아저씨처럼 느껴지는 경우, 아이는 아버지와의 사이에 거리감을 느낍니다. 응석을 부릴 수도 없고, 기댈 수도 없고, 더욱이 달려가서 덥석 안길 수가 없습니다.
엄친 옆에 자모가 계셔서 어머니가 자애로우시고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1번 어린이는 9번 날개를 갖게 됩니다. 어머니가 사랑은 있을지라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거나, 때려 주는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으면 어린이는 2번 날개를 갖게 됩니다. 아버지와의 애정이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데, 어머니마저 아주 부정적이지는 않아도 적극적이지 않으면서 양가적으로 느껴지면 그렇게 됩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어머니가 더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면서, 특히 어머니에게 비중이 실리면 아이는 7번 유형이 됩니다. 엄마가 싫거나 무서우면 그리 됩니다. 엄마가 사랑을 열심히 하노라고 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되었다고 하여 실망하는 어머니도 적잖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자기 방식대로 사랑했거나 자녀의 눈높이에 맞춰서 사랑하지 않았을 경우라 하겠습니다.
어쩌면, 어머니가 매우 적극적이거나 지배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자녀의 삶 속에 너무 깊이 개입하셔서 자기 인생을 살듯이 하기 때문에 자녀가 싫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가 원하는 모양이나 색깔보다도 자기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강요하다시피 아이에게 사서 안겨 줍니다. 아이는 그것이 싫어서 그것을 안 쓰면, 빼앗아서 동생이나 그밖에 다른 아이에게 주는 경험을 곧잘 하게 됩니다.
그래서 7번 유형은 어려서 박탈감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마음 속에 늘 밑 빠진 독처럼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불만을 품고 삽니다. 7번은 그래서 끊임없이 만족을 추구하게 됩니다. 때로는 어머니의 과보호가 이런 결과를 낳기도 하고, 자녀의 삶 속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시시콜콜 참견하거나 간섭을 해도 이렇게 되기가 십상입니다.
특히 어린이가 성격 발달 과정에서 만 5세 전후하여 개체 발달이 이루어집니다. 이 때의 특징은 어린이가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며 ‘비밀’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나이의 어린이의 키워드는 ‘비밀’입니다. 그러나 이런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린 자녀의 삶 속에 깊이 개입하는 엄마는 자기 아이가 거짓말한다는 데 격앙해서 아이를 몰아세우고 거짓말한다고 야단치면, 어린이는 충격과 함께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엄마와의 관계가 부정적으로 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보았듯이, 어머니의 경우도 사랑은 많은데 멀리 떨어져 살거나, 한 집에 살면서도 엄마가 함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어린이가 엄마와 부정적인 관계를 안고 살수도 있습니다.
7번 유형의 어린이는 아버지가 비중으로 보면 어머니보다 약해도, 긍정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아이가 아버지를 의존하게 되면 6번의 날개를 갖게 됩니다. 여기에 비하여 아버지가 어머니처럼 부정적이지는 않아도 그다지 긍정적인 것도 아니면, 8번 날개를 갖게 됩니다.
양친 부모가 다 무섭거나 싫거나 소원한 관계에서 자란 어린이가 만 6살이 되면서, 4번 유형이 됩니다. 근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아이는 아버지가 무서운데, 엄마는 냉정하거나 아이한테 소극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아버지도 무섭고 어머니도 무서운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어머니는 무섭고 아버지는 싫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양친 부모와 부정적 또는 소극적 관계가 되면, 따라서 아이는 4번 유형이 됩니다.
맞벌이 부부이거나 농촌에서 일하는 부부가 어린 자녀를 집에 두고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린이가 4번 유형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물론 어린이를 떼어놓기 때문에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얼마나 애틋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도 저녁에 함께 있을 때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하고 진하게 사랑을 느끼게 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이것은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린이가 상처를 받는 조건이나 상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린이가 실수를 하였을 때 야단치거나 욕하거나 때려주면, 아이에게 그것은 상처가 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이가 일부러 잘못하였을 때, 그 잘못을 스스로 인식하고, 인정하게 한 다음,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세우거나 꾸중하면, 그런 일은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린이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부모가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소원하면, 아이는 스스로 외톨이처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떨어져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에도 어린이가 외로움을 느끼게 되면 4번 유형이 됩니다.
4번 유형 가운데서 어머니가 좀 더 따듯하게 대해주거나 애정을 표현하며 아버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아이에게 더 긍정적이면 어린이는 3번 날개를 갖게 됩니다. 반면에, 아버지가 어머니에 비하여 덜 부정적이면 어린이는 5번 날개를 갖게 됩니다.
부모가 무섭거나 애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 등을 통하여 에니어그램 1번, 7번, 4번 유형이 된 사람들은 어려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았다는 느낌이나 경험이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어서, 좀 어려운 상황 속에 들어가면, 위축되기 쉽습니다. 동굴 속으로 또는 골방으로 기어 들어가 숨는 경향이 나타나기 쉽습니다. 아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방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긴장하거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또는 상심했을 때 화가 나거나 위축되기 쉬운 이들은 부모와 관계가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배경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친부모가 아닌 경우에는, 성격 발달 과정에서 부모 대신에 영향을 끼친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조부모나 길러주신 친척 어른들 또는 학교 선생님이나 교회의 목사, 전도사 같은 분들과의 관계도 고려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은 긍정적으로 건강하게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로 말하면, 상상력과 예술성도 매우 높고 사교적이며, 표현력이 좋고 말을 잘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삽니다. 어려서 애정 결핍을 느끼며 살았다는 기억에 묶이지 말고 스스로에게 따듯하게 배려하며 살면 아주 좋은 성격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