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3:26-33, 요21:1-14)
하태영 (목사/삼일교회)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장면이 있다. 처음엔 빈 무덤 앞에 서 넋을 잃고 있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요20:11-17, 마22:10), 다음에는 실의에 빠진 제 자들이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에서 나타나신다(눅24:13-43). 그리고 제자들이 두려움에 사 로잡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을 때 나타나셨는데(요19:19-31), 몇 일 후에는 베드 로를 비롯한 몇몇 제자들이 생업에 복귀한 현장-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시고 있다(요 21:1-14). 복음서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누가와 요한은 부활하신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이 있다. 엠마오 길에서 만난 제자들과는 "함께 떡을 떼시"었고, 디베랴 바닷가에서는 숯불에 구운 물고기와 떡을 제자들에게 "주 시기"도 하신다. 우리는 이처럼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물론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부활 사건에 대한 실증적인 기록을 "빈 무덤"에서 종결짓는 다. 그 이후의 기술은 사실 기록이라기보다 신앙적 진술로 이해하는 경향이다. 육체로는 이미 돌아가신 분이 지금 살아 있는 자들과 함께 하는데 대한 기록상의 한계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첫째, 제자들이 환영을 본 것이다. 둘째, 복음서 기 자들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셋째, 십자가 사건 이전의 기억을 십자가 사건 이후에 있었던 일로 각색해 놓은 것이다. 모두가 그럴듯한 가설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만족할 만한 대답이 못된다. 현실적으로 '정답'을 찾기도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지 않을까?
구약에서 신(神)은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영(靈)으로 존재한다는 의식이 보편화되어 있 다. 이사야가 보존하고 있는 예배공동체가 부른 민족 탄식시(사63:7-64:11)에 "주의 거룩 한 영" "여호와의 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민족 탄식시란 민족적인 난관 앞에서 지난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을 '기억(회상)'하고, 오늘의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 께 하실 것을 믿고 찬양하는 시이다. 그리하여 민족 탄식시는 항상 회상이 앞서 나온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모세의 오른 팔을 드셔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길 잃 은 양떼를 건지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모세에게 "두시고" 그로 하여금 권능을 베풀도록 하셨다. 때문에 모세가 이룩한 모든 구원 사역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백성들 가운데 계시며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것으 로 고백한다.
이처럼 이스라엘 예배 공동체에서는 과거-현재라는 시간 개념이 사라진다. 하나님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현존하신다. 지난날 모세에게 거룩한 영을 "두셨던"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거룩한 영을 "두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이다. 이런 신앙 전 승의 맥락에서 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이 결코 낯설지 않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받아 부활하신 예수에게는 과거-현재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구약에서는 역사적인 현장에 그리고 모세와 같은 특정한 인물에게 당 신의 영을 "두셨다"면, 신약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개개인의 일상 가운데 거룩한 영 을 "두신다"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 사건은 그 대표적인 표징이다. 오순절 성령 사건이야 말로 세상의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영을 받게된 사건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영 이 해방된 사건이며, 억압 가운데 있는 땅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을 독점한 이들로부터 해방된 사건이다. 이전에 하나님의 영은 탁월한 인물에게만 "두셨고", 예언자들을 통해서 만 "말씀하셨으며",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통해서만 "지시하셨는데" 이제 모든 사람에 게 당신의 거룩한 영 곧 성령을 부어주시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시지만 모든 사람이 다 거룩한 영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이렇게 설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말씀(예수 그리스도)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행13:26b)라고. 하지만 "예루살렘 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예수를 알지 못하고…죽이게"(행13:27-28) 했다. 이 처럼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분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매달았다.
바울은 시편을 인용하여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낳았다"(행13:33)는 선포도 하 고 있다. 이런 표현은 포로기 이전까지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은 하나 님을 섬기면서도 육을 지닌 인간이 신의 아들이 된다는 생각 자체를 용납하지 않았다. 인 간은 피조물이지 결코 신의 아들이 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던 것이 포로기 이후에 예 언자들에게서 하나님은 육으로서가 아니라 영으로 존재한다는 사상이 전개된다. 이를테면 신학적으로 육을 지닌 인간이 신의 아들이 되기 쉬운 범죄 요소를 제거한 것이다. 그로부 터 빈번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된다. 요엘서를 보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 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다"(욜2:28).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것은 이런 예언 자들의 신앙 전승을 따른 것이다.
이런 일련의 신앙 전승에 의하면 십자가 사건 후 제자들과 함께 하신 주님의 실체는 영으로 나타나신 분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분을 현재형으로 체험하는 제자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과거 인물로 단정하고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도 있다. 여기서 성령의 임재가 중요해진다. 성령이 아니고는 영으로 보여주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한다. 그분과 교통하기 위해서도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성령 안에서 그분은 항상 현재형으로 만난다. 일상의 모든 생활 가운데서도 만난다. 그리하여 그분은 내 양심이 되고, 내 헌신 이 되고, 내 노동의 기쁨이 되신다. 이전에는 영적 엘리트인 신비가에게서나 나타난 영적 체험이 이제는 모든 사람의 일상 생활 가운데서도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성령은 우 리들의 일상을 신비로 채워 주신다는 말이 되겠다.
부활하신 주님이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서 베드로에게 아침상을 차려주시는 장면을 보자. 특별히 상(床)에 대해서 짚어봐야겠다. 시편 23편에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라고 이 시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이 보 는 앞에서 떡 벌어진 상을 차려주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반대자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 받은 것 중 하나는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반대자들은 이 런 예수의 행위를 몹시 분개했다.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바로 그들을 하나님 나 라의 주빈으로 부르신다는 가장 구체적인 행위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님과의 관계는 밥상에서 나타난다. 오늘의 개념으로 본다면 밥상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일상을 상징하는 그 모든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일상에서 주님을 만나는 신비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성령 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아침상을 차려 주신 것이야말로 영적으로 죽은 베드로를 다시 살 리신 것이다. 물론 교회사가들은 이 장면을 실패자였던 베드로가 초대 교회 지도자로 회 복되었음을 보도하는 내용으로 보기도 한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사랑하셨다. 그리고 지 금 이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계신다.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 시고, 죄 사함의 권세도 베풀어 주셨다(요20:22-23). 이는 가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살 리라는 것이다. 세상이 죄인으로 규정한 자들과 한 식탁에 앉으라는 소명이다. 일상을 영 적 신비로 채우라는 분부이다. 껍데기를 치장하느라 신비를 상실한 현대인의 일상이야말 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25 물 같은 성령(눅12:35-48)
26 고난으로 드리는 봉사(마20:17-28, 엡4:11-12)
27 제멋대로 폭발하는 생명에너지(골2:1-3)
28 부활체험-<너> 안에서 죽은 <나>의 소생(눅24:13-35, 요15:6-11)
29 날마다 영으로 만나다(행13:26-33, 요21:1-14)
