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 관계에서 보다시피 서로 인격적으로 대하며 사랑과 존경이 조화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하물며 부모 자녀 사이에서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나이가 일곱 여덟 살 (만 여섯 살) 될 때의 어린이에게서 존경을 기대하거나 이야기 거리를 삼는 것은 그리 어울리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을 주제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이에게는 사랑이 ‘필수과목’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부모님을 존경해요’하고 말하는 것은 어딘지 부자연스런 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을 때는 그냥 편합니다. 어떤 단서가 붙거나 꼬리표가 달리면 마냥 편하지만은 않음을 암시하고도 남습니다. 부모가 아주 싫은 것도 무서운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기만 한 것도 편한 것도 아닌 상황이 그려집니다.
부모로서는 자녀를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랑을 경험하는 자녀가 편하지 않으면, 긍정적으로 사랑을 받았다고 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 정도가 심하면 부정적이라 하겠으나, 그다지 심하지 않은 경우가 양가적이라 할 것입니다. 즉 ‘부모가 나를 사랑하는 줄은 알겠는데 내가 그리 편하지 않다’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밉기도 한 것처럼 감정이 엇갈리는 경우라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사랑을 주고받는 경우를 생각하면서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이야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애증과 좋고 싫음이 엇갈리는 경우도 친부모와의 관계가 중요한 것처럼, 부모 역할을 한 어른들과의 관계 또한 중요합니다. 조부모나 숙부, 숙모 같은 부모 대역과의 관계에서 애정을 경험한 정도가 성격 형성과 성격 유형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양친 부모와 양가적인 어린이가 에니어그램 5번 유형이 됩니다. 부모 양쪽이 똑같이 애증이 엇갈리고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상태에서 자란 어린이가 그렇게 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어린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경우를 몇 가지로 상정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부모와 나이 차이가 큰 어린이의 경우를 생각합니다. 또래들의 젊은 부모에 배하여 늙었다고 생각이 드는 데다, 만약 또래 친구들이 자기 부모를 할아버지나 할머니 같다고 말하면 아이는 충격을 받고, 자신을 부모와 떨어지게 거리를 둡니다. 둘째는 부모가 각기 자녀를 사랑하지만 성격 차이 등의 이유로 부부싸움을 자주 할 경우, 어린이는 아빠나 엄마 어는 쪽도 편을 들 수 없게 되어서, 궁둥이를 쑥 빼고 관찰하게 됩니다. 부모 양쪽이 나를 다 사랑하는 좋은 사람들인데 어째서 자기들끼리는 저렇게 자주 싸울까 하고 의아심이 들기도 하고 궁금해집니다.
따라서 부모 또는 부모 대역과의 관계에서 애증이 엇갈린 상태로 자라난 어린이들은 궁금증이 많아서 질문이 많고, 생각이 많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질문이 많게 됩니다. 그러자니 자연히 분석적으로 되고 지식으로 채워야만 상황을 풀어 나가든지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아는 것이 많은 것 같아도 자신의 생각으로는 계속하여 더 많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얼른 행동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몸이 무겁거나 행동이 굼뜹니다.
아버지와 양가적인 어린이가 에니어그램 2번 유형이 됩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면서도 편하지 만은 않고, 사랑하는 것도 마음대로 애증이 엇갈립니다. 사랑과 미움, 좋고 싫은 감정이 교차하며 엇갈립니다. 자연히 아버지의 사랑은 인정하면서도 엇갈리니까 아버지에 대하여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알면서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 불편하기도 하니까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려는 마음과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보상하려는 마음으로 내가 아버지에게 뭘 해드릴까 하고 살피게 됩니다. 아버지의 필요를 민감하게 관찰하며 그것을 채움으로써 보상하려는 마음이 커집니다. 그래서 2번 유형은 늘 아버지의 필요를 살피던 태도가 발전하여 나 아닌 남의 필요를 잘 살피고 발견하는 성격으로 발전합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필요는 기피하면서도 남의 필요를 빨리 압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로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한 숨은 동기 때문에 아버지의 필요를 충족시키려 노력하게 됩니다. 따라서 2번은 자기 자신의 필요는 부정하고 아예 몰라라 할 뿐 아니라 아버지의 필요를 충족시켜야만 사랑을 더 받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기에 이르고 이것이 마침내 격정으로 형성됩니다.
어머니와 양가적인 어린이는 에니어그램 8번 유형이 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거나 어머니가 편하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일찌감치 독립합니다. 어머니와 부정적인 관계라면 아주 멀어질 수도 있겠으나, 싫기만 한 것이 아니니까 어머니로부터 독립은 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립합니다.
어머니로부터 독립한 어린이는 자신의 필요는 스스로 채우며 해결하는 능력이 일찍이 발달합니다. 따라서 자수성가하며 이재에 밝으며 자신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어린시절로 따지고 보면, 주변의 또래 어린이들이 엄마 치맛고리 붙들고 돌아가는데 자신은 엄마로부터 뚝 떨어져 독립했으니까 또래들이 우습게 보입니다. 그래서 저보다 덩치가 큰 아이들한테도 이래라 저래라 명령도 하고 지휘통솔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늘 강자로 군림하려 하고 그런 이미지를 고수하려 합니다.
그러자니 자기가 약해 보이면 상대가 치고 들어 올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라도 지고는 못 사는 성격으로 커가면서 꿀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자연히 머리 속으로 계산하며 특히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기 의식을 느끼면, 살아날 길을 찾으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씁니다. 그럴 때면 마음 속으로는 음모론이 발달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정신으로 살게 되면 누구보다 ‘통이 크다’는 말을 듣고, 뜨거운 동정심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부모를 존경한다는 사람들 즉, 부모와 양가적인 상태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애정 경험에 있어서 양가적이기 때문에 좋은 것과 싫은 것, 사랑과 미움 같은 감정에 있어서 엇갈리는 성격을 지니게 됩니다. 2번 유형은 아버지의 필요에 대해서는 민감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필요는 기피하거나 모릅니다. 따라서 남에게 잘 해 주고 돌보면서도, 남이 자기에게 그렇게 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거나 아니면 그렇게 하도록 조작합니다. 이를 처리하는 방식이 자랑으로 격정이 표출되는 것입니다.
8번 유형은 어머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누굴 돕거나 돌보는 일은 약자의 논리이거나 일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좀처럼 누구에게라도 ‘고맙다’ ‘미안하다’ ‘수고했다’는 말도 잘 못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동정심으로 남을 배려하면 자기 스스로 편하고 소탈해집니다.
5번 유형은 생각은 앞서도 행동이 따라주지 못하기가 쉽습니다. 심하면, 생각만 하고도 이미 ‘행동한 거나 진배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초연한 자세로 살면 행동과 지도력이 더할 수 없이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부모와 양가적인 관계로 자란 사람들이 애정 표현에 적극적이며 균형 감각을 갖게 되면 누구보다 감동을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